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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의 책읽기 나의 문학 - 장석주 시인

문근영 2014. 3. 8. 11:01

나의 책읽기 나의 문학


장 석 주

 


오늘 여러분들과 대략 한 시간 가량 문학과 삶, 책읽기, 이렇게 세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저는 1975년에 『월간문학』 신인상에 시로 등단을 했는데, 그때 제 나이가 스무살이었죠. 시를 처음 쓴 것은 열다섯 살 때입니다. 당시  󰡔학원󰡕 이란 잡지가 있었습니다. 그 잡지에는 학생들이 투고한 시나 소설을 뽑아 게재하는 「학원문단」이 있었지요. 선자(選者)가 시인 고은 선생이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시를 투고했는데, 그게 뽑혀 실렸어요. 제 시가 활자화되어 실렸다는 게 펄쩍 뛸 만큼 기뻤습니다. 그 󰡔학원󰡕 에서 해마다 시행하는 ‘학원문학상’에도 제 시가 뽑혔습니다. 전국의 문학소년 소녀들이 응모한 수 천편의 시 중에서 제 것이 뽑혔다는 게 참 황홀했습니다. 유명 문인들 중에도 이 ‘학원문학상’ 출신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하, 황동규, 김병익, 마종기, 황석영, 조해일, 조세희, 최인호, 이하석, 정호승…… 이런 분들이 ‘학원문학상’을 받았지요. 시를 쓰게 된 것은 주변 누구의 영향이나 가르침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책읽기를 좋아했는데, 그게 글쓰기의 바탕이 되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한국문학전집, 이광수, 황순원, 김동리, 그리고 헤르만 헤세, 알베르 카뮈, 헤밍웨이의 소설들을 읽었습니다. 그 무렵 소설가 오영수 전집을 읽게 된 것도 행운이었지요. 문학은 그런 책읽기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지요. 누적된 독서 경험 속에서 어느덧 ‘나도 한번 써 봐야 되겠다.’ 라는 생각이 자라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노트에 뭔가를 끼적였던 거지요. 책을 왜 좋아했는지, 왜 글을 쓰게 됐는지는 꼬집어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제 안에 타고난 어떤 내적 본성들, 우리가 흔히 DNA라고 하는 것 속에 문학을 지향하는 혹은 아름다움을 향유하고 그런데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어떤 특이점이 제 세포 속에 들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 나고 자란 환경이 제가 글을 쓰도록 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만약에 문자를 깨치지 못하고 책을 읽을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면 그래도 제가 문학을 했을까요? 아마 못했겠죠. 물론 문자 없이도 깨달음을 얻은 선사(禪師)가 있긴 하지만 제가 문자를 깨치고 문자로 이루어진 문명 세계의 일원이었다는 것은 제 글쓰기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코이라는 물고기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일본에서 키우는 관상용 물고기인데요. 이 코이란 물고기를 보면 생명 개체에게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작은 어항에서 이 물고기를 키우면 3cm에서 5cm 정도 자라고 성장을 마칩니다. 연못에서 키우면 12cm에서 15cm까지 자라고, 큰 호수나 강에서 키우면 1미터까지 자랍니다. 이 물고기가 어떤 환경조건에 놓이느냐에 따라서 그 성체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거지요. 한 사람의 삶도 제 타고난 재능과 실존적 의지나 선택에 의해 뭐가 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삶을 감싸는 테두리로서의 세계, 그것이 허락하는 한에서만 그 삶이 만들어진다는 거지요. 삶은 환경이라는 물리적 제약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떤 세계, 어떤 물리적 환경이 삶의 의미와 규모를 제약하고 최종적으로 결정합니다. 우리는 생물학적 존재로서 저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환경 혹은 정치경제적 환경, 이런 사정과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한 사람의 삶이 결정된다는 거지요.

제가 1975년도에 등단해서 35년 동안 시를 쓰고 비평을 하고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제 안에 있는 문학에 본성적으로 끌리는 특성들뿐만 아니라, 제가 처한 생활환경이 저로 하여금 글을 쓸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것이지요. 제 글쓰기는 타고난 재능 때문이 아니라, 제 밖에 있는 요소들과 제 안에 있는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스미고 섞이며 일어나는 상호작용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한반도의 중부라고 할 수 있는 충청남도 논산의 한 시골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인동 장씨였고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친가가 아니라 외가입니다. 제 어머니는 광산 김가였는데, 그 광산 김가의 옛집에서 태어난 거지요. 제가 태어난 동네는 광산 김가의 문중이 제법 살림 규모도 크고 큰 소리를 치는 곳이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양반 가문이라는 자긍심이 강한 광산 김가들이 많았는데, 저는 그들에게 타성바지라고 괄시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제 조부모들은 경상도 쪽에서 호남 쪽으로 이주를 했다고 합니다. 이주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 살기 위해서 그랬겠죠. 그분들이 정착한 곳이 지금의 전주 인근입니다. 아버지는 거기서 고등학교까지 다니셨습니다. 육이오 전쟁이 일어난 뒤 어찌어찌 하다가 정착한 곳이 제 외가가 있는 논산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열 살까지 살다가 서울 청운초등학교로 전학을 해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서울에서 약 36년 정도 살았으니까, 제 인성이나 인격, 감수성 이런 것들을 물리적으로 제약하고 형성한 것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여러 요소들이라고 봐야겠지요. 

저는 1955년 음력 1월 8일에 태어났습니다.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2년쯤 지난 뒤지요. 사회학자들은 저희를 베이비붐 세대라고 합니다. 지금 이 세대들이 기업체의 중견 간부들이거나 이미 회사나 조직사회에서 물러난 사람도 많습니다. 옛 고등학교 친구들은 기업체, 은행 등등을 퇴직을 하고 복덕방이나 자영업에 종사하거나, 혹은 백수로 소일하거나 주유소 따위를 경영하고 있지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직을 하고 노년을 맞을 준비를 하는 그런 세대라고 할 수 있지요. 아무튼 전후에 아이들이 갑자기 많이 태어나고 그래서 입시 경쟁도 치열하게 치러야만 했습니다. 1960년대에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그때는 한국사회가 너나없이 가난이 평준화된 그런 사회환경에서 성장을 했습니다. 아무튼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고, 좋은 학교에 진학해야만 나중에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는, 무한경쟁에 내동댕이쳐진 베이비붐 세대라는 것, 그것이 또 아마 제 삶을 규정짓는 한 어떤 요소가 되겠죠.

