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통영문학상 3개부문 당선자 발표
김춘수 시문학상_ 김선호 시인
김상옥 시조문학상_ 민병도 시조시인
김용익 소설문학상_ 박종관 소설가
통영문인협회와 통영문학제 추진위원회는 20일 '2012 통영문학상' 3개 부문 김춘수 시 문학상, 김상옥 시조문학상, 김용익 소설 문학상의 당선자를 발표했다.
올해 각 상을 수상하게 된 3인은 김춘수 시문학상에 '햇살 마름질'을 출품한 김선호 시인과 김상옥 시조문학상에는 '들풀'에 민병도 시조시인, 김용익 소설문학상에는 '제3지대'를 출품한 박종관 소설가가 각각 영광의 수상자로 결정됐다.
이번 문학상에는 시부문 55명,시조부문 12명, 소설부문 9명이 접수되어 6월20일 6명의 심사위원의 세심한 심사끝에 수상자가 선정됐다.
▲ 2012 통영문학상 수상자 김선호 씨, 민병도 씨, 박종관 씨(사진 왼쪽부터 )
김춘수시문학상을 받게된 김선호 시인은 “ 김춘수 시인은 시안(詩眼)에서 시에도 눈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의 눈은 일상적인 사람의 눈과는 달리 이쪽은 보지 않고 저쪽도 보지 않고 그쪽만 보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다고 했습니다. 시의 눈으로 바라 볼 때 한 송이 꽃이 피어난다고 했듯이 저도 바람에 시달리고 비를 달래며 꽃을 피워 보겠습니다. 그들과 같이 쪼그리고 앉아 햇빛과 구름과 새 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라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또 김상옥 시조문학상의 민병도 시조시인은 “강렬한 흠모의 대상이었던 선생님의 이름으로 상을 받는다는 사실은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범접하기 어려운 길이겠지만 지금이라도 선생님이 가시고자 했던 시조의 내일을 향하여 다시 한번 정진하겠습니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김용익 소설문학상의 박종관 소설가도 “예술가의 이름으로 제정된 상에는 그분의 모든 것이 다 녹아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분의 위대한 예술혼을 어떻게 계승해 나아갈 것인가, 하는 미래에 대한 전망과 우려도 중요한 요인으로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김용익 선생님의 이름으로 받는 이 상은 기쁨과 영광이기에 앞서 무거운 책임과 사명의식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한편, 2012통영문학제는 한국문단의 시문학 및 소설문학에 큰 발자취를 남긴 청마 유치환(시), 재미 소설가 김용익(소설), 초정 김상옥(시조), 대여 김춘수(시), 박경리(소설) 선생의 문학업적을 기리는 문학제다.
시상식은 7월 6일 오후 5시 통영문학제 개막식에서 열리며, 창작지원금 1000만원씩이 각각 지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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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수 시문학상 수상자
제1회 김충규 시인, 제2회 박완호 시인, 제3회 김선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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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기일식 (외 2편)
김선호
향기는 그늘에 젖지 않는다
차마 손도 못 대고
돌아서다 본
그,
말간 꽃 입술
부서지는 꽃 빛에
매일 젖던 몸
마른 샘
—종합진단 9
두 손으로 파헤친 봉긋한 가슴속
비어 있는 젖샘
출렁거리며 흐를 땐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멍울 대신
저마다 이름 붙이고 박혀 있는 돌들.
마음 살을 조금씩 떼 보낸 자리에서
종유석들이 자라고
뜨겁게 솟던 사랑은 조용히 말라가고 있다
두고 간 마음끼리
서로 위안이 되며.
함께 있어도 섞일 수 없는 낯선 맛을 잘라내니
하늘빛만 받아주며 살아가야 하는
빈 우물이 되었다
의사는 실리콘 한 덩어리를 상징으로 넣어준다
젖,
무덤이 되었다
날개 리폼 하우스
김 씨는 원피스를 마름질한다
고장 난 라디오가 정오의 희망 음악
주파수를 찾으며 두리번거리고
서랍에선,
몇 년을 곰삭아 빛을 잃은 단추들과
조각 천들이 빠끔히 밖을 내다본다
어제는 휠체어 소녀가 원피스를 가지고 왔다
작업대 위에 원피스를 놓고 소매를 자른다
옷이 날개라고,
레이스를 잘라 시침질하여 달고
절뚝이는 치마 길이를 허리에 맞게 잘라
최신 스타일 나비 모양 옷을 완성했다
옷걸이에 걸린 리폼한 원피스는
선풍기 바람에 날개를 달았으나 문에 부딪치며
자리에서 가늘게 떨고 있다
그들도 날고 싶은 희망주파수를 찾고 있는 중이다
실오라기 풀리듯 빛이 들어오는
의류 수선점 지하
시간을 자르고 계절을 재단하는 재봉틀이
다시 햇살을 마름질한다
—시집『햇살 마름질』(서정시학 2011.9.3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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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수 시문학상
1. 수상자 : 김선호
2. 수상시집 :『햇살 마름질』
3. 약력
충남 공주 출생. 국민대 대학원 졸업. 2001년『시문학』 등단. 200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 2008년 푸른시학상 수상. 2010년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활성화 기금 수혜. 시집『몸 속에 시계를 달다』문학아카데미,『햇살 마름질』서정시학. 한국시인협회 감사. 문화센터 시창작 강사.
