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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재미의 원리를 활용해보자 - 공광규 시인

문근영 2014. 1. 26. 15:53

 

재미의 원리를 활용해보자


공광규(시인)



1. 들어가며


필자는 최근 현재 문학의 위기를 극복할 작은 해법의 하나로 시에 재미를 적극 도입해 보자는 ‘재미의 시학’1)을 제안하였다. 재미는 한자 ‘자미(滋味)’에서 온 말인데, 아기자기한 즐거운 기분이나 흥취를 말한다. 시에서 재미의 문제는 연원이 오래된 비평적 관심이었다.2) 서사의 긴장과 충돌, 반전을 통한 극적 구성 등이 산문에서 재미를 산출하는 방법3)이라면, 시 창작에서 재미를 산출하는 방법은 해학(유머), 풍자(새타이어), 풍유(알레고리), 역설(패러독스), 풍자적 개작(패러디), 언어유희(펀), 기지(위트), 농담(조크), 축소와 과장, 자기비하와 폭로 등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재미의 시학’을 위한 준비된 근원과 시적 전통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 민중의 감정이 스민 민요, 신화와 설화, 향가, 고려가요, 한시, 시조와 사설시조, 판소리와 민속극에서부터 우스갯소리를 수용한 현대의 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재미는 우리의 전통적 문학자질 가운데 중요한 요소였으며, 이는 현대시에도 중요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4)

그런데 문학의 귀족주의자나 엄숙주자, 숭문주의자들은 재미의 시학, 재미의 문학이 휴식문학, 여가문학이지 본격문학이 아니지 않느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 작품의 생명력은 상당수 재미를 통해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딱히 시는 아니지만 계속하여 시의 제재로 복제되는 처용설화와 함께 전하는 「처용가」에서부터 민요, 「춘향전」등 연희문화나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박지원의 소설류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서구의 『아라비안 나이트』나 『오딧세이』, 『이솝우화』 등도 재미 때문에 살아남은 세계적인 걸작이다.

여기서는 해학과 풍자, 희언의 방법을 활용한 민요나 시가와 현대시를 검토하고 필요할 경우 필자의 창작 경험을 제시해볼 것이다. 해학과 풍자는 내용적 측면이고, 희언은 기법적 측면이 강하다고 보면 된다. 해학이 대상의 은근한 접근을 통해 악의가 없는 재미를 준다면, 풍자는 대상을 공격하고 비판하고 폭로하여 재미를 주며, 희언은 언어의 다양한 사용을 통해 재미를 준다는 입장을 가지고 접근해보도록 한다.   


2. 재미의 원리와 활용


  2-1. 해학의 방법


골계는 우리말로 익살이다. 익살은 남을 웃기기 위하여 일부러 하는 재미있고 우스운 말이나 짓이다. 익살은 해학과 풍자를 포함하는 말이다. 해학은 영어의 유머5)에 해당하며, 웃음으로 독자에게 우행과 악덕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며, 감정을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호탕한 웃음과 함께 고된 현실로부터의 도피와 해방 방어 슬픔 상처 비밀 폭로와 수치감을 주기도 한다.6) 

민요는 해학의 보고이다. 필자의 고향인 청양 지역에서 모내기할 때 부르는 민요를 하나 보자. 시의 대상인 식물의 생태와 인간의 생태를 병렬시키고 있다.


유자 탱자는 의가 좋아

한 꼭지에 둘이 여네

처자 총각은 의가 좋아

한 벼게에 잠이드네7)


창자는 처음에는 한 꼭지에 두 개가 열리는 유자와 탱자의 생태를 말한 다음, 한 벼게에 남녀가 잔다는 인간의 행위를 통사구조의 반복과 병렬구성을 통하여 재미를 준다. 이러한 방법은 민요에 흔히 나타나는 재미의 전략이다. 결혼한 부부도 아니고 신랑 각시도 아닌, 미혼의 처자와 총각이 한 벼게에 든다는 상황은 더 극적 재미를 준다.

한국문학에서 해학의 전통은 대단하다. 이미 『삼국유사』에 설화와 함께 전하는 향가인 「처용가」에서 그 싹을 보여준다.