스무 살 무렵에 갈등들이 많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고, 산다는 것이 더할 수 없이 암울하고 고통스러웠지요. 내가 무엇을 하며 나를 부양할지, 가족들이 생긴다면 그들을 굶기지 않고 부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그런 불안과 두려움이 컸다는 거지요. 그때도 글을 썼는데, 문학이라는 것이 과연 삶을 다 걸고 그것을 통해서 뭔가 자기를 부양하고 살 수 있는 직업이 될 수 있는지 회의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시 쓰기를 그만 두고 방황도 했지만, 문학에 한 번 사로잡히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참 힘들더라고요. 몇 년 뒤에 다시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월간문학󰡕 신인상에 시가 당선해서 등단한 게 스무 살 때입니다. 󰡔월간문학󰡕으로 등단했지만 다른 잡지에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간지의 신춘문예 공모에 계속 투고했는데 한 4년 최종심에서만 연거푸 떨어졌습니다. 그러다가 1979년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하고, 같은 해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입선을 해서 시와 평론을 겸업하게 됩니다. 엉켜있던 인생의 실마리들이 그때부터 풀리기 시작했지요. 신춘문예 당선 통보를 받은 직후 한 출판사 편집부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스카우트지요. 시인 선배가 자신이 일하는 출판사 편집부에 와서 책 만드는 일을 배워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1979년도 1월부터 출판사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글은 혼자 쓰고, 사실은 미술반 활동을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색에 대한 감각이라든지, 균형과 조화, 비례, 공간구성 따위의 미적인 감각들이 키워졌던 것 같아요. 나중에 이런 게 책 만드는 일에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출판사에 입사하면서 원고의 교정교열은 물론이고, 인쇄소에 가서 직접 인쇄 과정도 눈여겨보고 제책소에 가서 사람들에게 커피나 담배를 사주면서 제책 과정을 꼼꼼하게 ‘현장실습’으로 배웠습니다. 표지 디자인, 신문이나 잡지에 나가는 광고 디자인까지 하게 되었지요. 제가 출판사를 경영할 때는 직접 표지를 디자인하고 신문 광고를 디자인했지요. 교보문고가 제정한 표지 디자인전에서 헤르만 헤세 시집 표지 디자인으로 우수상을 받기도 했지요. ‘아, 책 만드는 일을 잘하면 생계는 해결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 글을 쓰려면 경제적 토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수단으로 삼은 게 출판사 경영이었던 것이지요.

1980년대 초 ‘청하’라는 출판사를 등록하고 독립했습니다. 자본도 없고 인맥도 없는데, 오로지 젊은 혈기와 의욕만 갖고 출판사를 시작했던 거지요. 20대 중반을 막 넘긴 나이였으니까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던 시기였죠. 그런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1년 뒤에 제 출판사에서 낸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지요. 몇 년 되에는 밀리언셀러 시집도 나왔습니다. 『홀로서기』』라는 시집인데, 그 시집이 200만부쯤 팔렸습니다. 출판사를 시작할 때 또 하나의 꿈은 ‘젊은 번역자들이 번역한 원고로 새로운 니체전집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지요. 제가 19살 때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어요. 가장 힘들고 절망할 때 저를 세워준 책이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영국의 비평가인 콜린 윌슨이 쓴 󰡔아웃사이더󰡕입니다. 그 책들은 평생 글을 써서 먹고 살겠다는 제 꿈을 밝혀주는 등대가 되었지요. 등대가 되어 제 삶을 비춰주던 그 책들에 대한 보답으로 니체전집을 만들겠다고 결심을 했던 거지요. 대략 10년에 걸쳐서 열권으로 된 니체전집을 완간했습니다. 물론 니체전집을 만드는데 꽤 많이 들어갔지만, 책들도 잘 나갔습니다. 참 운이 좋았지요. 지금이라면 팔리지도 않을 책들이, 그때는 다 잘 나갔어요. 출판사는 번창을 했습니다. 10년 뒤에는 서울의 청담동에 자그마한 5층 빌딩을 살 정도로 출판사로서 기반을 다지고 성공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 한구석에는 허전한 게 있었어요. 출판사를 하느라고, 정말 일에만 매진하느라고 제 글을 못 썼습니다. 그게 제 생의 안쪽에 불만으로 누적되었습니다. 출판사가 성공을 해도 저는 사는 게 즐겁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런 와중에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이던 마광수 선생의 소설을 출간했는데, 그게 문제가 되어서 검찰 수사를 받고 구속이 됐습니다. 1992년 10월 29일입니다. 그 당시 사회적으로 꽤나 떠들썩했던 필화사건입니다. 1980년대 김지하 선생이나 지식인, 대학교수들이 필화사건으로 구속된 바가 있지만, 그것은 민주화 투쟁이라는 영예로운 명분이 있었지요. 그러나 마광수 교수와 제게 씌워진 것은 음란문서 제조반포죄라는 매우 수치스런 죄명이지요. 서울구치소에는 정확하게 61일 있었습니다. 1992년 12월 30일에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연말과 새해를 침울하게 보내고 이듬해 1월 3일인가 4일쯤에 비행기를 타고 서귀포로 내려갔습니다. 한 달 동안 서귀포에 머물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숙고하다가 우선 출판사를 정리하기로 결단을 내렸지요. 

1993년도에 출판사를 정리하고 저는 글쓰는 사람으로 돌아왔습니다. 출판사는 부도를 낸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정리한 것이지요. 그동안 누렸던 기득권들을 다 포기한 거지요. 많은 희생들이 따랐고, 삶에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지요. 그때부터 제가 자료를 준비하고 쓰기 시작한 책이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이라는 책입니다. 7년 동안 대략 15,000매 분량의 원고를 썼습니다. 2000년도에 다섯 권짜리 책으로 나왔습니다. 2000년도에 그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바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경기도 안성에 집을 짓고 내려갔습니다. 안성으로 내려온 지 벌써 10년이 지나서 11년째를 맞고 있습니다.

2000년 이후 안성에 ‘수졸재’라는 집을 지어 산 것이 제 인생의 제2막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안성에 내려올 때 수중에 있던 돈은 성북동의 29평짜리 연립주택 전세금 6,500만원이 전부였어요. 안성의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 고추밭을 밀고 작은 집 두 채를 지었습니다. 호수가 내다보이는 풍광이 수려한 곳이지요. 시골집을 짓고 들어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주로 서양 철학, 서양 문학 쪽에 경도되어 있었는데, 이제 동양고전을 본격적으로 읽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노자의 󰡔도덕경󰡕 읽기를 시작했지요. 󰡔도덕경󰡕을 10년 동안 한 200번은 읽었을 겁니다. 그 정도면 󰡔도덕경󰡕을 거의 다 외우게 됩니다. 󰡔도덕경󰡕은 분량이 많지 않아요. 전부 81장이고, 각 장의 내용은 길지 않습니다. 그 다음으로 󰡔장자󰡕를 100번 이상을 읽고, 이어서 『논어』와 『주역』도 읽었습니다. 원전만 읽은 게 아니라 여러 학자들이 풀이한 책도 수백 권은 읽었지요. 그동안 읽지 못했던 다양한 분야의 책들도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대략 따져보면 한 4,000~5,000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성에는 아무 연고도 없고 생계 수단도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굶지 않고 잘 살고 있습니다. 좀 신기하죠? 사람이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리더군요. 딱히 고정수입원이라고 할 수 있는 벌이가 없어 먹고 살기도 힘든데, 그 많은 책들을 어떻게 사 봤을까요? 기업인 한 분이 후원자로 나서서 몇 년 동안 제 책값을 보태줬습니다. 달마다 꼬박꼬박 빠뜨리지 않고 제 통장에 책값을 보내줬어요. 시인 장 아무개가 시골에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한다더라, 이런 소문이 나니까 여러 잡지사에서 기자를 보내 집과 사는 모습을 찍고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그 다음에 방송사들이 또 오더라고요. 2005년도에 EBS에서 제 사는 모습을 찍고 그걸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으로 방영했어요. 그 뒤로 MBC TV에도 나오고, 라디오나 신문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었지요. ‘수졸재’란 곳이 널리 알려졌지요. 그 뒤로 사보나 잡지에서 원고 청탁들이 쏟아졌어요. 한 달에 열 군데 스무 군데 이렇게 청탁이 쏟아져오는 거예요. 사보는 원고료가 셉니다. 다달이 쏟아지는 사보 청탁 원고를 쓰니까 생계비를 버는 문제는 해결이 되더군요. 신문이나 잡지사에서 찾아와 연재를 맡기고, 대학에 와서 강의를 해 달라는 요청도 이어졌습니다. 출판사에서는 계약금을 갖고 와서 책을 내자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국민연금도 내고 의료보험도 냈습니다.

