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서 온 우주소년의 하이킥, 인간 상상력을 뛰어넘다
—김산의 「은하 미용실」
은하 미용실
김산
엘프족을 닮은 여자가 있다
이름 모를 행성과 충돌하고
흩어진 가계를 수습하기 위해
가위 하나만 달랑 손에 쥐고
지구별로 야반도주한 여자
건조한 내 머리에 물을 뿌리며
숙련된 손길로 싹둑싹둑
한 달간의 근심을 가지 치는 여자
웃자란 생각들을 좌우로 보며
마침맞게 중심을 잡아주는 여자
이따끔 새 순으로 피어난 꽃말들이
그믐처럼 그윽하게 입가에 스미는 여자
언젠가 여자는 나를 쓸어 담고
그녀가 왔던 행성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레이스가 깔린 은하수 돗자리를 깔고
흩어졌던 가족들을 불러 모아
내가 지금 잠시 무릎에 손을 얹고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인 것처럼
머언 작은 별 이야길 해줄 것이다
그녀는 지금 내 머리 위에
비행접시처럼 떠서 우주의 먼지들을
구석구석 헹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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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란 생각들을 자른다, 머리를 자른다. 지난 한 달 나는 또 어떻게 살았나. 작은 미용실 의자에 앉아 골몰히 상상한다. 나는 누구인가, 내 머리를 매만지는 저 여인은 누구인가. 이곳은 은하 미용실. 좁다란 홀 바닥이 푹 꺼지고, 거대한 블랙홀이 드러나는 곳. 잘린 머리카락이 우주의 먼지처럼 반짝이는 곳. 한 달에 한 번 나는 그녀를 만난다, 우주와 교신한다.
‘이달에 만나는 시’ 1월 추천작으로 김산 시인(36)의 「은하 미용실」을 선정했다. 지난해 11월 말 나온 시집 『키키』(민음사)에 수록된 시다.
김 시인은 어릴 적 장래 희망을 적는 난에 ‘나는 것’이라고 썼다. 선생님은 친절하게 비행기 조종사로 정정해줬다. 소년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말 그대로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엉뚱했던 아이는 자라 시인이 됐고 ‘엉뚱한’ 첫 시집을 냈다. 이를테면 지구별에 떨어진 외계인이 지구인들을 관찰하고 느낀 바를 적은 감성적 보고서다. “소행성에서 온 외계인인데 어머니의 몸을 빌려서 태어난 거죠. 그 외계인이 지구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글로 기록하고, 그것을 자신의 고향(소행성)에 돌아가 얘기한다는 설정을 했어요.”
김 시인은 “어릴 때부터 가졌던 우주에 대한 동경이 결국 이번 시집으로 나왔다. 군대 시절부터 시를 썼으니까 15년 만에 결과물이 나온 셈”이라며 웃었다.
이건청 시인은 “김산은 심층심리의 세부를 파악해내는 안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는 무겁지 않다. 정신의 프리즘을 거치면서 다양한 국면으로 왜곡되고 굴절되면서 실체에 다가선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상상력이 발랄하다. 외계인적(우주적이라고 해야 맞을까?) 상상력과 현실을 뒤섞으며 독특한 이야기 시를 펼쳐낸다. 개인사를 우주사 속에 끼워 넣어 읽는 수법에서 독창성을 느끼게 한다. 오랜만에 시집을 정독하는 기쁨을 누렸다.” 장석주 시인의 추천사다.
김요일 시인은 그를 “순정한 몽상가”라고 평했다. “눈치 보지 않고, 머뭇대지도 않고 지상에서 우주까지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는 폭풍 상상력은 그가 오로지 ‘시’만을 위해 존재하는 천생 시인임을 증명케 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동아일보] 입력 201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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