동경 밝은 달에

밤들어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 가랑이 넷일러라

둘은 내해이고

둘은 뉘해인고

본디 내해지만

빼앗겼으니 어찌할꼬8)


  처용설화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다리가 네 개 가운데 두 개는 내 것인데 나머지 두 개는 누구의 것이냐 라는 표현방식이 재미있다. 시에 설화를 채용하면 시에 개성미가 적고 예술성이 낮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으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설화를 전거로 현대의 서정주나 김춘수는 시를 재미있게 썼다는 증거가 있으며, 다른 많은 시인들이 설화를 시의 제재로 채용하여 시창작을 하고 있다. 이들은 설화로부터 서정적 충동을 받아 시에 설화를 수용했던 것이다. 처용설화를 수용하여 재미있게 재구한 서정주의 시를 보자.


달빛은

꽃가지가 휘이게 밝고

어쩌고 하여

여편네가 샛서방을 안고 누운게 보인다고서

칼질은 하여서 무얼하노?

고소는 하여서 무엇에 쓰노?

두 눈 지그시 감고

핑동그르르 한바퀴 맴돌며

마후래기 춤이나 추어보는 것이리라.

피식! 그렇게 한바탕 웃으며

"잡신아!  잡신아!

만년 묵은 이무기 지독스런 잡신아!

어느 구렁에 가 혼자 자빠졌지 못하고

또 살아서 질척질척 지르르척

우리집까정 빼지 않고 찾아 들어왔느냐?"

위로 옛 말씀이라도 한 마디 얹어 주는 것이리라.

이것이 그래도 그 중 나은 것이리라.

                   - 서정주, 「처용훈-『삼국유사』 제2권, ‘처용랑, 망해사’조」 전문


 이 시는 처용설화를 선행 재료로 하고 있으며, 처용설화 중 향가 「처용가」에 얽힌 사연을 소재로 삼고 있다. 처용 설화의 특정 장면을 시인이 변사가 된 것처럼 설화의 내용을 구술하고 있다.9) 결혼한 여자를 낯추어 부르는 ‘여편네’, “무얼하노?” “무엇에 쓰노?”하는 경상도 방언의 의문문, “잡신아!”하고 부르는 호격 등 활달한 어휘로 처용설화의 장면을 재미있게 구술하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창작자 자신이다. 그러나 원래 설화에서 화자는 처용이다. 대화 방식의 서술도 독특하다. 처용 설화를 채용할 경우 거의가 처용을 화자로 삼았지만 여기서는 창작자가 처용에게 말하는 형식이다.

유교주의로 잘 무장된 우리의 점잖고 근엄한 유학자들은 해학을 좋아해서 해학집을 책으로 묶어 돌려보기도 했다. 조선 초기에 오랫동안 문단을 장악했던 서거정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서거정은 40여년간 『경국대전』, 『동국여지승람』, 『동국통감』 저술 참여와 『동문선』을 편찬하면서 조선의 치교와 빛나는 문장을 전부 정리한 사람임에도 뜻밖에 『골계전』10)을 지었다. 그는 자신이 해학을 좋아한다고 직접 말하였다. 그는 세상의 인정을 받고 명성을 얻거나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글은 힘든 글이어서 마음을 피로하게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세상 근심과 무료함을 없애기 위해서 ‘휴식의 문학’으로 이 전을 지은 것이다. 이러한 골계담이 서거정 만의 것이 아니라 강희맹, 송세주, 성현 등의 저작들에서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며, 이러한 것들은 민중문학의 전통과 연결되고 있다.11)

  김삿갓의 시 역시 재미의 원리를 창작 방법으로 채택한 시인이다. 그는 발상 전환을 통해 해학이 넘치는 시를 많이 창작하였다. 좀 점잔은 시를 소개한다. 


