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이 가을의 무늬」평설 / 송종원
이 가을의 무늬
허수경
아마도 그 병 안에 우는 사람이 들어 있었는지 우는 얼굴을 안아주던 손이 붉은 저녁을 따른다 지난여름을 촘촘히 짜내렸던 빛은 이제 여름의 무늬를 풀어내리기 시작했다
올해 가을의 무늬가 정해질 때까지 빛은 오래 고민스러웠다 그때면,
내가 너를 생각하는 순간 나는 너를 조금씩 잃어버렸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순간 너를 절망스런 눈빛의 그림자에 사로잡히게 했다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순간 세계는 뒤돌아섰다
만지면 만질수록 부풀어 오르는 검푸른 짐승의 울음 같았던 여름의 무늬들이 풀어져서 저 술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새로운 무늬의 시간이 올 때면,
너는 아주 돌아올 듯 망설이며 우는 자의 등을 방문한다 낡은 외투를 그의 등에 슬쩍 올려준다 그는 네가 다녀간 걸 눈치 챘을까? 그랬을 거야, 그랬을 거야 저렇게 툭툭, 털고 다시 가네
오므려진 손금처럼 어스름한 가냘픈 길, 그 길이 부셔서 마침내 사윌 때까지 보고 있어야겠다 이제 취한 물은 내 손금 안에서 속으로 울음을 오그린 자줏빛으로 흐르겠다 그것이 이 가을의 무늬겠다
―『창작과비평』(2011.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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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마음이 스러지는 자리
여기 시(詩)라는 자리에 누운 채 잠들려는 마음이 있다. 끊임없이 취기를 빌리는 이 마음은 자신을 괴롭히는 상념으로부터 잠시 놓여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픈 마음이 꿈꾸는 것은 마음을 휘젓는 대상의 소멸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토대의 소멸이다. 그것이 더이상의 무엇도 비추어내는 일이 없기를, 또 어떤 부정도 행하지 않기를 염원하는 일이다. 하지만 무심(無心)을 꿈꾸는 마음의 바람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음이 스스로를 지워내려 애쓰는 순간, 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무언가가 자신을 방문하는 사태가 벌어지니 말이다.
마음의 수면 위로 여러 명의 그림자와 함께 여러 곡절이 지나간다. 술에 취한 사람이 있고,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며, 우는 사람이 있고 그의 등에 외투를 올려놓고 가는 사람이 있다. 이 인물들과 마주칠 때 아마도 우리의 습관은 그 인물들을 매개하는 서사를 밝히는 데 관심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시의 말에 이끌려 시 속으로 다시 들어가면 거기에는 이야기 대신 다른 것이 있다. 이야기가 짜고 묶는 형식인데 반해 이 시는 풀어지고 흘러내리는 형식으로 말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어루만지는 손”과 “붉은 저녁”이 무관한 듯 놓여 있으며, 취한 “울음”과 “저렇게 툭툭, 털고” 가는 걸음 사이에도 묘한 거리가 있다. 마지막으로 마치 조명처럼 저 조각난 이미지들을 멀리서 비추는 저 “빛”이 있다. 그것들이 잠들려는 마음을 자꾸 뒤척이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마음은 잠들지 않은 채 이미 꿈을 꾸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너무나 매혹적으로 느껴졌던 꿈을 꾼 이후, 잠에서 깬 우리는 그것의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에 그 꿈은 늘 어떤 단절을 품거나 또는 핵심과도 같은 한 지점을 비워둔 채로 우리를 자극한다. 이 단절과 공백이 시인으로 하여금 무심을 갈망하게 하였던 사랑의 열정과 슬픔, 고뇌와 그리움 등을 희석하여 꿈결 같은 이미지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활과 리라』에서 옥타비오 파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초조도, 사랑의 열정도, 기쁨도, 열광도 그 자체로는 시적 상태가 아니다.(…) 그것들은 자체의 극단적인 성격으로 인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세계를 쓰러뜨린다.”
(옥타비오 파스 『활과 리라』, 김홍근 김은중 옮김, 솔 1998, 220~21면)
“이 가을의 무늬”란 이 시가 도달하고 있는 이 허허롭고 쓸쓸한 이미지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이미지란 이렇게 시인에 의해 짜이지 않고 시인을 통해 풀어진다. 허수경은 상념에 휩싸인 마음에 괴로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것을 유심히 관찰함으로써 마음의 바닥에는 고립된 채로 쓰러진 세계의 잔해가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마음이 한 번도 비추어내지 못한 존재가 거기 있다. 나의 시선을 중심에 둔 얼굴과 손이 아니라 나의 시선에서 비켜서 있는 얼굴과 손이 거기 있다. 가령, 우는 사람의 주위에는 나와는 다른 시선으로 그를 감싸는 빛과 소리가 있었음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자연스럽게 “우는 얼굴을 안아주던 손이 따르는 붉은 저녁”의 이미지로, 또는 “만지면 만질수록 부풀어 오르는 검푸른 짐승의 울음”의 이미지로 시인을 방문하였을 것이다.
결국 무심을 꿈꾸던 마음은 말을 만나고, 말의 저편으로부터 넘어오는 이미지를 접하면서 무심해질 수 없는 세계에 들어선다. 자신이 스러질 때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들어서는 “새로운 무늬의 시간”을 보며 시인은 그래서 자신의 사랑과 슬픔의 불꽃이 사위어가는 고통을 보고 있어야겠다고 표명하는지도 모른다. 이제야 이 시에 젖어든 취기란 어쩌면 저 고통을 감내하기 위한 필연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허수경은 그렇게 취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시를 쓴다.
**송종원
200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김행숙론-재현체계의 폭력을 넘어 ‘우리’의 현시로」로 등단, 「우울을 애도하다」 「우리는 다시 깨어날 것이다. 그리고…」 등의 평론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국문과 박사과정 재학중.
—《창문》'창비문학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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