물론 시골에서는 국민연금도 안내고 의료보험도 안내는 고라니나 박새들도 잘 삽니다. ‘수졸재’ 주변은 자연 생태가 잘 보전되어 야생 동물이 많습니다. 너구리나 고라니들도 수시로 마주칩니다. 제가 밥 지으려고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면 너구리 가족들이 마당으로 올라와서 제 모습을 창문으로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도 하지요. 그 시골집에서 새벽 4시나 5시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을 하며 살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잠들고 새벽에 일어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꾸역꾸역 글을 쓰고 책을 읽었지요. 이제 먹고 사는 일을 애써 쫓아가지 않아도 살 만 해졌습니다. 지난 10년 동안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읽고 싶은 책들을 온전하게 읽는 시간이었지요. 시골에서 조촐하게 산 이 10년이라는 시간이 제겐 너무나 큰 축복으로 느껴집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많이 바빠졌습니다. 일 년에 4,000매에서 5,000매 정도의 원고를 씁니다. 쓰는 일을 줄여야 합니다. 줄일 작정입니다. 지난 10 년 동안 단행본을 20권도 넘게 출간했어요. 미출간된 것까지 더하면 30권은 족히 썼을 거예요. 올 여름엔 몹시 무더웠지 않습니까? 책을 쓰면서 체력의 한계에 부닥쳤습니다. 체력이 고갈상태에 빠져서 병원에서 링거를 맞았지요. 의사가 좀 쉬라고 하더군요. 올해 책 쓰는 일들을 정리하고 속도를 늦추려고 합니다. 제가 글에서는 ‘느리게 살아라.’ ‘비우며 살아라’ 라고 했는데 정작 저 자신은 느리게 살 수 있는 여유를 잃어버렸어요. 저는 늘 비우려고 하는데 비우는 속도보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채워지는 부분들이 더 많았다는 얘기죠. 느림과 비움에 관한 글들을 써서 먹고 살았으니, 진짜 느리고 비우는 삶을 온전하게 누리고 싶습니다. 그 즐거움과 행복을 향유하며 살고 싶습니다.

책이 없었다면 아마 저라는 사람도 없었을 겁니다. 책들을 읽으면서 제 안에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또 제 길을 찾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학과 공부를 소홀히 하고 책을 읽는 걸 제 부모들은 아주 싫어했습니다. 책을 읽으면 밥이 나오느냐 떡이 나오느냐란 말을 입에 달고 사셨지요. 지금 노모를 모시고 사는데 노모는 별로 잔소리가 없습니다. 책을 많이 읽으니 밥도 나오고 떡도 나오고 명예도 생기는 것을 눈으로 보시거든요. 다치바나 다카시는 『지의 정원』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이 인식하는 모든 것은 경험과 감각의 입력에 기초하여 성립합니다. 감각입력을 모두 제거하면 인식능력 자체가 붕괴된다는 사실은 많은 감각차단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됐고요. 제가 그런 실험에 참가한 적이 있어서 잘 아는데, 인간에게서 시각·청각·피부감각(촉각, 온도감각 등)을 빼앗으면,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연계가 끊어지고 자신이 어떤 객관화된 세계에 속한 존재라는 감이 없어지면 세계가 붕괴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자기존재감은 줄어들고 점점 환각세계 속에 녹아드는 기분에 휩싸이다 어느 순간 의식을 잃고 잠이 들지요. 매우 고고해 보이는 순수이성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나날이 줄어드는 자기존재감과 싸우며 새벽마다 마당을 건너서 서재에 앉아서 책을 읽습니다. 책읽기는 세계와의 연계를 이어주는 다리지요. 제 서가에는 해마다 장서가 1천 권씩 늘어납니다. 벌과 나비가 꽃에서 꿀을 파듯이 책을 파는 한 창백한 독서광으로 사는 게 저는 즐겁습니다. 저는 지난 10여 년 동안 내면에 지적 법열감과 행복으로 충만한 시기를 살았지요. 왜 그렇게 책을 읽는가? 책읽기가 주는 청정한 즐거움 때문이지요. 책을 읽으면 앎과 사유의 즐거움으로 가슴이 터질 듯 벅차오릅니다. 오늘날 같이 지적 생산이 다채롭고 풍요롭게 이루어지는 문명세계에서는 철저하게, 깊이 있게 책들을 읽지 않는다면 그 흐름을 쫓아가기 힘들지요.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제 의지대로 방향을 잡고 충만한 삶을 사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변화 속에서 좌충우돌하거나 시행착오를 피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아울러 책을 읽지 않는 삶은 피상적이고 밀도는 성기고, 독선과 아집에 빠지기 쉽습니다. 책읽기의 최종 목적은 지식 습득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사유를 하는 것! 책읽기를 통해 지식의 전체상에 접근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지식을 ‘통섭’할 수 있는 사유의 총량을 키워야 합니다. 그럴 때 읽는 행위의 능동성은 뇌 회로를 새롭게 여는 수단이 되고 궁극적으로 사유의 복잡성을 견뎌낼 수 있게 합니다. 책속의 지식과 지식들이 충돌하며 일으키는 사유의 불꽃들과 함께 타오르며, 즉 책읽기의 열락(悅樂)을 사유의 향연으로 바꿀 때, 그리하여 독서의 총량을 지렛대 삼아 지식생산자로 나설 때 비로소 진정한 독서인으로 거듭날 수 있지요. 이런 부단한 책읽기를 통해 자기를 넘어서서 초인류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 노모의 불만은 제가 집에서 아무 말이 없는 것이지요. 제가 말이 없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거지요. 제가 어딘가에서 말을 하면 돈을 받거든요. 1년에 30회에서 40회 정도 이러저러한 곳에서 강연을 합니다. 올해 들어 부쩍 강연 요청이 늘었습니다. CEO들이 최근 인문학에 관심을 많이 갖고 그걸 알려고 합니다. CEO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 요청이 많습니다. 노모에게 한 시간 얘기를 했다고 돈을 달라고 할 수는 없지요. 그러니 집에서는 제가 입을 닫고 삽니다. 웃자고 한 얘긴데, 웃지를 않으시네요.

