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소음난청(騷音難聽)’을 치유하다
<손진은 시집>-고요 이야기
곰작 않고 죽은 체하는
한 마리 고요를 본다
공기들을 일순 긴장시키며
물질이 된 놈의 태연
한낮의 정적과 바람 햇살을
상처로 덮은 채
놈은 격렬하게 떨고 있을 것이다
(마음이 있다면 금 갔을 것이다)
몸뚱이 온통 귀로 만든
저 번지는 선들의 소용돌이
무정부주의자처럼 흔드는 섬모들
허나 웬걸
겁먹은 마음 같은 건 놔둔 채
전신으로 빛과 그늘 대기와 어울리는
저 몸속,
타고 있는 불의 싹들
몇 칸의 열린 창窓으로
나뭇잎들의 옷자락이
초록을 헹구러 다가서다!
뒤이어 구름도 몇.....
직물처럼 짜인 고요의 허벅지 슬쩍 당겨
한 줄에 꿴 꿈틀 산맥
앞의 그늘 휙 돌아보며 가로질러 간다
말들을 품은 채
땅 쥐었다 놓았다
하늘 당겼다 놓았다 하면서
내 몸속 창窓엔
우르릉 쾅쾅 천둥소리도 쑤셔 박으면서
-고요, 격렬한(-내 발 앞의 배추벌레)
손진은의 시집<고요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동안 ‘소음난청(騷音難聽)’을 앓고 있으면서도 청각장애인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음을 실감하게 하였다. 현대사회에 들어오면서 각종 개인용 전자장비가 놀라울 정도로 발달하였다. 길거리를 걸어가면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운동을 하면서도 들을 수 있고, 지하철이나 심지어 도서관에서도 이어폰을 사용하여 음악뿐만 아니라 어학공부, 라디오의 내용을 청취할 수 있다. 이어폰을 사용하여 듣는 모든 소리가 자칫 잘못하면 청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경종을 울리고 있다. 미국 청력 보호협회 연구자인 Portnuff 와 Fligor는 이어폰을 착용한 채 시끄러운 환경 속에서 볼륨을 높여 듣게 되면 심각한 청력 손실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고하였다. Archives of International Medicine연구에 따르면 청력과 이어폰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 이어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청력 손실이 현저하게 나타난다고 보고하였다. 미국 성인의 약 16%가 청력에 이상이 있고, 20세 이상의 미국인 중 30% 이상(약 5천 5백만명)이 고주파 음을 듣지 못한다고 하였다. 사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최대 볼륨의 90%이상을 사용하면서 하루 2시간, 일주일에 5일 정도를 earbuds(귀에 밀착되는 이어폰)를 사용하는 경우 40데시벨 밑으로는 듣기 어려운 청력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경희대병원 이비인후과 여승근 교수팀이 청소년 49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MP3등의 음향기기를 하루 1시간 이상 사용하는 청소년이 60.8%에 달했으며, 3시간 이상 사용하는 경우도 14.1%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하였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음악장비가 청력손실에 영향을 준다고 하였다. 박현민 보라메병원 이빈후과 교수는 “음악을 들으며 길거리를 걷거나 지하철을 타면 주변의 소음이 커져서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볼륨을 올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우리 귀에 들리는 소리가 커져서 신경세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하였다. 특히 “소음에 청력이 나빠지는 것은 소음에 노출되는 시간이 중요하며, 장시간 소음에 노출 되는 것은 청력세포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청력 손실이 올 수 있다”고 하였다.(국민일보 2011. 09.10.귀의 날, 건강기획 중 일부 인용)즉 소음으로 인해서 일상생활에서 정상적으로 들을 수 있는 소리도 잘 듣지 못하는 ‘소음 난청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그로 인한 정서적, 정신적 장애를 수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산업의 발달과 전자산업의 획기적인 발달로 도심은 어느 때 부터인가 밤이 실종되었다. 찬란한 네온싸인과 음악과 소음들이 거리를 흘러 다니며 사람들의 시력과 청력과 정신을 훼손시키고 있다. 