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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면의 자아를 읊조린 감성시 - 김찬순의 시집 <쭈그러진 씨앗2>를 읽고 / 도창회

문근영 2014. 3. 8. 11:00

<시집評 >

내면의 자아를 읊조린 감성시

김찬순의 시집 <쭈그러진 씨앗2>를 읽고

도 창 회(문학비평가 · 문학박사)


( I )


  요새 들리는 말 ‘시를 쓰려면 되는 시를 써라’고 한다. 이 말 안에는 시가 안 되는 시를 쓰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시 장르의 특색(본질)이라면 뭐라 해도 함축성(connotation)이다. 함축을 하지 않고 길게 늘여뜨린 산문같은 시행을 나열하는 것을 보면 시같지 않은 시를 쓰는 사람이란 느낌을 받게 된다. 우선 김찬순시인은 함축을 잘 하는 시인으로 칭찬하고 싶다. 함축성은 시인이 하고 싶은 긴 내용을 짧은 싯귀로 줄여서 그 속에 암시성이 강한 시어 선택을 철저히 하여 내포된 뜻을 깊이 해야 한다. 고로 connotation(함축)을 내포성內包性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짧은 싯귀 속에 깊이 내포된 뜻이 없는데 어찌 그 시를 시라고 하겠는가?  ‘시가 되면 되는 시를 써라’는 말은 내포성(곧 함축성)을 고려하지 않고 쓴 시가 요즘 흔하게 보이길래 하는 말일 것이다. 김찬순 시인의 시를 대한 나의 첫 느낌은 시행이 모두 간결하게 다듬어지고 뭔가 내면의 자아를 읊조리려고 애쓴 노력을 발견하고 그가 시의 내포성을 염두에 두고 시를 창작하는 시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암시성이 강한 언어로 시가 무장을 해야 독자가 음미해 볼 게 있다. 음미해 볼 수 없도록 쓴 시는 일단 낙제다. 함축 ─ 내포 ─ 음미, 이 셋은 서로 관련된 상관 어구로 시인이 알아야 할 선지식임은 말해서 무엇하랴.

그러면 예서 김찬순의 시 몇 편을 감상해 보자.


(Ⅱ)


  김찬순은 이 시집 제목을 <쭈그러진 씨앗2>로 정하고, 그 머릿글 속에 이렇게 적었다.



<마음을 열고> 중반 부분



결이 곱지 못한 졸 시지만,

한 권의 시집을 펴낼 수 있어 가슴이 벅차 올라,

지금까지 걸어온 길 뒤 돌아 보며 감사한다.


작은 씨앗이 싹이 터, 많은 열매를 맺듯이

쭈그러진 씨앗이라도, 그 어느 씨앗보다,

거름더미 속에서 풍성한 양분을 공급받아,

생명 얻었음을, 보답하기 위해, 향기 날리는 애시린 꽃을 피워 내듯,

나 또한 삶이 쭈그러진 씨앗에 불과했다.

그러했기에 더욱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시를 쓸 수 있는지도 모른다.


  김찬순이 시 창작에 임하는 시 정신을 여실하게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쭈그러진 씨앗이라도 영양분을 공급받아 생명 얻었음을 보답하기 위해 향기 날리는 애시린 꽃을 피워내듯 그렇게 시를 창작하겠다는 다짐의 변이다. 시인 자신을 쭈그러진 씨앗에 비유하며, 그러했기에 더욱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시를 쓸 수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퍽 솔직한 고백이다. 시를 씀에 자기 겸손을 먼저 해야 한다. 시 쓰기가 그리 쉬울까. 어쩌면 죽을 때까지 명시를 쓰고자 고민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으리라 믿는다.



빗자루



밀어 주는 힘

끌어 오는 힘

흩어졌어도 모으고

끌어 온다


어제 지친 고단함

깊은 밤 빗자루로

쓸어 버리고


평온의 아침을 맞이한다

또 다시 모아질 하루의

불량 축복을 끌어 모으려


빗자루 수 적어

적게 모은 이웃에게

나누어 주려고

아침부터 행복의

빗자루질 시작한다.



  빗자루란 작은 소재 안에 무한한 뜻이 함축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빗자루의 용도나 속성으로 보아 무진 무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사고思考를 줄이고 줄여서 간결하게 자기의 내면의 자아를 내포시켜 함축해 놓은 맛깔 나는 시다. 사실 인생 삶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빗자루질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밀고, 당기고, 흩어져도 다시 끌어오는 빗자루질에는 많은 함축의 미학이 들어 있다. 작게 모은 이웃에게 나누어 주려 아침부터 행복의 빗자루질 시작하는 긍정적인 인간미까지 곁들어 있어 감동을 준다. 짧은 시행 속에서 찾아지는 암시성이 곧 시 장르의 특성임을 잘 보여준 시다.




혼자 재는 잣대



가늠할 수 있을까

작은 폭 한 발이 천리 길도 멀다 않네


힘겹게 지탱하며 묵묵 부답으로

소리 없이 숨죽여 따라가며


그대는 날 위해 난 그대를 위해

우리는 하나의 지체


크고 작은 잣대로 재보지만

혼자 재는 잣대는 늘 같기만 하지


그래도 재보고 또 재보지만

한결같은 눈금은 혼자라 외치네.