저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쉬지 않고 읽습니다. 문학, 철학, 역사, 미시사, 뇌과학, 사회생물학, 양자역학…… 등등. 최근에는 자연 과학분야의 책들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뇌과학, 물리학, 양자역학, 분자생물학 책들도 부지런히 찾아 읽었습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얼마나 많은 별들이 떠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은하는 수천억 개의 별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수없이 많습니다. 천억 개의 별들을 가진 은하가 또 천억 개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우주가 얼마나 광활합니까? 지금도 우주는 팽창중인데요. 여러분도 빅뱅이라고 들어보셨을 거예요.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합니다. 이 우주의 역사가 얼마나 될까요? 과학자들은 우주 나이가 137억년이 됐다고 그럽니다. 이 우주는 나중에 어떻게 될까요? 태양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지요. 태양이 사라지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요? 지구의 생물종들도 사라지겠지요. 인류는 어떻게 될까요? 물론 인류와 그 문명도 지구에서 사라지겠지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것은 몇 십 년 뒤에 일어날 일이 아니고 몇 십억 년 뒤에나 일어날 테니까요. ‘나’란 존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런 본질적인 물음을 항상 품어왔습니다. 이 생명의 근원을 파고들다 보면 자연과학 책들을 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지식의 바탕 위에서 사유를 하고 인식세계를 키워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바탕 위에서 시를 쓰고 비평을 하는 거지요. 그래야만 깊이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요즘 지식계의 화두는 ‘통섭’입니다.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이나 양자 역학을 모르는 인문학자는 요즘 지식사회에서는 퇴물 취급을 당합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은 상호삼투하면서 지식의 융합을 일궈냅니다. 이질성으로 딴 길을 가는 것으로 보이는 지식들이 실은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논의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주목받은 어휘가 ‘통섭consilience’이지요. 통섭은 잘게 쪼개진 지식 간의 벽을 허물자는 지식계에 불어 닥친 새 흐름의 지표어입니다. 자연과학·사회과학·인문학·예술들 사이에는 벽이 있고, 그 벽과 벽 사이에는 얼음이 끼어 있습니다. 그 얼음을 녹여 벽을 허물자는 얘기지요. 얼음 녹이기ice melting는 소통이 그 핵심이지요. 그 최종적인 효과는 지식과 지식의 경계를 넘나듦이고 여럿을 녹여서 하나 됨입니다. ‘통섭’ 세계관의 핵심은 에드워드 윌슨이란 학자에 따르면 “모든 현상들― 예컨대, 별의 탄생에서 사회 조직의 작동에 이르기까지 ―이 비록 길게 비비 꼬인 연쇄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물리 법칙들로 환원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윌슨은 경계를 허물고 큰 틀에서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서로 넘나들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하지요. 예를들면 생화학, 세포학, 유전학, 생리학, 생태학 등 수평적으로 세분화되어 있는 생물학을 통합생물학으로 합쳐서 생명의 다양성을 포괄적으로 연구·이해하자는 시도지요. 이런 혁신적 사고에 이론적인 기초를 깔아준 사람이 에드워드 윌슨입니다. 윌슨은 생물학과 사회과학, 인문학, 더 나아가 종교까지 지식의 범주에 넣어 이 모든 지식의 대통합을 제안하지요. “통섭은 봉합선이 없는 인과관계의 망이다”라는 생각의 바탕 위에서는 생물학, 철학, 윤리학, 경제학, 사회학, 심지어 예술, 종교에 이르기까지 통섭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윌슨은 사회과학자나 구조주의자들, 우리가 박식하다고 생각하는 이런 지식인들을 무시해요. 자연과학을 알지 못한다고 지적 사기꾼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합니다. 윌슨의 주장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 정도로 사회학이나 철학 전공자들이 자연과학에 대한 바탕이 없는 인문과학이란 게 오류를 너무 많이 안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앎이 어떤 ‘전체성’을 가지려면 자연과학 분야의 책들을 충분히 읽어야 하겠지요.

여러분들이 무언가 제대로 무엇을 알기 위해서는 그렇게 소설이나 에세이와 같이 말랑말랑한 분야만 편식을 하지 말고 자연과학 분야의 딱딱한 책들도 광범위하게 읽어야 됩니다. 책읽기로 성공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롤모델로 삼은 지식인이 일본에서 ‘지(知)의 거인’이라고 추앙을 받는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사람입니다. 정말 대단한 책읽기의 달인이죠. 다치바나 다카시는 도쿄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문예춘추사에 취직을 합니다. 문예춘추사는 월급도 많고 대우도 좋은 그런 큰 회사지요. 그는 이 회사에서 3년 정도 일하다가 읽지 못하는 책들이 책상에 쌓인다고, 이것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사표를 던집니다. 다시 도쿄대학 철학과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그 뒤로 전업저술가로 나서서 명성을 떨치는 분입니다. 정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썼습니다. 일본의 정치나 사회, 교육문제에 관한 책, 우주에 관한 책, 임사체험…… 이 책들 하나하나가 나올 때마다 일본 사회에 이슈가 되고, 일본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그의 남다른 지력과 내공은 대단한 책읽기에서 나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장서는 대략 4만권 정도라고 합니다. 이 정도면 책 무게가 어마어마합니다. 아파트가 주저앉을 정도지요. 그래서 다치바나 다카시는 건물을 하나 지었습니다. 4층짜리 건물인데, 그게 일본에서도 꽤 유명한 고양이 빌딩입니다. KBS 텔레비전의 ‘TV-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소개가 되었지요. 그는 책을 한 권 쓸 때마다 참고도서로 읽는 책이 400권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50권을 썼다면 대략 2만권을 읽은 셈이겠죠. 정말 대단합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그의 서재에 어떤 책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국내에 번역된 그의 저서를 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밖에서 지식을 갖고 안으로 들여오는 것은 인풋(input)이고, 책이나 강연을 통해서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아웃풋(output)이라고 합니다. 지식의 세계에서 인풋이 없으면 아웃풋도 없습니다. 항상 인풋이 크고 아웃풋이 작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책이든지 강연이든지 퀄리티가 높아지게 되지요. 인풋이 크면 클수록 아웃풋의 밀도와 깊이가 더 많이 생긴다는 거지요. 조금 알고 많이 퍼내면 어떻게 되요? 금방 바닥이 드러나지요. 무식이 들통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더 많은 책들, 더 많은 자료들을 충실하게 소화해서 책을 써 내야 훨씬 더 좋은 책을 써 낼 수 있다는 거지요. 정말 맞는 이야기 아닙니까? 인풋과 아웃풋의 비례, 이런 것은 마음에 새겨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문자를 안다고 아무나 책을 읽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책읽기도 훈련되어야 됩니다. 인류가 출현하고 아주 오랜 뒤에 문자가 생겨났지요. 인류 역사로 따져볼 때 문자 발생은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책이 나온 것은 그 문자가 나온 한참 뒤의 일이고요. 그러니까 책 읽는 뇌라는 것은 우리가 본성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후천적으로 학습과 훈련에서 만들어진 거라는 얘기지요. 여러분의 뇌를 책읽기에 최적화 상태로 훈련과 학습을 하지 않는다면 책을 효율적으로 읽지 못합니다.