네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하늘에 뜬 구름 자취 그 속에 함께 떠도네

주인이여 그러나 미안해하지 마오

물 속에 비치는 청산을 나는 좋아 한다오

                           - 김삿갓, 「무제」 전문

                                       

  화자가 외딴집에서 죽 한 그릇 얻어먹으면서도 민중의 어려움을 배려하는 모습이 보인다. 빈궁한 살림이라서 멀건 죽으로 손님을 대접하며 미안해하는 주인에게 시인은 죽 그릇에 떠 있는 청산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주인은 시인의 말에 웃으며 더욱더 친밀감을 나타냈을 것이다.12)

세상에 떠도는 재담에서 소재를 채취한 오탁번의 「굴비」13)라는 시를 보자.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마침 굴비장수가 지나갔다

-굴비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 돌아보았다

-그거 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러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 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박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 오탁번, 「굴비」 전문


  시중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를 채용한 시이다. 처음에 웃음이 나오다가 나중에 아내가 성을 팔아서 사온 조기를 먹어야 하는 가난한 가장의 슬픔 때문에 울컥해지는 시이다. 창작자는 옛날 시점의 우스갯소리를 재구성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아마 창작자는 이 우스갯소리를 듣거나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의 내용과 우스갯소리의 내용은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우스갯소리가 시정에서 입에서 입으로 돌아다니며 첨삭되거나, 시인이 우스갯소리를 시로 재구성하면서 내용을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의 내용과 시의 내용이 일치한다면 시 쓰기는 실패할 것이다. 시가 내용의 요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로 상상력을 확대해보면, 이를테면 실직으로 원하던 원치 않던 아내를 노래방 도우미를 보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내가 어디에서 일하는지 알면서도 생계 때문에 아내의 밤일을 묵인하는 남편, 또 가정경제의 파탄과 이혼 등 가정파괴로 인해 생계 때문에 몸일을 해야하는 경우도 없다고 만은 볼 수 없다. 이런 문제도 시의 제재로 채용하여 쓸 수 있을 것이다.  



2-2. 풍자의 방법


해학이 은근하고 악의가 없는 웃음을 주는 것이라면, 풍자는 추악한 대상을 매질하여 보복의 달콤함을 대리경험하게 하기 때문에 대상을 불쾌하게 하며, 현실을 폭로하고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는 방법이다.14) 풍자가 인간의 우행과 위선, 사회의 악덕과 부조리를 폭로하는데 주력하지만, 그것의 궁극적 목적은 부정적 대상과 가치를 개선하고 도덕적 이상을 실현하는 데 있다. 풍자는 현상과 본질의 대립구도를 즐겨 사용하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위트, 아이러니, 야유, 욕설, 패러디, 역설, 부풀리기, 깎아내리기 등의 기교나 어조를 사용하여 풍자의 효과를 달성한다.15) 풍자는 대상에 따라 개인공격의 저급한 풍자,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정치적 풍자, 인류 전체를 조소하는 고급풍자, 자기가 자기를 해부하고 비판하고 욕하는 자기풍자16)가 있으나 정치 풍자, 세태 풍자, 성적 풍자로 유형화 할 수도 있다.  

청양 지역의 민요 가운데 「범벅타령」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여성의 바람끼를 풍자한다.  


어리여 둥둥 범벅이야 둥글둥글 범벅이야

누가 잡술 범벅인가 김도령 잡술 범벅이야

이도령은 멥쌀범벅 김도령은 찹쌀범벅

이도령은 본 낭군이요 김도령은 후낭군이요

이도령이 나간 뒤에 계집년의 거동 봐라

김도령을 기다려서 마중 나와 얼싸 안고

안방으로 들어가서 홍공단이불 뒤집어쓰고

굼실굼실 잘도돈다 이리굼실 저리굼실

이월에는 시래기범벅 삼월에는 쑥범벅

사월에는 느티범벅 오월에는 수리치범벅

유월에는 밀범벅 칠월에는 수수범벅

팔월에는 꿀범벅 어화둥둥 범벅이로다17)


이 노래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여성이 자기 남편인 이도령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남자인 김도령과 바람을 피우는 내용이다. 요즘에도 충분히 있을 만한 이야기다.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는 맛이 없고 질이 떨어지는 멥쌀 범벅을, 애인에게는 찹쌀 범벅을 해준다. 거기다 남편이 나간 사이에 애인에게 열두 달 열두 가지 범벅을 모두 해준다. 그리고 애인을 방에 끌어들여 홍공단 이불 속에서 ‘굼실굼실’ 성행위를 한다. 이불 속에서 하는 남녀의 성행위를 맛있는 범벅을 만드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남녀가 몸을 뒤섞는 것을 범벅을 통해 암시하는 것이다. 이 시는 ‘계집년’이라는 욕설이 해학의 경계를 넘는 풍자라고 할 수 있다. 창자는 자신의 도덕적 표준을 넘어서는 행위를 ‘계집년’이라고 욕함으로써 다른 남자와 놀아나는 시적 주인공을 ‘교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풍자는 대상을 비하, 격하시키기도 한다. 욕망을 억압하는 윤리집단인 종교는 오래전부터 민중들의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왔다. 욕망의 억제와 윤리적 삶의 표상인 승려들이 스스로 일탈 행위를 해왔기 때문이다.