  특히 부부 간 잣대질은 아무 의미가 없다. 부부 어느 한 쪽 혼자 재는 잣대는 늘 같은 눈금일 뿐, 한결같은 눈금이 혼자라 외칠 것이다. 이 시를 읽는 순간 퍽 묘한 느낌을 받고 동의하고 말았다. 특히 부부간에 혼자 재는 잣대가 뭘 의미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화자의 내포된 의미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싶었다. 함축된 사고가 주는 단시가 예사롭지 않게 이해되는 그런 쌈박한 시상詩想이 좋다.



눈 뜨는 소리



따뜻한

땅속 겨울잠 깨는

요란한 소리


봄 내음 맞으며

묻혀진 씨앗들

눈 뜨는 소리


봄비 한 방울 머금고

새 눈 떠보고

비 한 줄기 스며드니

실눈 떠본다


땅속 씨앗 새봄맞이

실눈 뜨는 소리


실바람 봄바람

결에 날리는 소식

전해 들었나.



  새봄에 식물이 실눈 뜨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는 시인을 생각하니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비단 식물 뿐이랴 한평생 실눈을 못 뜨는 사람도 있다. <눈 뜨는 소리>를 듣고 살아야 사람이다. 봄바람이 불면 땅 속 씨앗도 봄이 온 소식을 전해 듣는지 기지개를 켜고 땅 위로 솟는다. 이 단시도 내포성이 있어 즐겁게 감상된다.



내 마음 내려놓고



갈 곳도 모르고

떠도는 한 조각구름처럼

중년의 갱년기

살며시 찾아오면

내 마음 내려놓고 기도했다


새처럼 날고 싶은

자유로운 무색의 마음

시들어가는 꽃 한 송이 연출해 보며

찾아온 중년의 위기

내 마음 쓸쓸해 기도했다


인생의 지나가는 정거장

나만 힘들어 하나

무게에 못 이겨 살며시 기대본다

그래도 버거워

내 마음 비우려 기도했다



  통상 청춘이 가고 중년에 접어들면 가슴이 빈다는 말이 맞는다. 중년 갱년기에 위기까지는 아니드래도 삶의 무게가 힘겹게 여겨지고 자기회의에 빠진다. 이럴 때엔 마음 비우고「내 마음 내려 놓고」사는 것이 방편일 수 있으렸다. 지난 과거사가 생각나 시들어 가는 꽃 한 송이 연출해 보고 싶지만 차라리 기도로 쓸쓸한 마음을 달랜다. 이게 모두 인생역정 속에 지나가는 정거장으로 함께 겪는 외로움이리라. 1·2·3연에 담긴 행간의行間意의 이미지 연결이 무난한 시로 공감을 부른다.



새싹 비빔밥



오색 가족 불러 모아

옹기종기 모여

씨앗 크기만 한 잎 벌리고


끌어 안고 양보하며

하늘보고 자라서

실허리 휘어지듯 늘어져


밥그릇 장식하며

오색 무지개 담아 올려


끼득끼득 비비는

숟가락 부딪히니 장단 흥겨워

군침 소리 들으려


새싹들이 어우러질

입 잔칫집 입장하기 위해

숟가락 올라앉아

서로의 화합 담아 내밀며

마음을 풀어 헤친다.



길목에서



설핏한 길목에서

발자욱 잊어도

또다시 침침한 길목에

서성인다


뒷꼬리 끝자락

모퉁이 돌아서니

애시린 눈빛

흠뻑 젖어들며


오늘도 걷고 걷는 하룻길

땅거미 묻힐 때

가로등 그림자 따라 사라질

발자욱 소리 내며


어둔 골목

한가락 콧노래 들려주며

기다리던 대문앞

문고리와 악수한다.



  <새싹 비빔밥>은 비빔밥의 형상을 심상으로 풀어보면 퍽 재미가 나는 시이고, <길목에서>는 길목 풍경이 흡사 인생 여정의 한 길목의 이미지로 비쳐져 매력을 끈다. 시는 마음의 거울 비친 것 즉 실상이 아닌 심상(image)를 고려하여 써야 된다. 주의할 것은 심상心想을 형상화하되 쓰기는 실상實像으로 써야 함은 물론이다. 이 시집 한 권에 상재된 시들 중에 이 시들 외에도 감동을 주는 작품은 <소리 없는 사랑>, <거울 속 풍경>, <붙잡고 싶지만>, <구멍난 나뭇잎>, <흔들리는 나뭇잎>, <눈 덮인 들녁>, <야생화> 등이 있다.


(Ⅲ)


  이상과 같이 김찬순의 시들을 살펴보았다. 그의 시들은 대체로 생활해 오면서 화자 자신의 내면을 읊조린 서정시들로 시인의 체취와 감성이 듬뿍 묻혀진 쌈박한 작품들이다. 한 권의 시들의 특성을 들라면 함축성(내포성)이 강한 점이고, 자아의 내면을 진솔하게 드러내려고 노력한 점이다. 시어詩語를 아끼고 단축하려는 장르적 본질을 망각하지 않았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그리고 서정시는 이성異性보다는 감성感性에 의존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점으로 볼 때, 김찬순은 시 창작법에도 성공을 하고 있다고 보아진다. 시가 이성에만 호소하면 일단 멋과 맛이 없기 때문이다. 장래성이 풍부한 시인으로서 독자들이 많이 찾는 글을 남기리라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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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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