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윤종남의 시읽기 103> 이달균 시인의 “소매물도는 없다”

문근영 2014. 2. 1. 14:39

 

<윤종남의 시읽기 103> 이달균 시인의 “소매물도는 없다”
편집국, 2011-11-08 오후 02:32:13  
 
<소매물도는 없다>

몇 해 째 소매물도를 가지 못했다
맺혀 사는 일들을 자르기가 힘든 탓이다
하지만 내 생의 며칠을 어쩌지 못하다니

최후를 예감한 전장의 장수처럼
마지막 결전인 양 오늘을 산다면
혜초의 왕오천축국인들 다녀오지 못할 것인가

오늘도 소매물도는 저만치 앉아 있다
차라리 지도 속에 실재하지 않는 섬
사라진 전설의 바다, 그 파도였으면 좋겠다

그리운 이가 죽으면 핏빛 동백이 피고
그 생애를 덮을 만큼의 싸락눈이 내리는
먼 바다 작은 섬 하나를 가슴에 묻고 산다면...

그래, 어디에도 소매물도는 없었다
다만 그리운 이와 동백을 피고 지우는
쓸쓸한 싸락눈의 빛깔만이 내게 남아 있을 뿐


<이달균 시인의 약력>
1987년 『지평』과 시집 『남해행』출간으로 문단활동 시작
1995년 『시조시학』신인상으로 시조창작 병행
계간 『시와 생명』편집인 역임
시집『문자의 파편』,『말뚝이 가라사대』,『장롱의 말』,
『북행열차를 타고』,『남해행』등이 있으며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경남문학상 외 수상

오형엽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본다
“소매물돈”는 실재하는 섬이지만 화자는 그 섬이 “사라진 전설의 바다, 그 파도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전설의 섬이라면, “그리운 이가 죽으면 핏빛 동백이 피고/ 그 생애를 덮을 만큼의 싸락눈이 내리는” 섬 하나를 가슴에 묻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자는 어디에도 소매물도가 없었다고 말하고, “다만 그리운 이와 동백을 피고 지우는/ 쓸쓸한 싸락눈의 빛깔만이 내게 남아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현실적으로 실재하는 공간 보다 정신적인 가치의 공간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시의 표면에 나타난 소멸과 퇴락의 이미지 내부에,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지켜져야 할 정신적 가치에 대한 애착과 긍지가 숨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소멸과 죽음의 운명에 대결하는 이러한 양상은, “삭아가는 시간”과 “허연 시간의 뼈”를 주시하는 시간성에 대한 인식과, 그 시간성에 저항하려는 정신적 의지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첫 번째 ‘기억의 길’은 기억의 주름을 펼침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가는 물줄기를 형성하여, 닳아가는 존재와 사물의 육체를 회복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

<제주인뉴스 윤종남논설위원>
-'세계로 열린 인터넷신문 제주인뉴스'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