중놈도 사람인체 하여

자고 가니 그립더군

중의 송낙 나 베고

내 족두리 중이 베고

중의 장삼 나 덮고

자다가 깨달으니

둘의 사랑이

송낙으로 하나 족두리로 하나

이튿날 하던 일 생각하니

흥뚱항뚱해지누나

                    

조선 말 창작자를 알 수 없는 시이다. 억불정책으로 승려들의 도성 출입을 막았던 조선 말에는 승려들이 사람취급을 받지 못했다. 이 시에서도 “중놈도 사람인체하여”라는 표현을 통하여 승려를 비하하고 있다. 승려계급에 대한 풍자는 오래된 민중시의 전통이다. 더구나 여기서는 정책적으로 억압받는 성직자를 성의 타락을 통해 더욱 비하하고 있다. 이 시는 중과 성행위를 한 여성 화자를 통해 당대의 보편화된 승려계급의 타락과 당시에 풍미했을 수도 있는 여염집 아낙의 성적 일탈을 고발하는 기능도 하고 있다. 요즘 시대에도 성직자와 부녀의 성적 일탈 행위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황지우는 신문기사와 낙서에서 소재를 채용하여 비속한 일상을 풍자한다. 수사법상 인유의 방법이다.


길중은 밤늦게 돌아온 숙자

에게 핀잔을 주는데, 숙자는

하루종일 고생한 수고도 몰

라 주는 남편이 야속해 화가

났다. 혜옥은 조카 창연이

은미를 따르는 것을 보고 명

섭과 자연스럽게 아야기를 나

누게 된다. 이모는 명섭과

은미의 초라한 생활이 안스

러워·..


어느날 나는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는 없고 친구 누

나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친구 누나의 벌어진 가랑이

를 보자 나는 자지가 꼴렸다.

그래서 나는.··

       

             -황지우, 「숙자는 남편이 야속해 KBS 2TV, 산유화(하오 9시 45분)」 전문


기존 시 형식을 파괴한 낯설기와 비속한 내용의 드러냄이 독자에게 재미를 준다.사람들의 관습적이고 저속한 일상성을 드러내기 위해 1연은 티비 연속극을, 2연은 공중화장실의 낙서를 소재로 채용하였다. 티비 연속극과 낙서가 시가 될 수 있다는 데서 의외성과 재미를 준다. 특히 2연은 저급하고 비속한 낙서가 시에 수용되면서 창작자와 독자의 공유된 경험으로 재미를 주게된다.

김영승은 대중적인 농담을 채용하여 현대 사회에 범람하고 있는 은폐된 성의 일탈 풍자를 하고 있다.


당신 섹스 파트너는 솔직히

몇 명이었소?

킥킥.


한 부부가 염라대왕 앞에 갔단다

염라대왕이 부부를 각각 따로따로 떼어놓고

자신이 몇 번 간음을 했는가 절대

비밀로 할테니 말하라고 했고

그리고 간음 한 번에 팔뚝에 한 땀씩

바느질을 하는 벌을 주기로 했다


남편은 닥 두 번이라고 고백하고

아얏! 두 번 꼬맸다


다 꼬매고 남편이 아내는 왜 아직 안 오나 몰래 보니

아내는 들들들 재봉틀로 누비를 당하고 있었다나


                    -김영승, 「반성 810」 부분


이 시는 현재 보편화되었으나 드러나지 않은 은폐된 성의 일탈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를 읽는 독자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드러낸 시를 읽으면서 공감을 통해 재미를 느낄 것이다. 김영승은 다른 시에서도 비시적 담론을 과감하게 채용하여 재미를 주고 있다. 현실의 세속성에 대한 시적 대응인 것이다. 그러면 필자의 창작 사례를 들어보자.