밤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올빼미 족이 되어 컴퓨터와 전자기기 앞에서 새벽을 맞이하기도 하고, 스위치만 누르면 소음 같은 무수한 소리들이 24시간 편의점처럼 대기하고 있는 세상에 살면서, ‘소음난청’자가 되어 가청영역의 역치가 줄어 든 것도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 <고요 이야기>속에서 손 시인은 우리가 들었던 소리, 들어야 할 소리, 들을 수 있지만 듣지 못하고 있는 소리를 살려내어 우리의 가청영역을 회복 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봄동배추를 씹을 때/바스락거리는 건 어린 추위들의 연두빛 마음/세상 어느 것과 비교도 안 되는 그/단 맛 우물거릴 때 입안에서 파들거리는 건/발전소처럼 윙윙거리는 바람 떼거나 한 밤,/가슴에 끌어당겼을 먼 마을의 불빛, 잔기침처럼 쏘아올린 별들/그건 또 슬픔과 두려움, 놀람과 상쾌함 같은/육체의 서랍 속에 있던 감각들/버려진 밭자락에서 뽑아온/오소소 잎맥에 돋은 소름 혀끝에 만져지는/파리한 배추 답사 온 일행과 함께 씹을 때/입안에서 잘게 부서지는 그 엽록소엔/가르릉대는 어린 추위들과 싸우다/마침내 순해진 고 짐승 어여 와 어여와! 손주이듯/다독이는 할머니의 다정 같은 게 들어있다(봄동배추를 씹을 때 중 일부)” “봄동배추”는 “봄동”이라고도 불리는 배추로 특별한 품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배추이던지 “버려진 밭자락”과 같은 노지(露地)에서 겨울을 나고 자란 배추를 의미한다. 구정이 지나면서 입춘이 다가오면 둔덕엔 아직도 잔설이 남아있고 영하의 맵고 추운 날씨가 계속 되지만 우리의 입맛은 벌써 봄을 들이고 싶어 한다. 겨우내 먹은 김장김치에 물리어 입맛이 떨어질 때 쯤 재래시장을 돌면 좌판이나 아주머니들이 양푼에 담아 내놓은 “봄동배추”가 추위 속에서 햇살을 가득 받은 채 초록색 향기를 내뿜고 있는 것이다.
'봄동배추'는 일반 배추처럼 속이 꽉 차지 못하고 잎이 옆으로 다풀다풀 퍼져있다. 일반 배추보다는 이파리가 두텁지만 어리고 연하여 씹으면 달큼하고 사각거리며 씹히는 맛이 좋아 이른 봄에 입맛을 돋우는 겉절이나 쌈으로 즐겨먹는 음식이다. 손 시인은 ”봄동배추“를 씹을 때 상큼하고도 달큰 한 맛과 소리에서 “발전소처럼 윙윙거리는 바람 떼거나 한 밤,/가슴에 끌어당겼을 먼 마을의 불빛, 잔기침처럼 쏘아올린 별들/그건 또 슬픔과 두려움, 놀람과 상쾌함 같은/육체의 서랍 속에 있던 감각들”이 살아남을 환기 시켜준다. 그리고 “어여 와 어여 와! 손주이듯/다독이는 할머니의 다정”한 소리가 되어 우리가 일상에서 들을 수 있었지만 무심하게 넘겨버린 ‘소음난청’의 귀를 닦아주고 있는 것이다.
“dB(decibel)"이란 소리의 상대적인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이다. 정상적인 귀로 들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의 크기인 0dB을 기준으로 하여 소리의 세기를 분류하여 놓았는데, 가정에서의 평균 생활 소음은 약 40dB, 일상의 대화는 약 60dB, 집에서 듣는 음악은 약 85dB,소리가 큰 록밴드는 약 110dB, 제트엔진의 소음은 150dB이다. 120-140dB 정도의 소리는 사람이 듣기에 고통스러운 정도이며, 80dB 이상의 소음을 지속적으로 듣게 되면 청각장애를 야기할 수 있다. 손 시인의 시편들은 평균 생활에서 들을 수 있는 가청영역에서부터 귀를 기울여야 하거나, 아니면 주변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고요“의 상태에서 몰입하여야만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을 채집하여 ‘소음난청’에 걸린 우리들의 귀를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뾰족한 잎사귀로 공기의 허파며 가슴패기를 쿡, 쿠국/찔렀다 뺐다 한다/저 끝없는 난자, 그러나/칼이 오기 전 먼저 터지고 싶은/공기의 맨살들 내장들/어느 자객이/저 바늘 검보다 더 빨리 다리, 배를/배었다 감쪽같이 다시 붙여놓을 수 있을까 (유쾌한 검객-소나무 중 일부)”손 시인이 들려주는 소나무에 바람 지나는 소리는 마음이 ‘소음 난청’인 사람들은 번잡한 도시를 떠나 들판이거나 산 속이거나 바닷가이거나 들길을 걸어보아야 들을 수 있는 소리이다. 혼자서 걸어야 하리라. 무심하게 걷다가 문득 바람이 불어와 머리칼이 날리고 나뭇잎파리가 흔들릴 때, “어느 자객이/저 바늘 검보다 더 빨리 다리, 배를/배었다 감쪽같이 다시 붙여놓을 수 있을까”할 정도로 흔들리고 있는 소나무의 푸른 침엽수를 만났다면 가만히 다가가서 소나무 푸른 이파리에 마음의 귀를 대어 보라. 바늘처럼 “뾰족한 잎사귀”를 지닌 침엽수의 푸른 소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뾰족한 잎사귀로 공기의 허파며 가슴패기를 쿡, 쿠국/찔렀다 뺐다"하는 솔잎파리의 날랜 솜씨를 볼 수 있다면, “칼이 오기 전 먼저 터지고 싶은/공기의 맨살들 내장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당신 마음의 ‘소음난청’은 치유되고 있는 것이리라.
