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음의 색깔 | ||
|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61) | ||
| 주유소의 형식 임승유 나는 네모의 형식 팔다리를 접어 울음을 가두고 길가에 앉아 있다 누군가 지나가다 툭, 친다 해도 괜찮아 그건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점 사람들이 가벼워진 연료통을 끌고 와 줄을 섰다 견고한 내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싱싱한 울음을 채운 사람들이 끌고 온 길을 접으며 달려 나갔다 말하자면 나는 바깥에서부터 흩어지고 있었는데 막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여자의 손가락 사이로 울음이 빠져나오고 있다 멀리 보냈던 울음들이 활활 타오르며 옆구리에 달라붙고 있다 내부를 향해 몰려드는 바깥들 우린 언젠가 같은 종류의 울음을 나눠 가진 적이 있고 출렁이는 울음을 만지작거리며 달릴 수 있는 만큼 달렸다 갈 데까지 가서 울음은 바닥이 나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럴 때 우리는 길가에 웅크려 앉은 자세 # 수십 종의 문학지에서 좋은 시를 만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고의 시간이 필요한데 모처럼 어렵지 않게 금쪽같은 시를 손에 쥐었다. 아닌 척 하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시를 갓 등단한 신인의 시에서 발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과도하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거나 뼈대만 흉하게 불거진 시, 또는 어설픈 포즈만 있는 시들이 많은데 임승유의 시는 보법이 비교적 가볍고 경쾌하다. 경직되지 않은 시선에 우선 비점을 찍고 시를 읽어 내려가면 주유소에 서 있는 주유기의 네모난 형식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주유기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팔다리를 접어 울음을 가두고’ 있는 실체이다. 여기서 관습적 사고의 틀을 깬 시인의 독특한 심안을 만나게 된다. 이어서 사람들은 울음의 저장고에서 ‘싱싱한 울음’을 채워 달려 나간다. 결국 그 행위는 울음의 분산이며 공유이며 동시에 극복의 한 방법이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여자’에게서 발견한 울음은 화자에게 다시 수렴되어 활활 타오른다. 그러나 그 울음은 과거에 화자가 ‘멀리 보냈던 울음들’이다. 그래서 연인처럼 혹은 동지처럼 ‘같은 종류의 울음을 나눠 가진 적’이 있다는 고백이 가능한 것이다. 울음이 바닥나는 지점에 놓여있는 ‘우리’는 결국 울음의 공동체인 셈이요 함께 삶의 강을 건너야 하는 고단한 육신인 것이다. ‘길가에 웅크려 앉은’ 너와 나는 울음의 내밀한 공유자로 함께 울며 또다시 어딘가로 항해를 시작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이 시의 미덕은 삶의 신고를 ‘아닌 척’하며 가볍게 툭툭 건드리며 걸어가는 점이다. 울음과 휘발유라는 이질적 대상을 붉은 색상 이미지로 연결하고, 울음이 오히려 생의 동력이라는 역설적 진실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결국 울음은 아픔이며 동시에 생의 근원적 에너지다. 울음이 바닥나는 순간 연료가 떨어진 주유기처럼 삶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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