친구들은 기독교 신자인 나를

  도덕교과서라고 부른다. 그러나

  회사 접대 술을 마실 때면 항상

  여자를 옆에 앉히는 버릇을 가졌던 나는,

  생일날 친구네 식구들을 초청하여

  술을 마시다가 나 자신도 모르게,

  친구 아내의 사타구니에 그만

  손을 넣는 바람에 대판 싸우고

  뜻하지 않게 친구까지 잃었다.

 “애새끼들만 아니면 네 놈하고 안 살아!”

  아내는 울고불고하다가

  지갑을 압수하고 신용카드란 카드는

  모두 가위로 잘라버렸다.

 “썅놈! 신용 지랄하네!

  그놈의 물건도 그냥 잘라버릴쳐!!”


                       - 공광규, 「우리집에서 생긴 일」 전문


  위 시는 풍자적 음성이 일인칭 화자인 ‘나’를 솔직하게 말하는 직접적 풍자이다. 시에 겉으로 드러나는 화자는 자기풍자가 분명하지만 내용은 타자 풍자이다. 타인의 악덕과 약점을 조소하기 위해 자신을 비판하는 기법에서 자연스럽게 재미를 드러낸다. 창작자는 화자를 일인칭화하여 교회에서 도덕을 강조하는 기독교신자이면서도 도덕불감증에 걸린 ‘나’를 솔직하게 고백해버린다. 상업자본주의 삶에서 흔히 일어나는 신앙과 생활의 불일치이다. 창작자의 생활이 실제로 그렇든 아니든, 위선적 종교를 가지고 있던 아니든 상관없다. 생계를 위한 회사원으로서 화자의 습관화된 부도덕성을 고백하여, 불특정 독자에게 한바탕 웃음과 도덕적 위의성을 갖게 하여 재미를 주려는 것이다. 독자는 시를 읽으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자신의 도덕 불감증에 걸린 관성적 삶을 돌아 볼 것이다. 



2-3. 희언의 방법


희언법은 언어유희로 말놀이, 말재롱을 통하여 시성을 획득하는 창작 기법이다. 희언법은 여러 유형이 있으며, 아이러니의 한 형식으로 말을 통해 재미를 주는 반어적 수법18)이기도 하다. 영어로 펀(Fun)인 말재롱은 소리는 같거나 유사하지만 뜻이 전혀 다른 말이나 두개의 뜻을 가진 단어표기만 다를 뿐 발음과 뜻이 유사한 단어를 사용한다. 송욱은 「何如之鄕 5 」에서 “痴情같은 政治”, “現金이 實現하는 現實”등의 언어유희로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실랄하게 비판19)하기도 하지만, 꼭 현실 풍자를 하는 것만은 아니다. 말놀이를 통한 재미의 방법을 먼데서 찾을 필요도 없다. 우선 어려서 듣고 부른 자신의 고향 민요를 생각해보자.


이게 무엇이요

옷이요

네, 옵니다


이게 무엇이요

잣이요

네, 먹습니다


이게 무엇이요

갓이요

네, 갑니다20)

    

필자의 고향인 청양에서 불려지던 민요이다. 옷이요와 옵니다, 잣이요와 먹습니다, 갓이요와 갑니다는 발음이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의 말로 받는다. 유사음 잇기이며, 수사법상 희언법이다. 대답이 예상을 뒤엎고, 기대를 배반하여 재미를 준다.

  이규보는 신라 이래 오랜 인습을 지켜온 문벌 귀족의 권력을 공격하고 특권의식, 사대의식, 형식주의, 보수적 문학관을 청산하기 위해 실천한 문인이다. 스스로 자신을 시마(시의 마귀)에 걸린 광객(미친 손님)이라고 했다. 이규보는 술 마시고 시를 짓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인로를 중심으로 하는 불투명하고 위선적인 지식인인 죽림칠현을 공격하였다. 죽립칠현은 지금으로 말하면 최고의 가문에다 공부를 잘하던 보수적 엘리트 그룹이었다. 그들은 실제로는 관직을 바라면서도 그러지 않은 척 술을 마시고 시를 짓고 기생과 놀고 방약무인하여 민중들로부터 지탄을 받았던 계급이었다. 벼슬살이와 시 창작을 적극적으로 한 이규보의 재미있는 시 한 편을 보자.


