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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인의 초상] 물푸레나무, 그 푸른 그늘 - 이영춘 시인 / 김추인

문근영 2014. 1. 8. 07:33

 

 

[시인의 초상] 이영춘 시인 / 김추인
물푸레나무, 그 푸른 그늘
[55호] 2012년 01월 10일 (화) 김추인 시인
이영춘 시인은
강원도 봉평 출생으로 경희대학교 국문과와 동 대학원 졸업(석사) 후 교직에 봉직했다. 1976년 월간문학에 바다, 빛 등으로 등단. 시집으로 《종점에서》《시시포스의 돌》 《귀하나만 열어 놓고》 《그대에게로 가는 편지》 《슬픈도시락》 《시간의 옆구리》 《봉평장날》 등 12권과 시선집 《들풀》, 수필집으로 《그래도 사랑이여!》가 있다. 윤동주 문학상, 강원향토문학상, 경희문학상, 시인들이뽑은시인상, 인산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는 전업시인으로 시업과 시창작 교실을 통해 좋은 문인 배출에 힘쓰고 있다

 물푸레나무, 그 크고 푸르던 그늘을 떠올린다.
내 유년의 뚝방가 큰 물푸레나무 그늘 밑엔 늘 평상에 사람들이 앉아 쉬고 있었고 그 아래 물속에는 회 쳐 먹기 좋을 만한 물고기들이 그늘을 찾아와 유영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풍경은 참으로 큰 그늘의 넉넉한 여유와 배포와 베품이었다.
물푸레나무 같이 크고 푸른 그늘을 지닌 시인, 그가 이영춘이다.

춘천 호숫가에 두 여자가 섰다. 미루나무들이 푸름에서 연노랑으로 옮겨가는 그림 같은 계절이었다. 가을의 초입, 잔물 지는 수면은 가을 하늘빛을 반추하며 더 차갑고 투명했으며 바위틈서리 야생의 담쟁이들 남 먼저 물들어 엄지손톱만 한 잎새들이 발긋발긋 내다보고 있었다. 벌써 이십여 년 전 일이다.
“옛날엔 여기 경치가 더 좋았어요. 김 시인 여긴 처음이지?”
“예. 한 번도 못 와봤어요. 너무 좋으네요”
“와 그랬어? 얼매나 존 데가 많은데…… 우리 강원도는 여름에도 시언해서 땀떼기도 잘 안 나요”
핑크빛이어야 할 학창 때를 어찌 보냈기에 그 이름난 강촌도 춘천도 한번 못 와 보았다니 이처럼 아련하고 호젓한 서정의 공간을 찾아볼 여유조차 없었던가. 스멀스멀 호면을 기어 퍼졌을 새벽의 물안개며 겨울 상고대, 얼음꽃떨기들이며 강바닥 돌무더기들엔 꽃소금 같을 서리꽃이 보얗게 피리라 상상하니 갑자기 억울해지기도 했었다.

그 춘천은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등단 첫해 첫 시집을 상재하고 이영춘 시인께도 졸집을 보냈는데 얼마 후 강릉 방언이 얼핏얼핏 드러나는 목소리가 날아왔다.
“김추인 시인 시집 잘 읽었는데요, 모더니즘 풍이면서도 서정적이라 좋았어요. 날 존 때 춘천에 놀러 와요. 언제 시간을 낼 수 있어요?”
가슴의 고동이 냅다 뛰기 시작했다. 친구가 없는 나에게 거의 대인기피증 수준으로 혼자를 고수하던 내게 칭찬을 곁들인 대 선배님의 초청이다. 하지만 바로는 여의치 않았고 다음해 가을에야 실현된 것. 길치인 내가 물어물어 퇴근 무렵의 춘천여고 교정으로 찾아드니
“아이구 오시느라 욕봤어요. 김추인 선생.”
날 듯이 달려나오는 이영춘 시인은 젊은 생기로 넘쳐 있었다. 처음 뵌 어색함으로 별말이 없는 내게 다감하게 말을 걸어오시는 선생님.
“김 선생, 요즈막에도 시 마이 쓰시나 부네. 눈자우가 뻘게요”
“예. 그냥저냥. 근무하면서 쓰려니 좀 어렵긴 해요”
“그치요. 잡무다 뭐다 선생들을 꽁꽁 무꺼노니 시 쓰기 숩지 않지”
오랜 교직생활로 거의 표준어를 구사하시지만 흥분하시거나 급해지면 강원도 억양이 불쑥불쑥 나와 갓 찐 감자처럼 구수하고 정겹다.
“여긴 전원 생활하기에 참 좋겠어요”
“그럼요. 쪼금만 나가도 또랑에는 깨구리도 많고 지장(기장)곡석이나 옥시기(옥수수)를 마이 길러요. 메물도 마이 심고…… 우리 생각난 김에 막국시나 먹으로 가까요?” 하며 먼 산에 걸린 흰 구름으로 시선을 돌리던 그녀, 소양 댐 가에서 멀리 내다보면 지는 놀이 시선 끝 수면 위에서 붉게 일렁거리고 가까이서는 직박구리 우는 소리가 그저 한가롭다. 좋다.
우린 막국수 집엘 갔고 시인은 후룩후룩 국수를 끌어넣으면서 연방
“오늘 밤 울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도 존데 어른께서 좀 핀찮으시니 깨끗한 여관 같은 데서 함께 잡시다. 밤새 얘기하면서……”
“아니요. 애들이 아직 어리고 어른들도 계시고…… 담에요.”
“그럼 그래요 담엔 춘천닭갈빌 내 꼭 살 테니 연락하소.”
난 집에 갈 걱정에 제대로 대꾸도 못했던 것 같다. 그 즈음만 해도 서울이란 곳이 까마득히 먼 곳이라 시계를 자주 보았던지 시인은 총알택시가 있어 서울까지 30분이면 날아가므로 맘 놓으란다 그 정감과 유머 넘치는 구수한 말씀을 뚝 끊고 일어설 수가 없어 망설이다 밤 10시를 넘어섰다. 서둘러야 했다. 처음 타보는 총알택시 앞좌석을 얼마나 꽉 붙들었던지 이튿날까지 어깨가 뻐근했던 기억 생생하다.
그녀의 끈끈한 인간미는 그 후에도 다정한 목소리로 날아오곤 했다
“김 선생, 그때 주신 인주로 지금도 결재하고 있어요.”
인사동을 뒤져 작은 사기 케이스에 담긴 붉은 인주를 드렸었는데 10여 년이 넘도록 쓰시다니…….