“허나 웬걸/겁먹은 마음 같은 건 놔둔 채/전신으로 빛과 그늘 대기와 어울리는/저 몸속,/타고 있는 불의 싹들“의 지령에 따라 ”직물처럼 짜인 고요의 허벅지 슬쩍 당겨/한 줄에 꿴 꿈틀 산맥/앞의 그늘 휙 돌아보며 가로질러 간다/말들을 품은 채/땅 쥐었다 놓았다/하늘 당겼다 놓았다 하면서” 부리나케 자신의 길을 가는 작은 생명체 속 유전자의 존엄한 명령에 따르는 ”배추벌레“의 모습 속에서 ”내 몸속 창窓엔/우르릉 쾅쾅 천둥소리도 쑤셔 박“는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시적 청력을 회복한 것이며, 자연의 리듬과 교감할 수 있는 가청영역의 역치가 확대된 것이다.
“감자를 캐는 밭/벼논을 향해 집개가 짖는다/팔월 벼 자라는 소리에/개가 아는 체한다는 어머니 말씀/그 고요와 사랑이 만들어 내는/소란의 맨 얼굴을/나보담도, 줄기를 끌어당길 때마다/숨겨진 얼굴들 속속 딸려 나오는 걸 솔깃해 하는 나보담도/멍청하게 먼 곳만 쳐다보는 듯한 네가 더 잘 알고 있다니/늙은 개가 짖어댄다/몇 바지게씩의 뜨건/햇살 경전에 몸 파랗게 칠하며/끙끙 아랫도리 힘줄 때 내는/벼들 성장의 신음에 개가 서늘히 내통하고 있다(고요 이야기 중 일부)”물론 후각과 청력이 아주 뛰어난 개의 경우 인간의 8배 정도 먼 거리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 큼 청력이 예민하다고 한다. 그러나 “팔월 벼 자라는 소리에/개가 아는 체”할 수 있다니!
손 시인은 감자를 캐면서 “줄기를 끌어당길 때마다/숨겨진 얼굴들 속속 딸려 나오는 걸 솔깃해 하는 나보담도” 평생 농사를 지으시면서 자연과 한 몸이 되신 어머니가 “벼”자라는 소리를 들으시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몇 바지게씩의 뜨건/햇살 경전에 몸 파랗게 칠하며/끙끙 아랫도리 힘줄 때 내는/벼들 성장의 신음에 개가 서늘히 내통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시는 어머니, 그리고 “그 고요와 사랑이 만들어 내는/소란의 맨 얼굴을” “멍청하게 먼 곳만 쳐다보는 듯한” 오래된 늙은 개가 더 잘 알고 있다 것에 시인은 놀람과 질투의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그렇다. 진짜 시인은 평생을 농사만 지으시는 어머니가 아니신가. 자연의 모든 것들과 교감할 수 있는 어머니의 말씀 하나 하나가 바로 시이며, 시인의 귀가 늙은 집개의 귀만도 못하다는 뼈아픈 인식에서 시인의 길이 어떠한가를 보여준다.
1992년에 첫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와 1996년 두 번 째 시집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를 낸 이후 무려 15년간을 침묵하던 손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고요 이야기>의 전언은 “고요” 속에 들끓는 생생하고도 격렬한 소리들의 실체를 찿아 나선 구도의 시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손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소음난청’인 줄도 모르고 시끄러운 소음을 이길려고 더 큰 소리로 떠들고 내지르던 거칠고 무잡하던 자신들의 모습들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잃어버렸던 청력을 회복 할 수 있을 것이다.
손진은 시인은 1960년 경북 안강에서 태어나 경북대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199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시론서 <현대시의 미적 인식과 형상화 방식 연구>,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 <한국 현대시의 정신과 무늬>, <현대시의 지평과 맥락>, <시창작의 이론과 실제(공저)>등이 있다. 1996년 대구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현재 경주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학의 전당] 값8,000원.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수 dsseo@shin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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