■ 2012 김춘수 시문학상 심사평
두레박을 던져 시를 길어 올리다
2012년 김춘수 시문학상에 응모된 시집의 수는 모두 55권이었다. 이 가운데 예심을 거쳐 두 본심위원에서 전달된 시집은 21권이었다. 본심위원은 심사에 들어가기 전에 다음과 같은 심사기준을 정하였다.
첫째, 한국시의 올바른 건강성 회복에 기여할 만한 깊이를 지닌 시집.
둘째, 올바르지 않은 문장, 기이한 어법 등 작금의 시단이 노출하고 있는 부정적인 요소를 덜 지닌 시집.
셋째, 독자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시류에 영합하는 난해성을 보이는 시집은 가급적 배제.
넷째, 삶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탐색을 보여주고 있으며 건강한 세계관을 가진 시인의 시집.
다섯째, 김춘수 시인의 시정신을 이을 만한 유망주의 시집.
이런 기준을 정하고서 심사에 임하고 보니 5권의 시집으로 압축되었다. 어떤 경우 심사위원이 해설을 쓴 시집도 있었고 표4 글을 쓴 시집도 있었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시인의 시집도 있었다. 이러한 사적인 것은 배제하고 오로지 시집의 질적 함량을 놓고 따지면서 후보 시집을 압축해 나가다가 최종적으로 남게 된 시집이 김선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햇살 마름질』(서정시학)이다.
예심 통과작 21권 안에는 유명세는 누리고 있는 시인의 시집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지만 김선호 시인은 등단 11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내는 무명에 가까운 시인이다. 논의 과정에서 본인에게 큰 격려가 되어 발전의 계기로 삼을 만한 시인의 시집이면 좋겠다는 얘기도 나왔고, 중앙문단에서 주는 문학상을 2회 이상 받은 이는 고려하자는 얘기도 나왔다.
『햇살 마름질』은 전통과 실험, 일상(日常)과 이상(理想), 자아와 세계, 추억과 기억, 체험과 상상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가 그다지 어렵지 않으면서도 메시지의 깊이는 ‘옛 우물’ 같다. 편편의 시 중에서 처지는 것이 없다는 것도 강점이지만 인생의 희로애락, 아니, 인생살이 가운데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슬픔과 아픔의 깊이 속으로 두레박을 던져 은유와 상징의 물이 철철 넘치는 시를 길어 올리는 시인의 노력이 십분 느껴진다. ‘종합진단’ 연작시는 특히 더 좋았다. 부박한 언어의 유희가 시단의 주류인 양 유행을 타고 있어 걱정스러운데 김선호 시인의 시는 다행히도 소재와 언어에 대한 대단한 집중력으로 시적 긴장감을 어느 한 편에서도 잃지 않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김선호 시인의 『햇살 마름질』은 애당초 염두에 두었던 심사기준에 가장 적합한 시집이었다. 그래서 두 심사위원은 수상 결정에 흔쾌히 동의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 : 오세영 ․ 이승하
■ 수상 소감
정신의 아픔 속에서 피는 꽃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 김춘수 선생님의 시 ‘꽃’을 읽고 또 읽으며 아련한 미답의 세계를 꿈꾸던 시절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시들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좋아하는 시를 스크랩하여 벽에 붙여놓고 매일 암송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저는 시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기뻤습니다. 그리고 또 우연히 어느 문화재단의 후원금을 받아 첫 시집을 내었습니다.
그렇게 얼떨결에 밖으로 나왔지만 아무도 제게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쉽게 시인이 되었고, 첫 시집을 간행한 것이지요. 그때 시인이란 이름은 몸에 걸치는 것이 아니라 닦고 빛을 내야 광택을 내는 광물임을 알았습니다. 문학이 사치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시란 표현의 수사나 시류의 모방에 있지 않고 사유의 깊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잠 못드는 밤이 많았습니다. 기진맥진해 펜을 놓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고통의 자기 고백이 이번 수상작이 된 두 번째 시집 『햇살 마름질』이었는데 행운은 이렇게 축복처럼 왔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김춘수 선생님을 기리는 이 상을 받다니요. 통영에서 이 소식을 알려주었을 때 저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러나 기쁨 뒤엔 겁이 덜컥 났습니다. 이 큰 상을 감당할 수 있을 지, 혹 누가되지 않을 지, 앞으로도 이 명예에 맞는 시를 써낼 수 있을지, 꼬리를 무는 걱정이 상의 무게만큼 이나 무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토록 갈망하고 동경했던 세계라서 더욱 값지게 생각합니다. 선배님들이 걸어 오셨듯이 어둡고 쓸쓸한 길을 열심히 걷겠습니다. 앞으로 이 문학상이 기대하는 시인으로 성장하는데 한 눈을 팔지 않겠습니다.
김춘수 시인은 시안(詩眼)에서 시에도 눈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의 눈은 일상적인 사람의 눈과는 달리 이쪽은 보지 않고 저쪽도 보지 않고 그쪽만 보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다고 했습니다. 시의 눈으로 바라 볼 때 한 송이 꽃이 피어난다고 했듯이 저도 바람에 시달리고 비를 달래며 꽃을 피워 보겠습니다. 그들과 같이 쪼그리고 앉아 햇빛과 구름과 새 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제가 수상하도록 배려해 주신 분들 뜻 잊지 않겠습니다. 그간 제 시들을 지켜보아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많이 부족한 제 시를 읽고 격려해주신 심사위원님 깊이 감사 인사 올립니다. 아름다운 통영을 문학의 메카로 만드느라 애쓰시는 관계자 여러분께도 마음 단정히 하고 인사드립니다.
2012년 초 여름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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