牡丹含露眞珠顆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을

美人折得窓前過    미인이 꺾어들고 창 앞을 지나며

含笑問檀郞        살짝 웃음띠고 낭군에게 물었다

花强妾貌强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檀郞故相戱        낭군이 짐짓 장난을 섞어서 말했다

强道花枝好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美人妬花勝        미인은 그 말 듣고 토라져서

踏破花枝道        꽃을 밟아 뭉개며 말했다

花若勝於妾        "꽃이 저보다 더 예쁘시거든

今宵花同宿        오늘밤은 꽃을 안고 주무세요."


                         - 「折花行(꽃을 꺾어들고 가면서)」 전문

 

여성 주인공의 기지가 엿보이는 시이다. 남자가 여자보다 꽃이 더 예쁘다는 말을 했다가다가 낭패를 보고 있다. 이규보가 쓴 이 재미있는 대화체의 시를 읽으면서 독자들은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이것이 상당히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유교는 물론이고 불교경전까지 외울 정도로 두루두루 공부를 많이 한 이규보라는 선비의 시인 것이다. 이규보는 시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흥을 느껴 들뜨고, 다른 사람도 들뜨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다.

절간의 스님들이 사용하는 선시도 비약과 파격을 통해 재미를 준다. 선시적 표현기법의 모범은 아무래도 최근에 성철 스님이 남긴 오도송인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일 것이다. 싱겁기 짝이 없는 어법이다. 당연한 말이며 말할 필요가 없는 말이다. 그러므로 당연한 말 속에 진리가 있는 것이다. 역설이며 언어당착이다. 선시의 수사법은 역설과 유사하다. 언어당착적인 모순어법을 사용하여 깨달음의 세계를 글로 표시하는 것이다.


뙤약볕 속 찬 서리 구슬을 맺고

쇠 나무에 핀 꽃 광명을 자랑한다

진흙소 포효소리 바다 속 달리고

바람에 우는 나무 말, 도의 길을 가득 채운다


17세기에 살았던 허백 명조라는 스님의 선시이다.21) 뙤약볕 속에서 찬서리가 내릴리 없고, 쇠가 나무가 될 수도 없으며, 꽃이 필 리가 없다. 또 진흙으로 만든 소가 어떻게 울겠는가. 거기다 진흙으로 만든 소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기란 불가능하다. 진흙은 물 속에서 금방 녹아버릴테니까. 또 나무로 만든 말은 울 수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선시는 불가능한 사실의 열거를 통해 초월적 은유를 하는 것이다. 모순어법이 재미를 준다. 모순어법이라는 것은 언어당착이다. 모순된 표현으로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동질화시키는 것이다. 시적 대상에 상상력의 자유와 초월적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 시는 필자의 창작 실천의 사례이다. 성을 제재로한 시가 아니어도 재미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재를 어떻게 요리하느냐 하는 방법에 따라 다른 것이다. 대화체를 사용하였다.


마부가 말했다.

지금 마차는 사십 오세 역을 지나고 있습니다.

나는 마부에게 항의했다.

왜 이렇게 빨리 지나는 거요, 이건 내가 원하는 속도가 아니오.

마부는 말했다.

이봐요, 손님. 속도는 당신 주민등록증에 써 있소. 쯩을 까보시오.

나는 쯩을 쥔 손을 부르르 떨며 마부에게 떼를 썼다.

억울해요, 좀 천천히 가거나 마차를 멈춰주시오.

마부는 근엄하게 말했다.

이 마차는 속도를 늦추는 법이 없소. 내리면 다시 탈수도 없구요.

나는 더욱 놀라서 마부에게 졸랐다.

그렇다면 시간을 파는 가계를 찾아주시오. 돈은 얼마든지 있어요. 몸과 영혼과 시간을 다 바쳐서 번 돈 말이오. 시간을 살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당신에게 주겠어요.

마부는 심각하게 말했다.

글쎄요, 이 마부조차 시간을 파는 가게가 있다는 얘기를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소. 그러나 당신의 용기가 가상하니 찾아보죠.