400쪽짜리 인문학 분야의 책을 주며 읽으라고 해도 어떤 사람은 도저히 완독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한 50쪽 읽으면 40쪽까지 내용은 잊어버려요. 다시 앞으로 돌아갑니다. 그런 경험들 하셨죠? 그게 반복되는 겁니다. 결국 50쪽에서 책읽기가 멈추는 거예요. 먼저 자신의 평상적인 뇌를 책읽기에 최적화된 뇌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과 기술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책을 많이 읽음으로써 터득할 수 있는 거지요. 책읽기 자체가 훈련이고 학습인 거죠. 제가 책읽기와 관련된 유용한 팁을 하나 알려드린다고 했는데요. 아마 이 얘기를 들으시면 좋아하실 겁니다. “책을 읽고 굳이 기억하려고 하지 마라. 기억에 대한 강박증을 털어버려라.”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 그걸 다 기억해야 한다는 강박증을 갖고 있어요. 이건 잘못된 거예요. 사람의 뇌는 읽은 걸 다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책이 왜 생겨났습니까? 기억의 부실함을 보완하려고 책이 만들어진 겁니다. 기억이 부실하니까 책이 만들어졌는데, 그 부실한 기억 속에 책을 다 담을 수가 없지요. 보는 능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현미경과 망원경이 나오고,  손의 기능을 확장하려고 쟁기와 포크레인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기억을 보완하려고 책이 생겨난 겁니다. 독서를 두 가지로 나누자면, 금방 써 먹을 수 있는 독서와 자기 성장을 위한 독서로 나눌 수가 있겠지요. 금방 써먹을 수 있는 독서와 자기 성장을 위한 독서는 1:9의 비율이 되어야 합니다. 수험생 빼놓고는 굳이 그렇게 달달달 외우는 책 읽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지요. 대개의 책읽기는 자기 성장을 위한 독서가 되어야 하지요.

망각하는 능력은 또 하나의 축복입니다. 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책을 읽을 수 있어요. 지난 10년 동안 5,000권 읽었는데 그걸 제가 머릿속에 다 담고 있으려면 제 머리는 터졌겠죠. 그걸 다 머릿속에 넣고 살 수는 없습니다. 망각은 기억의 풍요화에 기여합니다. 망각은 읽지 않은 것에 대한 지식을 만들기도 해요. 망각은 창조의 시작이라는 거지요. 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애버리세요. 제가 읽은 책들은 깨끗합니다. 책을 읽을 때 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거나 표시를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느냐? 표식을 하면 다음에 읽을 때 그 대목에서 눈길이 또 머물고 그것만 굳이 기억합니다. 표식이 없어야만 처음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부분을 똑같이 읽게 됩니다. 그때 처음 책읽기에서 놓쳤던 더 중요한 대목이 제 눈에 들어옵니다. 꼭 줄긋고 읽어야 될 책이라면 저는 똑같은 책을 두 권 삽니다. 한 권은 표식을 하고 다른 한 권은 깨끗한 채로 놔두죠. 그래야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혹은 놓쳤던 더 중요한 부분을 그 다음에 볼 수 있으니까요.

21세기에 들어온 지도 벌써 10년이 넘어섰는데요. 그 사이 세상이 엄청나게 달라졌습니다. 달라진 것을 실감하시나요? 20세기와 21세기는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저는 김지하 선생님 책에서도 그런 깨달음과 암시를 많이 받았는데, 첫째로 20세기가 양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음의 시대라는 겁니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고 활동 범주가 실질적으로 점점 커짐을 느낄 수 있지요. 남성이 양의 존재라면 여성은 음의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여성이 진출하지 않는 분야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이 남성의 지적·신체적 능력을 압도해요. 이 우주 기운 자체가 양의 기운에서 음의 기운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더 남자에게서 여자에게로 주도권이 넘어갑니다.

20세기는 도덕과 이성의 세기였지요. 도덕과 이성은 남자들의 전유물입니다. 분명히 20세기 가치의 중심은 도덕과 이성이었지요. 21세기는 이게 감성과 꿈으로 바뀝니다. 도덕이 취향으로 대체된다는 거지요. 그전에는 옳으냐 그르냐가 가치 판단의 척도였다면 지금은 이게 좋으냐 싫으냐로 바뀌었다는 거지요. 도덕과 이성보다는 감성과 꿈이 우선합니다. 20세기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사람들이 영웅이었다면, 21세기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람들이 영웅입니다. 20세기에 재산 목록의 으뜸으로 꼽는 게 토지나 건물이나 공장, 하드웨어 같은 것들이지요. 이렇게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 규모가 있는 것, 이런 게 재산 목록들이죠? 21세기는 지식과 창의성에서 나오는 것,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무형의 것, 즉 지적 재산권, 특허권, 소프트웨어가 주요 재산 목록에 들어갑니다. 21세기를 주도하는 건 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지요. 정주영, 박태준, 박정희 같은 사람들이 20세기형 영웅이었다면, 지금은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스티븐 스필버그, 안철수 같은 사람들이 요즘 청소년들의 롤모델이지요. 20세기가 좌뇌의 전성시대였다면, 21세기는 우뇌를 잘 쓰는 사람이 대우를 받는 시대입니다. 좌뇌와 우뇌는 달라요. 수리, 논리, 계산 같은 건 좌뇌에서 잘 처리합니다만, 직관, 통찰, 영감, 감성, 창의성 따위는 우뇌가 잘하는 것들이지요. 최근 뇌 과학 연구가 엄청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뇌에 관한 새로운 연구와 지식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어요. 저는 뇌 과학 책들을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책 읽기를 통해 우뇌 능력을 더 키울 수가 있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같은 것들을 통해 얻는 지식은 좌뇌 자극을 더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에 우뇌 자극은 미약하다는 거지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고전음악을 들으면 우뇌 자극이 활발해지고 우뇌가 더 발달합니다. 시쓰기와 같은 예술 교육이 중요하고 학교 교육에서 예술교육이 더 강화돼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 현실은 어떻습니까? 수능시험과 무관한 예술교육은 학교교육에서 거의 죽어가고 있습니다.