언니처럼 포근하던 시인의 첫 이미지는 그 오랜 세월 여일하다.
그녀는 한 개인에게가 아니라 혈육, 제자, 지인 외에도 노동자 소외자 등 누구에게든 남다른 정을 주는 시인이다. 고향 강원도를 위해 후학을 위해 문학 행사며 특강을 최선두에서 솔선수범, 문학은 시대의 곡비 노릇을 해야 한다 강변하시니, 그녀의 오지랖은 춘천 호수만큼이나 넓은 게 아닐까 싶다.

그녀에게 시는 과연 무엇인가. 물음표를 달아 본다

내 문학은 쌀 석 되로 출발했다.

내 고향은 산중 촌 동네, 당시로는 창피해서 말하기조차도 싫었던 강원도 봉평이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되자 진로가 막막하기 그지 없었다. 그곳에는 고등학교가 없기도 했지만, 완고한 조부님 슬하에서 감히 여자가 타지에 공부하러 간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불가한 일. 그래도 선배가 타지로 유학(遊學)간단 말에 나도 따라나서고 말리란 심중 모의를 했으니. ‘무조건 가서 시험을 쳐 놓고 보자’였다. 선배를 따라가기 위해서 미리 쌀 석 되를 훔쳐 감자구덩이에 숨겨 놓았다. 석 되의 의미는 2박3일 시험 보는 동안 남의 집서 밥을 얻어먹자면 하루에 한 되씩 석 되는 있어야 될 것 같다는 오진 계산이었다. 유학시절 자취를 하면서 나를 두르고 있던 것은 감옥같이 좁디좁은 사각의 벽(壁). 빈혈 같은 고독뿐이었으니, 그때부터 나는 뭔가를 혼자 끄적였고 헤세의 “나는 어머니의 방황하는 자식일세”를 읊조리며 쓰면서 견뎌냈다. 그것이 내 문학의 시작이었다.
-이영춘 〈나의 삶과 시〉 중에서

   
그녀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한 치유의 한 방편이었을까. 그녀의 시를 읽으면 푸르스름한 어둠의 빛이 스며 나오는 듯하다. 스스로를 불안과 죽음의 존재, 무의 존재라는 자각에서 순간순간의 허무와 세상의 고통을 지켜보며 드러내게 되는 우회적 쓰기 방식을 통해 아파하고 눈물 흘리며 카타르시스에 이르는 것이리라.

 

시인을 일러 ‘시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라 한 제자 송경애 시인의 말처럼 소박하고 따뜻한 성품에 유머까지 겸비했으니 주변엔 늘 사람이 따르고 배우고자 하는 이들로 북적였으나 실상. 시인의 내면은 잘 살아야 한다는 것 좋은 시를 써야 한다는 것 같은 집념으로 거의 강박 수준에 이른다고 스스로 술회하며
“시가 안 써질 때 나는 몸이 아프다. 애를 배고 일평생 낳지 못하는 것처럼 아프다. 진통을 겪으며 낳아 놓은 시라는 아이가 실하지 못해서 아프고, 시를 배고도 낳지 못해서 아프고, 시가 날 비웃으며 도망칠 때 아프고 내 시가 고아처럼 방황할 때 많이 아프고 아프다.”라고 시를 향한 절대 사랑을 표하기도 했다. (사진 삽입)-작년 2월의 어느 날, 일본 여행길(바쇼의 하이쿠 기행)에서. 왼쪽부터 필자, 이영춘, 신달자 시인.

그녀는 지금 이 시간 인도의 성지를 순례 중이다. 이 순간도 버릇처럼 이국의 창가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시를 쓰고 있을지 모르겠다. 큰 물푸레나무 그늘 같은 품성에서 나온 그녀의 시는 연하고 부드럽고 축축한 인간의 정서가 배어 나온다. 말미에 와 그녀의 시 한 편을 읽는 것도 좋겠다.

댓돌 위에 신발 한 켤레
그린 듯 누워 있다
 
지붕 위에서 놀던 햇살이 자박자박 걸어 내려와
몰래 신발을 훔쳐 신어보고 달아난다
 
조그만 쪽창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안에 누가 있을까?
 
궁금한 낮달이 기웃거리다 그림자 남기고 돌아간다
 
쪽마루 밑에 숨어  지켜보던 들 고양이, 냉큼
댓돌로 뛰어 올라가 방안을 들여다본다
 
거기, 마른 새우 등처럼 웅크린 어머니가
홀로 관(棺)으로 드는 길,
그 길을 내고 있었다
      -〈홀로 사는 집〉 전문


김추인/ 경남 함양 출생. 198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모든 하루는 낯설다》 《프렌치키스의 암호》 등 7권이 있다. 만해'님'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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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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