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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실성과 친화력의 시인, 허형만 / 김선태

문근영 2014. 1. 26. 15:53

 

 

성실성과 친화력의 시인, 허형만 / 김선태
[53호] 2011년 11월 10일 (목) 김선태 시인

 

허형만 시인은...
1945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73년 《월간문학》에 시 〈예맞이〉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79년 ‘목요시’동인회를 결성하고, 1981년 실천문학 무크지 제2집과 1984년 창작과비평사 17인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임했다. 시집으로 《풀잎이 하나님에게》 《입맞추기》 《供草》 《비 잠시 그친 뒤》 《영혼의 눈》 《첫차》 《눈먼 사랑》 《그늘이라는 말》 등 13권과 중국어 번역시집 《許炯万詩賞析》, 평론집 《시와 역사인식》 《영랑 김윤식연구》 등 5권과 용아 박용철 시집, 김영랑 시집 주해서가 있다. 한국시인협회상, 영랑시문학상, 월간문학동리상, 심연수문학상, 한성기문학상, 편운문학상, 한남문인상, 순천문학상, 광주예술문화대상, 전라남도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국립목포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중국 옌타이대학 명예교수, 목포현대시연구소장, 한국시인협회 이사, 국제PEN본부(영국) 투옥작가위원, 무등일보 편집자문위원장, 목포문학상 운영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1.

허형만 시인과 나는 목포대신문사에서 편집국장과 편집장의 관계로 처음 만났다. 그 후 약 3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길고도 질긴 인연의 끈을 이어왔다. 지금은 국어국문학과에서 동료 교수로서 함께 시를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그는 내게 까마득한 선배 시인이자, 선배 교수이며, 직접 배운 적은 없지만 선생님이나 다름없다.

또한 나는 목포대신문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인연으로 허형만 시인의 가족과도 친하다. 인자하고도 똑똑한 사모님은 물론 한의대를 다니고 있는 큰아들 허일현, MBC 아나운서인 둘째아들 허일후와는 삼촌과 조카 사이로 스스럼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그 무렵 초등학생이었던 그들이 벌써 어른이 되어 훌륭하게 성장하였다는 점이 믿기지 않는다. 하긴 나도 어느새 지천명에 이르렀으니 세월 참 빠르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2.

허형만 시인의 풍모는 한마디로 준수하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초반 소위 ‘반체제 시인’으로 불리던 시절 그의 모습은 후리후리한 키에 깡마른 몸매 그리고 긴 생머리 속에 날카로운 눈빛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순을 넘어선 지금은 조용하고도 자상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세월의 힘이다. 특히 그는 옷걸이가 보기 드물게 좋은 시인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시인은 털털한 편이어서 설사 멋을 부린다 해도 좀처럼 폼이 안 나는데, 그는 아무리 털털한 옷을 걸쳐도 멋이 산다. 따라서 그는 타고난 댄디스트이다.

허형만 시인의 성격은 보기와는 달리 강예하지 않다. 고집이 세서 끝까지 자기주장을 관철하기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타협할 줄 아는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대단한 친화력을 지니고 있다. 너무 인간적인 정이 많아 아무리 사적인 일이나 부탁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달라붙는 끈들로 참 피곤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종종 있다. 그리고 의욕이 차고 넘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타고난 천성에서 기인한 것이니 어찌하랴.

허형만 시인의 최대 장점은 부지런함과 성실성에 있다. 그는 평소 파블로 네루다의 시에 나오는 “사람은 날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라는 경구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시인이다. 이 한마디 속에는 그의 삶과 시적 자세가 다 녹아들어 있다. 여기에서 ‘사람’은 ‘새’로 대체할 수 있는바, 새가 부단한 날갯짓으로 공중의 길을 가듯이 사람도 부지런해야 끝까지 자기의 길을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참으로 그에게 어울리는 좌우명이 아닐 수 없다. 실제 그는 이 좌우명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실천하며 살고 있다.

그의 보폭은 넓고 발걸음은 빠르다. 함께 길을 갈 때면 나는 잰걸음을 해야 겨우 그와 보조를 맞출 수가 있다. 언젠가 그가 긴 오버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바람 속을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한 마리 새가 훨훨 날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 그는 내가 보기에 날아다니는 한 마리 새다. 그러고 보니 가끔 학과 교수들이 들르는 노래방에서 그가 자주 불렀던 노래도 송창식의 ‘새’였던 것 같다.

