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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50) - 시의 매혹과 이면

문근영 2014. 3. 8. 11:02

시의 매혹과 이면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50)
 
홍일표
여름

      함성호 
 
음악을 꺼 줄래?
 
빗소리를 듣자
 
이 천지간
 
 
# 떼 지어 다니며 하나의 부족을 형성하고, 여기저기서
영주로 군림하는 자들 앞에 머리 조아리며 떡 하나 떨어지기를 고대하는 문학판의 불쌍한 중생들을 굽어 살피어 마침내 위대한 시공화국의 도래를 선포하노라. 바야흐로 결핍의 제왕들인 시인들은 먹지 않고도 배부를 것이요 서로 북 치고 장구 치며 태평성대를 구가할 것이니라.  
 
그 와중에 시와 비평의
전략적 야합도 횡행하여 이제 그걸 시비하는 자도 없고 날로날로 시단은 풍요롭고 아름다워지고 있으니 시인들의 처연한 욕망도 끝을 향하고 있음이라. 무릇 시라고 하는 것이 영혼의 무늬를 드러내고 생의 비경을 밝히는 것이라 한다면 시궁창 같은 삶의 구렁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나 구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똥구덩이의 구더기로 전락한다면 그것이 진정 시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상처학교의 시인들」이 모여 사는 시단엔
신라골품제도처럼 출신성분이라는 것이 있어 신분 상승을 노리는 허다한 중생들이 몸부림치고 있노라. 자존으로 버텨야 할 문사의 모습이 가관이도다. 일부 비평이라 하는 것도 붓끝이 오뉴월 개✕처럼 흐물거리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 배꼽을 잡고 웃어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로다. 좁은 시단, 한 사람 건너면 서로 다 아는 것. 아마추어리즘이 지배하는 시단의 앞날에 대한 우려가 몇몇 사람들에 의해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은 그 목소리가 크지 않도다.
 
이제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할 때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주례사 비평을 넘어 근친상간 비평에까지 이르렀으니 참으로 눈부신 진화로다. 상처학교의 시인들이 결핍의 질병을 치유하자는데 웬 시비냐고 삿대질을 할지 모르겠으나 때는 21세기 대명천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함에도 그 누구도 제 눈을 송곳으로 찌르는 자도 없고, 리볼버 권총으로 제
심장을 겨누는 자도 없도다. 나는 이것을 대한민국 문학의 후진성과 프로정신의 부재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음이라. 오호통재라(嗚呼痛哉)! 나 또한 이 모든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시단의 한 구석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로다.
 
김수영은 죽어 멀리 있고, 살아있는 시인들은 모두 거룩하게
묵언수행 중이니 오늘도 나 혼자 땡중처럼 잡소리만 늘어놓고 있는 것이라. 그래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그냥 빗소리나 듣자.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문화저널21'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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