시를 가르치는데, 박두진의 <해>에서 해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런 식의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해>는 식민지 조국의 광복이 아닙니다. 백 사람이 읽으면 백 개의 대답이 나오는 겁니다. 시는 은유와 상징으로 이루어집니다. 은유는 다의적 해석이 가능하지요. 해석의 다양성이 열려 있는 겁니다. 시인들은 하나를 생각하고 쓰는 게 아니예요. 시인은 시 한 줄에 우주를 압축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시인이란 다 천재들이지요. 그러니까 “시인은 모래 안에서 우주를”를 보지요. 김수영 시인도 “시를 아는 것은 우주를 아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시는 앎의 궁극이고, 형이상학의 극치입니다. 시는 우주의 비밀을 담은 압축파일입니다. 시는 말랑말랑한 뇌를 끊임없이 단련시킵니다. 여러분의 자녀에게 좋은 끊임없이 시를 읽히고 다양한 분야의 책읽기를 통해 우뇌를 더 많이 자극하고 발달시키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책을 읽고 다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길 했는데 그러면 책을 읽은 효과를 보지 못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콩나물시루를 비유로 들어 설명합니다. 콩나물 키워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콩나물시루에는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어요.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이 구멍으로 다 빠져나가요. 그렇지만 콩나물은 쑥쑥 자라죠. 책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읽은 뒤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도 이미 책읽기에 몰입해 있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지적 성장을 합니다. 다만 피동적인 독서가 되어서는 안돼요. 저자의 목소리를 그냥 따라가는 독서여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책읽기는 일방향적 소통이 아니라 쌍방향적 소통이 되어야 됩니다. 저자에게 의문을 제기하고 반론을 던지고 해답을 구하는 능동적인 책읽기가 되어야 하지요. 자기가 아는 지식과 저자가 제시하는 지식을 비교하고 무엇이 다른가를 따져봐야 합니다. 왜 다른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합니다. 기억하기보다 더 중요한 게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구하는 대화적 책읽기입니다. 눈으로만 읽는 책읽기가 아니라 사유하는 책읽기, 풍부한 사유 속에서 인식의 세계를 확장하는 책읽기에 몰입해야 한다는 거죠. 이게 제대로 된 책 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그만큼 내적 성장을 하는 겁니다. 콩나물시루에서 물이 밑으로 다 빠져나가지만, 콩나물이 쑥쑥 자라듯이. 책의 디테일이나 세부 지식들을 다 기억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책을 읽는 동안 우리의 자아와 사유세계는 성장하는 겁니다.

아마 최근에 가장 놀랍고 충격적인 것은 전자문명의 발달일 겁니다. 컴퓨터가 일상으로 들어오고 인터넷이 놀랄만큼 확대되면서, 그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건 변화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게 더 놀랍습니다. 그 변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몇 년 안에 정말 큰 변화가 또 일어날 겁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지식의 소통매체로 삼던 종이책이 몇 십 년 뒤에는 아주 사라질 거라는 얘깁니다. 종이책이 퇴장하고 전자책의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이북(e-book)이라고 하지요. 제가 지난 6월에 미국을 다녀왔는데, 그 전과 다른 풍경을 봤어요. 비행기 안에서 책을 보는데, 세 명 중 두 명은 전자책 리더기로 책을 읽더군요. 사람들이 종이책 대신에 킨들이나 아이패드를 갖고 이북을 읽고 있었습니다. 전자책 리더기로 아마존에서 킨들을 내놓고 애플에서는 아이패드를 내놓았습니다. 전자책 리더기의 보급이 느니까 이북 판매도 비례해서 엄청나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이북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거죠. 이미 한국도 전자책 시대에 진입했어요. 교보문고나 예스24나 알라딘 같은 데서 전자책이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이북 판매 인세가 제 통장에 들어옵니다. 최근에 나온 제 책들은 거의 다 종이책과 이북이 함께 팔리고 있어요. 교보문고 사이트에만 들어가도 알 수 있어요. 전자책 리더기가 100만대 이상 보급이 되면 이북 시장은 급격하게 커질 거라는 얘기죠. 출판사나 서점이 다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콘텐츠를 킨들 사이트에 올리면 이게 전자책이 되고, 그게 킨들 스토어에서 유명 저자 책과 똑같이 진열이 됩니다. 스물네 시간 아무 때나 제가 킨들 스토어에 들어가 클릭하면 그 이북이 제 전자책 리더기로 들어옵니다. 누구나 쉽게 이북의 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시대가 2~3년 안에 온다는 얘기죠. 전자책의 충격이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입니다. 올해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종이책 교과서 대신에 아이패드를 다 나눠줬다고 합니다. 아이패드에 고등학교 과정의 교과서를 다 집어넣은 것이지요. 그 결과 학생들의 학습욕구가 더 높아졌고 그전보다 더 공부를 열심히 하더라는 겁니다. 이 아이패드로 과학이나 수학 과목 같은 걸 공부하는데 활자로만 보는 게 아니라 교사의 강의와 부가적 자료들이 동영상으로 뜨면서 세세하게 설명을 해 줍니다. 우리나라 학생들도 종이책 교과서 대신에 아이패드만을 갖고 등교하는 날이 올 겁니다.

21세기는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대입니다. 지식이라고 다 같지 않아요. 여러분들 얼굴이 다 다르듯이, 지식도 그 밀도와 퀼리티가 다 다르거든요. 지식에도 옥석이 있습니다. 대학교에서 리포트 과제를 내면 많은 학생들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떠도는 지식을 다운받아 그걸 대충 짜깁기해서 제출합니다. 이게 한눈에 봐도 엉터리가 많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지식은 검증되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파편화된 정보들이지요. 여기에는 뜻밖에 많은 오류들이 숨어 있습니다. 반면에 책을 통해서 얻는 지식들은 여러 단계의 검증을 거친 것들이지요. 책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식들이 검증되고 정제됩니다. 저자가 제출한 원고는 출판기획자, 출판편집자, 교정교열자들의 단계를 거치면서 오류들이 수정되고 걸러지게 됩니다. 인터넷에 올린 건 쉽게 지울 수 있지만, 책은 반영구적인 거예요. 사실 책으로 남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예요. 왜 문인들의 친일문제가 계속 불거지는지 아세요? 문인보다 더 악질적인 친일인사들도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친일의 물증이 없어요. 문인들의 그것은 잡지나 책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꼼짝없이 당하는 거지요. 서정주, 모윤숙, 이광수, 채만식 이런 유명 문인들의 친일과 관련된 시나 소설이나 논설이 지금도 도서관에 가면 당시 나온 신문, 잡지, 책에 다 있어요. 이런 사실들을 다 알고 그런 압박감 속에서 쓰다보니까 책을 쓰는 사람들은 함부로 쓰지 못하는 거지요. 그게 몇 대에 걸쳐서도 남으니까. 반면에 인터넷 지식들은 익명성으로 소통되지요. 언제라도 지워버릴 수가 있어요.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인터넷의 지식과 책의 지식은 그 밀도와 정확성에서 커다란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앎이라는 것은 반가통(半可通)의 앎과 전가통(全可通)의 앎으로 나눌 수가 있지요. 반가통의 앎이라는 것은 어렴풋하게 아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반가통의 앎에 만족하고 삽니다. 지적인 분야에서 일 하는 사람이라면 반가통의 앎으로는 부족하지요. 전문가라면 그에 걸맞는 전가통의 앎이라야만 합니다. 그 계통의 앎의 거죽이 아니라 뿌리까지 파고들어가야 됩니다. 전가통의 앎은 전문 지식인들이 쓴 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뇌에는 어떻게 몇 천 권을 읽고, 그 지식을 다 담아낼 수 있느냐라고 회의적인 생각을 하겠지만 뇌의 저장량은 무한대입니다. 놀랍죠? 뇌는 나이가 든다고 기능이 떨어지거나 노화하지 않아요. 노화는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쇠붙이는 쓰지 않으면 녹이 슬죠?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쓰지 않으면 뇌의 신경들은 죽지요. 뇌세포들도 쓰지 않으면 죽게 되어 있어요. 괴테가 󰡔파우스트󰡕 3부를 마무리한 게 몇 살 때인지 아세요? 죽기 1년 전, 팔십을 훌쩍 넘긴 나이입니다. 우리 뇌는 나이가 들어도 쓰면 쓸수록 좋아집니다. 뇌를 많이 쓰면 노인들도 청년들 못지않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수백억 명이 살았는데, 그 중에 뇌를 가장 많이 쓴 사람, 가장 뇌 발달이 잘된 사람이 아인슈타인이라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의 뇌는 과학자들에게도 연구 대상이 되겠지요. 아인슈타인이 죽은 뒤에 그 뇌가 조각조각 나눠져서 여러 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자기 뇌를, 그 기능의 19%를 쓰고 죽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뇌의 기능을 9%에서 10% 밖에 안 쓴다고 합니다. 90%는 쓰지도 못한 채 그냥 죽는 거지요. 뇌를 12%나 13%만 써도 우리는 천재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야든지 뇌의 기능을 잘 써서 연구 하고 훈련 하면,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얘기합니다. 어느 분야든지 전문가가 되려면 하루에 세 시간씩 1만 시간을 바치라고 합니다. 하루에 세 시간씩 1만 시간을 채우려면 10년이 필요합니다. 1만 시간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자기 뇌를 최적화하는데 필요한 최소 조건의 시간이지요. 지난번 동계 올림픽 때 김연아 선수가 피겨 스케이트 타는 거 봤지요? 놀랍지 않던가요? 저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완벽하고 그만큼 황홀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김연아 선수는 얼마나 많이 연습을 했을까요? 아마 1만 시간 이상일 겁니다. 비틀즈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지요. 이 젊은 청년들은 독일의 클럽에서 몇 년 동안 매일 밤마다 여덟 시간씩 연주를 했습니다. 그런 피나는 수련 덕분에 연주의 달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지요. 그런 뒤에 비로소 비틀즈라는 세계적인 그룹이 탄생한 거지요. 어떤 분야든지 전문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렇게 절대 시간의 수련과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 그게 자기 뇌를 전문 분야에 최적화 시키는 데 요구되는 양적 조건인 겁니다. 

