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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창작체험에서 얻은 생의 통찰* - 김완하

문근영 2014. 2. 1. 14:38

창작체험에서 얻은 생의 통찰*


                                      김완하 (시인⦁한남대 문창과 교수)



-1. 시인의 길은 화려할 수가 없다. 그 시인이 화려하게 보이는 것은 독자들이 그를 그렇게 인식해 주는 것이다. 시인의 길은 어떤 고통을 수반해야 한다. 백지의 공포라 말한 말라르메의 창작의 고통과 생의 고통이 항상 따른다. 그 고통을 즐겨야 한다. 어느 순간이라도 그 고통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지려는 바로 그 순간, 그는 이미 시인이 아니다. 시인은 항상 그늘 속에서 빛을 보는 자이다. 빛 쪽에서 그늘을 보아서는 좋은 시를 쓸 수가 없다.

생의 어떤 고통의 시기에 시가 더 빛나는데, 그것은 시정신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인 그리움, 외로움, 눈물, 절망, 좌설, 허무 등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시인은 진화해서는 안 된다. 시인의 언어는 고차원적인 현대를 반영해야 하지만, 그의 정신은 더 깊어져야 한다. 정신이 깊어지는 것이 진화라 할 수 있다.

시인의 고통은 보편적인 것 일상인으로서의 (개인사적 고통, 가족사적 고통, 사회사적 고통) 고통 외에도 창작의 고통 (내적, 외적)을 뜨겁게 끌어안아야 한다. 이점에서 시인은 용기가 필요하다. 삶에 조금 데었다고 오도 방정을 떨면 안 된다. 시인은 그러한 것들을 깊이 끌어안고 되새기는 사람이다. 반성하는 사람이다.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다.


-2. 문학은 치기, 열정,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정련되어야 한다.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 시 쓰기에만은 열심인 경우를 볼 수 있다.


-3. 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곧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 이점이 시인의 삶에선 더욱더 절실하다. 생의 일상에만 매달려도 성공하기 어려운데 시를 쓴다는 맥락으로 생의 전반을 꿰뚫어가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4. 문학은 우리 생과 생의 이면을 어떻게 압축해서 보일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5. 문학이 어려운 것은 또한 문학은 생의 일정 단계에 이르러야 빛을 본다는 것이. (최소한 40대1)) 물론 더 이른 나이에 빛을 보기도 하지만 그것이 끝까지 지켜질지도 의문이고, 너무 화려한 쪽으로 가다 보면 대중화 경향으로 흘러가기가 쉽다.


-6. 문학을 좀 더 멀리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 40대와 50대(?) 사이의 문학적 전기!

 50대에 이르러 시가 빛나는 경위가 더 크다. 문정희, 천양희, 임영도, 문인수. 고은 선생의 경우 50대에 들어 안성 땅에 정착하여 써낸 것이 『만인보』이고 『백두산』이고 그 외의 많은 글들이다.


-7. 생은 쌓여갈수록 충격의 대상이 적어지고, 그 충격의 도가 약해진다. 그러므로 더욱더 자기 채찍이 필요하다. 이점에서 재능도 중요하지만, 더 열정이 중요한 것이다. 열정이란 문학을 향한 진정성을 지닌 생의 에너지이다.


-8. 문학을 포괄하는 생의 완성의 개념은 어느 시기가 아니고, 생의 전체를 통한 개념이어야 한다. 곧 죽음이 생의 완성인 것이다.


-9. 문학은 역시 세계관의 표현이다.(R. 골드만).

세계관의 확장과 심화를 통해서 나아가야 한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란 바로 이 부분에서 방향을 찾아야 한다.


-10. 문학은 결국 크게 말해서는 작가가 세계를 보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세계를 어떻게 보고 갔는가 하는 것이 그가 남긴 작품이다. 거기에 그만의 독특한 시각과 상상력이 스펙트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인은 시적으로 보고, 소설가는 소설적으로 보고 가고, 극작가는 극적으로, 비평가는 비평적으로 본다.