3.

허형만 시인의 시단 활동상도 ‘새’를 연상하면 적절할 것 같다. 그는 한마디로 한국 시단의 마당발이다. 한 마리의 새가 되어 어디든 원융무애의 날갯짓으로 날아다닌다. 목포나 광주가 서울과는 상당히 먼 거리에 자리 잡고 있지만 거리낄 게 없다. 서울과 목포를 오르내리면서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직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부지런한 자세 덕분일 것이다. 이는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근래 들어 서울로 이주까지 하였으니 앞으로 더욱 눈부신 활약이 기대된다.

허형만 시인은 또한 시낭송의 달인이다. 특히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하는 점잖은 시낭송보다는 객석에서 갑자기 뛰쳐나오는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큰 육성으로 하는 시낭송에 뛰어나다. 지금은 1980년대가 아니라서 그런 퍼포먼스에 가까운 모습을 본 적이 드물지만, 아무튼 관객을 압도하면서 사자후처럼 토해내는 그의 시낭송은 내가 보기에 한국 제일이다.

4.

허형만 시인은 1973년 《월간문학》에 〈예맞이〉로 등단한 이래 올해로 시력 38년째를 맞고 있다. 그동안 첫 시집 《청명》을 비롯한 13권의 시집을 펴냈다. 3년에 한 권꼴이다. 그 이외에 시선집, 연구서 등은 부지기수다. 이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부지런히 시작에 임했는가를 알 수 있다.

허형만 시인의 시는 간결하고 짧다. 난해하고 요설이 많은 시는 절대 사양이다. 이는 그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의 시는 생활에서 나온다. 가족 이야기라거나 교단 주변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같은 주로 사적인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따라서 소박하고 진솔한 삶 자체가 그의 시다.

허형만 시인의 시세계는 크게 초기와 중기 그리고 후기 시로 구획 정리할 수 있다. ① 먼저, 1973년 등단 무렵부터 첫 시집 《청명》이 출간된 1978년까지 발표된 시를 초기 시로 볼 수 있는데, 이때의 시들은 주로 개인적인 순수서정과 전통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② ‘목요시’ 동인으로 활동하던 1979년부터 제9시집인 《풀무치는 무기가 없다》를 펴낸 1995년까지를 중기 시로 볼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아 몸통에 해당하는 이 시기의 시들은 소위 ‘진솔한 삶의 역사와 향토적 서정’으로 수렴될 수 있겠다. ③1996년부터 시집 《비 잠시 그친 뒤》 《영혼의 눈》 그리고 최근에 펴낸 《그늘이라는 말》과 앞으로 창작될 시들을 후기 시로 볼 수 있다.

후기 시에 와서 그의 시세계는 중요한 변모를 보여주는데, 시적 포즈나 목소리가 컸던 이전의 시들과는 달리 내면의 깊이와 고요로 자기성찰 및 생명의식을 천착한 것이 그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후기 시의 변모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렇듯 허형만 시인은 ① 전통과 순수서정→② 진솔한 삶과 향토서정→③ 자기성찰과 생명의식이라는 시세계의 변모를 통해 남도의 대표적인 서정시인 중 한 사람으로 자리 잡았다.

5.

허형만 시인은 1945년생, 이른바 ‘해방둥이’다. 나와 30대 후반에 처음 만났던 그의 나이는 올해로 이순을 훌쩍 넘긴 66세. 바야흐로 고희가 눈앞이다. 내년 2월이면 그동안 정들었던 교단 생활을 마무리하게 된다. 최근 그는 눈에 띄게 말수가 줄고 조용해졌다. 어떤 이는 그런 모습을 보고 어디 아픈지 물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와 오랜 인연을 함께했던 나는 이러한 차분한 행보를 아름답게 바라보고 있다. 그도 사람인지라 교단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어찌 일말의 미련과 착잡한 마음이 없겠는가만, 그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만큼 이제 남은 일은 후배들에게 맡기고 나머지 삶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돌아보건대, 그는 한 마리 ‘새’처럼 부단한 날갯짓으로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시인이다. 이제 고단했던 날개를 위해 무거운 짐을 과감히 덜어내야 할 때가 왔다. 그리하여 그 홀가분함과 고독한 자기응시로 남은 시세계를 완성하여 한국 시단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선배 시인이 되어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캠퍼스 창 너머로 가을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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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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