자, 21세기의 가치로 저는 창의성을 얘기했습니다. 창의성이라는 것은 입력에 대한 특이한 출력입니다. A를 입력했는데 A가 나오는 것은 창의성이 아닙니다. A를 입력했는데 B와 C와 D가 나올 때 창의성이라고 합니다. 창의성이라는 걸 사람들은 질의 개념으로 받아들입니다만 저는 양의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양적으로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으면 질적 전환은 없습니다. 물이 끓는 온도가 몇 도죠? 100도씨죠. 90도에서 물은 끓지 않습니다. 끓는 시늉만 하지요. 100도가 되어야만 물이 끓는데, 그게 물의 질적 전환이 시작되는 임계점입니다. 임계점에서 물은 기체로 변합니다. 100도라는 것은 액체가 기체로 바뀌는 양적 조건인 것이지요. 지식도 마찬가지예요. 양적 조건에 도달해야만 지식도 질적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창의성을 양의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21세기는 지식과 창의성의 시대라고 했지요. 그게 권력이 되고 돈이 되는 시대라는 얘기지요. 명심하세요. 순도 높은 창의성은 반드시 양적인 조건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죠. 왜 공부를 못하느냐?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지요. 공부의 양적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죠. 공부를 못하는 건 임계점까지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어떤 분야든지, 그 분야에 관한 지식의 양적 조건이 충족된 뒤에는 도약이 따릅니다. 그만그만한 수준을 뛰어넘는 다는 것, 그걸 뛰어넘어 질적인 도약, 질적인 전환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거지요.

우리 문학이 침체되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그럴까요? 지난 1970년대 이후로 문학을 하겠다는 사람들의 성분들이 좀 달라졌다는 겁니다. 1960년대까지 문학지망자들은 당대의 0.01%에 속하는 천재들입니다. 근대문학 초창기의 이광수와 최남선과 홍명희는 조선의 3대 천재라고 일컫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물리학이나 의학이나 화학을 전공하지 않고, 문학을 통해서 나라를 살리겠다, 계몽·계도의 수단으로 문학을 선택했습니다. 이런 전통이 1960년대 말, 아니 1970년대 초까지 이어졌습니다.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보통 사람들이 문학을 하겠다고 나섭니다. 이들을 계량화하면 당대의 3% 이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죠. 그들도 수재의 범주에 듭니다. 당대 사회의 3% 이내에 드니까. 그러나 0.01%와 3%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보다 머리가 좋은 계층이 어디로 가냐면, 이제는 영화 산업이나 컴퓨터 게임이나 이런 쪽으로 많이 가더군요. 실제로 지금 한국 영화는 엄청나게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한류를 선도하는 대중문화의 도약도 엄청나죠. 옛날 같으면 문학을 할 사람들이 그쪽 분야로 나간 덕분입니다. 당대의 천재들이 모여드니까 당연히 영화나 대중문화 수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지요. 1980년대 이후로는 그 다음의 수재들이 문학을 선택하더군요. 따라서 지금의 문학은 천재성의 산물이라기보다 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서 기능이나 전문지식으로 배우고 익혀서 나온 사람들의 것이라는 거죠. 문예창작학과에서 여러 테크닉을 배운 사람들이 문학을 선도하는 게 문학의 한계성으로 고착한다고 봅니다. 왜 오늘의 천재들이 문학을 기피하는 걸까요? 문학의 파이가 과거에 견줘서 현저하게 작아졌기 때문입니다. 작은 쪽보다는 파이가 큰 쪽으로 사람들이 몰려가는 건 당연한 현상이지요.

한국 현대시는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봅니다. 고은, 김지하, 황동규, 정현종, 이성복, 김혜순, 황지우, 최승호……등등 좋은 현역시인들이 많습니다. 한국 소설은 시 쪽과 견주어볼 때 아직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봅니다. 시에는 번역이라는 장애가 있습니다만 우리 시의 좋은 번역자들이 나온다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는 건 시간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한국의 첫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당연히 시인일 거라고 예견합니다. 소설가들이 섭섭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소설가 수상자는 시인 다음일 겁니다. 우리 소설들을 읽을 때마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과 견주어 늘 어떤 한계, 아쉬움, 철학의 빈곤을 느낍니다. 우리 문학에 보르헤스나 마르께스와 같은 소설가들과 견줄 만한 대작가들이 있습니까? 아직은 없다고 봅니다. 그런 작가가 나오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이상이나 김유정, 황순원이나 김동리, 최인훈과 이청준과 서정인, 그리고 박경리와 박완서를 넘어서는 대작가들이 더 많이 나와야겠지요. 우리 소설의 외연이 지금보다는 더 넓어지고 작가들의 도약이 필요합니다. 이인성, 하일지, 윤대녕, 배수아, 김영하, 김연수, 김애란……등등 역량있는 여러 젊은 작가들은 아직은 가능성의 영역에 있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겁니다. 이건 어떤 객관적 논리를 갖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고, 직관적인 통찰로 얘기하는 겁니다.

