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1990년 한국일보 당선작

문근영 2015. 2. 12. 08:31

심사평 : 신경림 , 정현종 , 김주연


당선시인으로 뽑힌 이윤학씨의 응모작 가운데 '청소부', '제비집', '달팽이의 꿈'은 특히 재미있다. 확실히 이윤학씨의 작품들은 시도 재미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그 재미는 무엇보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따뜻한 애정에서부터 나온다. 시인은 때론 청소부가 되기도 하고, 제비가 되기도 하며, 달팽이가 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상상력이 유연하게 성장하여 청소부의 삶, 그리고 제비와 달팽이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독특한 시적 공간을 빚어내는 것이다. 이런 공간을 만남으로서 우리는 참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잠시 경건해진다. 시가 우리에게 주는 올바른 기능이다. 좋은 깨끗한 새 시인을 만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심사평 : 신경림 , 정현종 , 김주연


 
이윤학 (1965년 충남 홍성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청소부
 
누워 있는 것도 벽이었다. 출근길 서둘러 밟고 온
보도블록에도 무늬가 있었다. 단색세포처럼 또박또박
놓여 있었다. 밟히면 들고 일어나기도 했다. 기우뚱
거리며 빗물을 토해 내기도 했다.
 
모든 것은 줄지어 서 있었다.
길을 만들며 스스로 자라야 했다.
한번쯤 앞서고 싶은 길
바람을 견딘 만큼 몸으로 주름이 잡혔다.
지워지는 혈관을 찾아 나는 불안하게
흔들려야 했다
 
햇살은 구름 사이로만 쏟아졌고 아이들은 티눈처럼
자라 있었다. 엉킨 뿌리를 들고 일어났다.
태풍이 겹겹으로 껴입은 주름을 더듬고 갔다.
그리고 바람이 통 없는 날 고개를 숙여야 했다.
 
아이들은 조금씩 흔들릴 때 아름다웠다.
껴안은 모든 것들 속에서 너희들은 동티처럼
부활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 소문 없이 떨어질
나를 위해 남아 있어야 했다. 깨끗한 너희들,
 
밟히는 족족 주름을 벗고 탄생하는 은행알들.
 

 

제비집

 
제비가 떠난 다음 날 시누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제비집을 헐었다. 흙가루와 함께 알 수 없는
제비가 품다 간 만큼의 먼지와 비듬,
보드랍게 가슴털이 떨어진다. 제비는 어쩌면
떠나기 전에 집을 확인할지 모른다.
마음이 약한 제비는 상처를 생각하겠지.
전기줄에 떼지어 앉아 다수결을 정한 다음 날
버리는 것이 빼앗기는 것보다 어려운 줄 아는
제비떼가, 하늘높이 까맣게 날아간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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