-11. 이제는 한국문학의 정련성, 완숙미, 원숙미가 필요하다. 20세기적 감수성의 영역에서 벗어나 21세기의 지평에서 세계적인 보편성을 향해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12. 문학은 기록, 문자, 쓰기의 중요성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이순신의 일기쓰기와 원균의 쓰지 않았던 것의 차이가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정보를 제공하고 못하고의 결과를 가져왔다.)


-13. 기록은 역사를 바꾼다. (역사시대, 선사시대)

개인의 체험을 기록하는 것도 그 만큼 그의 생을 풍요롭게 하고, 그의 생을 개진해가게 할 수 있다. 유년의 체험에 대한 구체화로서의 글쓰기가 개인의 역사를 확장하고 의미부여할 수 있게 된다. 고은 선생의 『황토의 아들』(한길사).


-14. 자신을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신의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가장 잘하는 지를 깊이 생각하고 관찰하고 그것을 하라! 문학이나 생이나 똑 같다.


-15. 필자의 경우에 일상의 시간에서 일탈하여 홀로 있으면 시가 고인다. 그것을 언어라는 표주박으로 퍼내는 것이다. 일단 바닥을 드러내고 그 위에 다시 고이는 것을 퍼내야 한다. 문학에 대한 심한 갈증을 느껴야 한다. 창작의 욕구가 강해야 한다. 그 욕구란 바로 생의 의지이다. 따라서 시인들은 시에 온 몸을 던지는 것으로써 생을 불사르는 것이다. 시인은 도덕교과서가 아니라, 생의 이면을 얼마나 열고 확장시킬 수 있는 자인가 하는 점에서 이단아일 수도 있다.

고은 선생은 “시가 나왔다.”고 하는데, 이는 시적 탄생의 의미와 시란 머리가 아닌 몸속에서 씌어진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16. 언어의 단계를 나눈다. 생존어, 생활어, 문화어의 세 단계.


-17. 문학은 세 가지의 벽과 싸우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싸움을 통해서 화해한다. 싸움이 있어야만 화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과의 싸움 (세계 속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와의 싸움 (세계의 모순과의), 언어와의 싸움 (언어 또한 세계에 물들어 있는 것이다)

문학은 어떤 면에서도 언어를 떠날 수 없다. 문학의 우주가 바로 언어다. 그것은 유미주의자가 아니라도 그렇다. 문학의 최선의 토대이자 무대는 언어다. 언어 속에는 이미 수천 년간 인류가 쌓아온 삶의 집적이 있고 삶의 숨결이 무르녹아 있다.


-18. 문학은 삶을 정화시킨다. 역설의 진리가 있다. 종교보다도 위대하다.(?) 최근에 이르러 문학의 치유로서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관심 차원이 아닐지라도.... 가령, 윤동주의 시 「쉽게 씌어진 詩」은 적국의 감옥 속에서, 정지용의 「琉璃窓」은 자식의 죽음을 극도로 압축하여 드러냈다. 박정만의 시 300편은 독재의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는 생의 후반기 불과 몇 년 사이에 씌어졌다. 김남주의 시 70% 이상은 9년여의 감옥 생활에서 씌어지고, 고은 시인의 『만인보』는 1980년대 군부의 고문으로 남한산성 지하에 감금되어 있을 떄 구상되었다.


못을 뽑습니다 /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 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 /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 오늘도 성당에서 /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 / 못 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 아내는 못 본 체 하였습니다 /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 아직도 뽑아 내지 않는 못 하나가 / 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 든 못대가리 하나가 / 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김종철의 「고백성사-못에 관한 명상 ⦁ 1」


이 시에서 시인은 종교적 행위로서의 최고 형식이라 할 수 있는 고백성사로도 풀 수 없는 것을 시를 통해서 풀고 있음을 고백한다. 종교의 한계(?)와 문학의 포용성을 알 수 있다. 종교는 종교 간에 벽이 있고 단절이 있다. 그러나 문학은 그렇지 않다.


-19. 분주한 일상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켜 가끔씩 일상화(상투화)되는 자신의 생을 정지시켜 보아야 한다.