어떤 분이 제게 대표작이 뭐냐? 사람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당신의 최고의 작품이 뭐냐? 라고 묻는데, 제 대표작은 아직 씌여지지 않았습니다. 미래의 작품, 앞으로 쓸 작품에 제 대표작이 있을 겁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룬 것은 미미하고 보잘 것 없습니다. 학문은 얕고 재주는 굼뜹니다. 그래도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문학의 길을 꿋꿋이 가려고 합니다. 미래에 나올 제 대표작과 함께 여러분과 다시 만나게 될 그런 시간을 기다리면서, 오늘 강연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경청해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대  담


장석주 선생님의 시 중에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란 시가 기억에 굉장히 많이 남아있는데, 이 시의 그 첫사랑을 잃지 않겠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시는 실제 선생님의 경험-첫사랑의 시련을 바탕으로 나온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보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상처받는 일과 나쁜 소문,

꿈이 깨어지는 것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벼랑 끝에 서서 파도가 가장 높이 솟아오를 때

바다에 온몸을 던지리라


제 첫사랑인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게 첫사랑인지 모호합니다. 이 시는 제 개인적 경험보다는 사실은 사람 보편의 경험에 바탕을 둔 겁니다. 여러 사람들이 정말 첫사랑이 다시 온다면 좀 다르게 살겠다, 옛날에는 좀 잘 못했다, 왜 그렇게 첫사랑을 떠나보냈나 하는 후회와 회한을 많이 갖더라고요. 저한테도 그런 게 있습니다. 그래서 첫사랑이 온다면, 다시 첫사랑 시절로 돌아간다면, 제가 하지 못해 후회로 남은 것들을 적었습니다. 더 자주 안아주고, 더 자주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더 자주 부엌에 들어가서 음식을 만들겠다. 가끔은 사랑하는 이의 머리도 감겨주겠다. 이런 게 남자들이 가진 애틋한 미련이고 낭만적 로망이거든요.


제가 궁금한 것은 선생님은 책을 굉장히 많이 읽으시는데 사실, 일반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기준의 분량은 훨씬 더 넘어서 굉장히 많이 읽으시는 것 같은데요. 어떤 나름대로의 방법이라던가, 그런 것들이 있는 건지. 또, 책을 계속 읽고 쓰기 위해서 특별한 건강관리 같은 것을 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건 제 영업비밀인데요(웃음). 먼저 책읽기에 대해 얘기해 보지요. 아까 이야기했지만, 저는 책을 읽을 때 일방향적 독서가 아니라 쌍방향적 독서, 대화적 독서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속독법을 배운 적이 없어요. 제가 책을 읽는 방법이 속독법 비슷하더군요. 단어나 문장을 읽기 보다는 한 덩어리로 읽습니다. 덩어리라는 것은 하나의 단락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초보자는 문장을 읽고 그보다 더 초보자는 단어를 읽습니다. 그렇게 읽으면 느릴 뿐만 아니라 집중력도 생기지 않습니다. 집중력이 없으니까 읽고도 뭘 읽었는지를 몰라요.

책을 읽을 때 마인드맵을 그리면 도움이 됩니다. 우선 마음에 입체공간을 연상합니다. 육면체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 육면체 공간의 지점들에 중요한 키워드나 개념을 배치합니다. 이것들의 상호 연관관계를 도형으로 그리며 책을 읽어 나가는 것이지요. 아울러 책을 문자로 읽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전환시켜 읽으면 책의 전체 맥락에 대한 이해를 놓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중요 키워드들이 어떻게 연관되고, 어떻게 다른지를 파악하면서 읽는 거지요. 맥락을 찾는 책읽기가 중요합니다. 맥락에서 벗어나는 덜 중요한 디테일은 다 잊어도 되지요. 저자가 그 핵심 키워드들을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쓰는지를 집중해서 읽으면 좋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특별히 하는 건 없습니다. 우선 소식(小食)을 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많이 걷습니다. 술과 담배, 탐욕과 나태를 멀리합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늘 즐거운 마음, 긍정하는 마음,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몸과 마음은 하나지요. 마음이 즐거우면 몸도 즐겁습니다. 늘 즐거운 마음을 갖는 게 건강의 한 비법이라면 비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오늘 강연을 들으면서 많은 희망을 안고 갑니다. 저는 지금 60이 넘었는데 문학의 꿈을 가지고 시작하려고 하다가 지금은 주변의 만류나 여러 사정 등으로 포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과학 분야에서는 몇 년의 시기를 두고 집중적으로 연구를 하는 것이지만 인문학에서는 늙어서 꽃이 피는 거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인가요?


그럼요,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문장이 있는데, 미국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 아시죠? 1924년생입니다. 지금 86세인데, 그가 이런 얘기를 썼어요.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라고. 꿈을 잃으면 아무리 젊어도 노인이고 꿈을 가진 사람은 백발이어도 청년이라는 얘기입니다. 모네가 수련을 그리기 시작한 나이가 76세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78살에 이중 초점을 가진 안경을 발명했어요. 제가 「몽해항로·6」에서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가장 좋았으니까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가장 늦게 오는 것이다.”라고 썼거든요. 그런 마음을 갖고 사세요. 사실 초년 시절에 쓴 시는 유치해요. 나이 들수록 경험과 연륜도 풍부해지고 더 깊고 원숙한 사유를 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 대한 그윽한 응시, 노년의 지혜가 물씬 배어나오는 작품은 역시 나이가 들어야만 가능하겠지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내년에 나오는 중학교 2학년 검인정 국어 교과서에 제 시가 실렸습니다. 그 시를 제가 한번 소개해 드릴까요? 「대추 한 알」이라는 시입니다.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혼자 둥굴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제가 시골에 내려가 살면서 대추나무를 심었는데, 몇 년 지나니까 열매가 달리더라고요. 대추가 붉게 여물어가는 걸 보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저 작은 것도 여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련을 감당하고 이겨내야 되는지! 대추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지켜보니까 이런 시가 저절로 나왔죠.

이 시가 광화문 교보빌딩 글마당에 석 달 걸려 있었어요. 여러 사람들이 이 시를 좋아했습니다. 결국은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순이란 나이는 그렇게 많은 나이가 아닙니다. 옛날에는 예순 살을 환갑이라고 하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었으니까요. 지금은 나이에 0.7을 곱해야 진짜 나이가 나옵니다. 그 셈법대로라면 선생님은 지금 마흔두 살입니다. 저는 겨우 서른다섯이고요. 여러분도 지금 나이에 0.7을 곱하면 진짜 나이가 나와요. 20세기 초 인류수명이 평균 수명이 39살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두 배가 넘습니다. 사람의 수명이 늘어난 거에 따르자면 60은 늦은 게 아닙니다. 용기를 가지십시오.

 

 

- 2010.10.23 토지문화관 강연록

-http://cafe.daum.net/woripoem 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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