마부는 채찍을 마구 휘둘러대고, 마차는 더욱 빠른 속도로 시간을 파는 가게를 찾아서 달리고 달렸다. 마차의 속도는 갈수록 더 빨라졌고, 시간을 파는 가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는 너무 빠른 나머지 나는 겁이 나서 마부에게 소리쳤다.

여기서라도 당장 내려주시오, 어서! 제발·

마부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러죠, 늙은이. 이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 당신은 꽥이요.


                         - 공광규, 「시간의 마차 위에서」 전문


‘쯩’은 주민등록증의 줄임말 강조이다. 술집에서 찻집에서 서로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면서 나이를 확인할 때 ‘쯩을 까볼까?’제안을 하는 현대 유행 속어이다. 자립명사인 주민등록증의 음절수를 언어의 경제적 효과를 위해 줄이면서 ‘증’이라는 비자립명사가 되자, 그 음절 보상을 위해 경음화하여 강조하는 것이다. 연극 대사같은 빠른 대화법과 쯩, 늙은이, 꽥이요 등의 상말을 사용하여 재미있게 구성하려고 하였다. 독자는 이 시를 읽어가다 웃음 뒤에 숨어있는 인생의 시간을 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창작자는 웃음의 주요한 소재인 성을 이야기하지 않고도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 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3. 나오며


시의 대중화와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현대시에 재미를 수용해보자는 ‘재미의 시학’을 어설프게나마 제안하고 민요와 한시, 선시, 시조에서 몇가지 재미의 원리와 방법을 추출하여 보았다. 재미의 원리는 우리의 전통 구비문학이나 기록문학, 연희문화에서 빈번하게 발견된다. 서민문학이 주류화된 조선후기의 사설시조와 판소리, 민속극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인용한 구전 민요와 전래 동요에서는 해학과 성적 일탈 욕구에 대한 구체적이고 솔직한 표현과 말놀이를, 이규보의 한시에서는 대화법을 통한 시적 주인공의 기지와 반전, 김삿갓의 한시에서는 해학적 상상, 선시에서는 언어당착적 모순어법 등을 창작 원리로 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방법은 독자에게 놀라움과 웃음을 통해 재미를 준다.

그리고 현대시에서 서정주, 오탁번, 황지우, 김영승의 시를 실례로 살펴보았다. 또한 필자가 직접 창작한 시를 가지고 재미의 원리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좀더 문학의 전체 양식을 사례로 분석하여 재미의 원리를 추출하거나, 추출된 원리와 같은 유형의 현대 시들을 인용하여 분석하지 않은 것이 한계이다.

필자의 시를 인용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나, 다분히 ‘재미의 원리’를 필자가 창작으로 실천해보았다는 의미로 이해하였으면 한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재미에만 치중하여 지나치게 무정치, 탈사회적인 시만 생산해서는 안되겠다는 주문도 해본다.

필자는 이땅의 문예 창작자들이 재미의 원리와 방법을 통하여 재미있는 문학, 재미있는 시, 그러면서도 개인과 사회에 모두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문장들을 많이 생산하기를 주문한다.*


1) 공광규, 〈재미의 시학〉,  《시와정신》, 2006 봄, pp.26~41 및 공광규, 〈재미의 원리를 활용한 시창작방법〉, 《문학교육과 문예창작》, 한국문예창작학회 제10회 정기학술세미나, 2006.4.22, pp.49~66 참조.


2) 중국 남조시대 문학이론가인 종영(서기 466?~518)은 시가평론집인 『詩品』의 서(序)에서 자미를 언급하여 “5언시가 문학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까닭은 많은 작품들이 자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五言居文詞之要 是衆作之有滋味者也)”라고 하였다. 종영은 자미를 기준으로 영가(진나라 회제 연호. 서기 307~312) 시기에 한때 유행한 현언시(玄言詩)가 “이치가 문사를 넘어섰고 담담하여 맛이 부족(理過其辭 淡乎寡味)”하다고 비판하였다. 현언시는 현리(玄理)를 드러내기에 골몰해서 정작 시의 형상이나 의경은 소홀히 했으며 추론만 중시해 격정은 결핍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현언시의 전반적인 병폐는 독자들에게 정서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힘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풍력을 근간으로 삼아 단청과 채색으로 윤색하면 이를 맛보는 사람이 다함이 없을 것이고 듣는 사람의 가슴은 진동할 것이다.(之以風力 潤之以丹彩 使味之者無極 聞之者動心)”라고 시맛의 창조 문제로 풍력과 단채의 결합을 주장하였다. 종영은 자미설로 시를 논하는 표준으로 삼았다.(임종욱, 『중국의 문예인식』, 이회, 2001, pp.167~171 참조.)