-20. 매일 쓰자. 어려울 경우는 “한 단어라도 쓴다.”(강은교)


-21. 시인은 읽고 사고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읽고 사고하는 자이기 보다는 쓰는 자이어야 한다. 사고하는 자의 영역은 철학(?)에 넘겨주자. 사고의 뼈대에 생의 호흡과 피를 입히는 언어의 육화 과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22. 생의 체험 가운데 가장 울림이 강한 것, 인상적인 것을 토대로 시를 쓰면 성공한다. 자기가 먼저 감동해야 남도 감동하는 것 아닌가?


-23. 이미 쓴 표현은 다시 쓰지 말자


-24. 매번 시에 이전에 사용하지 않았던 언어  하나씩을 반드시 쓰려는 노력을 하자.


-25. 시는 꾸밈이 아니라, 진실이다.


-26. 시의 표현 하나하나에도 시비를 걸자. 새로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친숙함은 경멸을 낳는다.”(탈무드)


-27. 소리 내어 읽는 방법, 낭송의 호흡으로 시를 퇴고하자. 시를 잘 쓰기 위해서 시낭송을 잘 연습하도록 하자.


-28. 인터넷 시대지만 습작과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고 습작 노트를 활용하도록 하자. 인터넷이 문체를 바꾸어 놓았다. 사고의 흐름과 패턴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29. 많이 쓰자. 다양한 장르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시인은 쓰는데 주력하고 누가 정리를 하든지 관심을 비우자.


-30. 시는 메타포(영화 일포스티노)이지만, 쓰리쿠션이 되어야 한다. 문학은 비유로 삼는 대상과의 일대 일의 관계가 아니라, 다른 무엇을 드러내기 위해서 비유를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둘 사이의 비유의 기발함에 빠져서는 안 되고 왜 그렇게 비유했는지,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파헤칠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주어야 한다.


시인과 시(인)정신은 무엇인가?


-1. 시정신이란 무엇인가? 21세기의 도구적 이성이나 도구적 세계관에 맞싸울 수 있는 정신이다.

모든 사물들을 사랑과 생명의 정신으로 바라보며 교감하려는 정신이다.


-2. 게오르그는 <25시>에서 시인을 ‘잠수함’ 속의 ‘토끼’에 비유하였다,


-3.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에서 복효근(1962~)은 다음과 같이 형상화하였다.


건기가 닥쳐오자 /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떼가 /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섰다 // 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 /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 누우떼는 강을 다 건넌다 //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 그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4. 이건청 시인은 <시인>이라는 시에서 앞서서 강을 건너다 악어의 밥이 되는 지도자 가젤영양의 최후를 시인의 역할에 비유하였다.


-5. 문학의 스펙트럼


✼ 문학은 두 개의 크고 작은 선택 사이에 놓여 있다.

   큰 것 - 인생관에 관한 것,

   작은 것 - 조사를 하나를 뺄 것이냐 더 넣을 것이냐 하는 매우 작은 문제로 이것은          작품의 완성에 기여하지만, 그러나 바로 그것이 생의 완성을 지향한다는 사실이다.

✼ 글자 한자의 더함이나 빠트림이 우주의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탈무드)

✼ 코이 잉어(잉어와 어항의 크기)

✼ 개미 이론(개체수의 20%만)

✼ 발상의 전환(아이들의 생각 중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돌아서 가라” 등)

✼ 朝三暮四(조삼모사) -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민주주의의 철학.

✼ 동심이 때로는 사물의 본질을 직관한다. (“삼춘, 여기 할머니 심었어?”)

✼ 시쓰기 - 호랑이도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한다.

✼ 필자의 제4 시집 『허공이 키우는 나무』 필자를 임상실험 하듯이 시를 써보았다.

  1년에 30편을 써서 발표했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 1년에 20편 정도로 낮추니 가볍게 쓸 수가 있었다.


* 김완하, 『外地』, 재미시인협회, 2010. 7. 17.

1) 이 글은 2010년 7월 19일 로스앤젤레스 재미 시인협회 특강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40대를 제시했다. 학생들이라면 20대 말이나 30대로 해야 할 것이다.

출처 : 대구 문학 - 시야 시야
글쓴이 : 문근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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