심사평 : 김종해 , 유근조
당선작으로 뽑힌 조성화의 '이 달에는 주여'는 소품형식이면서도 삶의 달관된 시각과 "주여...하소서"의 상투적 어법 뒤에 숨어 있는 만만치 않은 시적기구의 새로움이 시의 격을 높여주고 있다. 시인의 상상력이 좋은 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유리의 발전사'는 이 시인의 역량과 가능성을 동시에 받쳐주는 작품으로 보여, 두 편을 함께 묶어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시 : 이달에는 주여
조성화
1963년 부산 출생, 부산상고 중퇴
이달에는 주여
주여 이달에는 제법 살 만하게 하소서.
하늘 쏘다니는 저 갈가마귀의 입에서 떨어진
잎새 하나로 내 앞뜰의 쓸쓸함이 위로 받게 하소서.
비온 뒤라 선뜻 집 나설 생각 없지만 집밖의
비 맞은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자신을
가지게 하소서. 확실히 지친 사람들이 더 많은 비를
맞고 당신을 찾는데 위로의 대명사여. 이 달에는
제법 살 만할 거라 속삭여 주소서. 눈길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가난한 발걸음들. 찬란한 골목에서 등 돌리고
편만하게 깔린 당신의 그림자에서도 빗나가
보는 삶이 삶의 전체가 아니다는 당신의 뜻이 왜
지극한 위로가 되는가 깨달을 듯 말 듯 하면서
외출화장을 한, 기억이 까마득한 아내에게로 가는
저희들의 발걸음에 이 달에는 제법 살 만하게
해주겠다고 속삭여 주소서. 이 달만큼은 틀림없이
살 만할 거라 소리쳐 주소서.
유리의 발전사
요즘 유리는 깨지지 않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절대로 깨지지 않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하고 있다.
깨진 유리조각을 들고 몇십 분간 난동 등의 기사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완전한 절망을 허락하지 않는
시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대신 유리회사들은
판매액의 감소를 커버하기 위해서 적절한 시간이 지나면
(물론 이 시간도 유리회사들의 권한 아래 있음)
유리의 색깔이 보기 흉하게끔 변하게 하여
소비자가 어쩔 수 없이 대체하도록 만들 것이다.
대체하기를 꺼리는 소비자를 위해서는 구청 철거반들의
무사안일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그후 그러한 유리를 실은
차가 새벽길을 달리다 설령 몇 장의 대형 유리가
길거리에 쏟아져도 찬란한 유리의 산화는 목격되지 않을 것이다.
상처난 것은 길뿐 유리는 건재할 것이다.
더 견고한 유리가 되기 위해서 공장으로 가는 유리의 길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아름다운 추억
(옛날에는 유리는 깨어질 줄 알았다는)
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지금 부지런히
유리를 깰 만큼 넉넉한 사람들 집의 유리벽은 이미 쉽사리
깨어지지 않는 첨단 기술의 유리로 되어 있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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