3) 일반 서사에서 재미를 산출하는 핵심은 다중구조와 복선, 긴장의 축적과 반전, 창작자와 독자의 공유경험일 것이다.(이현비, 『재미의 경계』, 지성사, 2004. 참조) 재미에 관한 일반이론을 작품 분석이나 창작 방법에 적용하는 것도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이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4) 권혁웅은 최근(2005년)의 몇몇 젊은 시인들에게는 1980년대 시인들이 걸머져야 했던 역사와 시대에 대한 채무 의식이 없고, 1990년대 시인들이 내세운 그럴듯한 서정과 고만고만한 서정이 없는 대신에 ‘재미’가 있다고 하였다.(권혁웅, 「미래파-2005년 젊은 시인들」, 『미래파』, 문학과지성사. 2005, pp.149~150 참조.  


5) 유머에는 긍정적 유머와 부정적 유머가 있는 데, 긍정적 유머는 타인과 함께 웃고 긴장을 풀 수 있는 유머이고, 부정적 유머는 누군가를 난처하게 만들거나 비꼼으로써 웃음을 유발하게 하는 것이다.(〈주간동아〉 2006.1.31~2.7, pp.30~33 참조)


6) 이주열, 『한국현대시에 나타난 해학성과 정신』, 푸른사상, 2005, pp.13~25 참조.


7) 청양문화원, 「이앙요」, 『청양의 구비문학』, 2001, p.34.


8) 일연, 이민수 역,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1983, p.139 참조. 


9) 오정국, 「한국 현대시의 설화 수용 양상 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학위논문, 2002, pp.24~25 참조.


10) 서거정이 조선 성종 8년인 1477년에 지은 설화집이다. 원래 이름은 『태평한화골계전』으로 모두 4권이다. 내용은 고려 말과 조선 초에 걸쳐 고관, 문인, 승도들 사이에 떠돌던 기발하고도 익살스러운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한국 소설이 비롯되기 이전의 설화문학의 양상이 어떠한 것인지 관찰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대세계백과사전-문학』, 태극출판사, 1981(개정중판), p.463 참조) 


11) 조동일, 『한국문학사상사시론』, 지식산업사, 1982(3판), pp.125~127 참조.


12) 김규동, 〈김삿갓과 한하운 시의 대비적 고찰-방랑시를 중심으로〉, 창원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학위논문, 2004, pp.40~41 참조.


13) 《시와사람》, 2004 봄, pp.154~155.


14) 이주열, 앞의 책.


15) 이순욱, 『한국의 현대시와 웃음시학』, 청동거울, 2004, pp.29~30 참조.


16) 홍문표, 『시창작 원리』, 창조문학사, 2002(5판 개정), p.443.


17) 청양문화원, 앞의 책, pp.59~62 필자가 재구성.


18) 홍문표, 위의 책, p.451.


19) 김준오, 『시론』, 1982, p.180 참조.


20) 「자음요 1」, 『청양의 구비문화』, 청양문화원, pp.23~24.


21) 송준영은 이 시가 선시 표현방법론에서 중시되는 반상합도의 표현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로 보고 있다. 정상이 아닌 기이한 사물과 상호 충돌적인 이미지를 등장시켜 독자를 황당하게 한다는 것이다. “뙤약볕 속 서리”와 “쇠나무에 핀 꽃”이 그것이며, 진흙소가 큰 울음을 울고, 진흙소가 바다에 든다, 바람에 우는 나무말, 길을 메운 그 소리 등이 독자를 황당 무계한 속으로 밀어넣고, 독자에게 충격적 당황감을 경험하게 하며, 독자가 현실적인 기본질서나 정상으로 인정하는 기본 바탕을 고의적으로 깨어버린다고 한다.(송준영, ‘선시와 아방가르드 시’, 〈선과 아방가르드〉, 2006년 시와세계시학회 창립기념 제1회 학술세미나 자료, 2006.1.14, p.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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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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