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포개어진 의자 - 김소연

문근영 2013. 12. 29. 16:27

포개어진 의자

 

김소연

 

 

앉을래?

의자가 의자에게 말했다

서성일래,

의자가 대답한다

 

나무들이 서 있길래

눕혀주려고 폭풍이 들이닥쳤다

우리는 누운 나무를 보며

재앙을 점쳤다

 

잠든 사람의 조금 벌어진 입술이

기어코 천진해질 시간에

 

계절이 바뀔 때에만

잠깐씩 입을 벌리고 나무는 새에게

가지를 내어준다

 

의자 하나가 그 곁에 있고

나무의 그림자에서 의자가 쉬고 있다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의자에 앉는다

 

아주 잠깐 고달픔을 잊은 채

찻집 창가에 앉아 있는 여자애에게

기어코 한 남자가 다가오듯이

 

의자가 되면 의자에 앉을 수 없게 된다

사람이 되면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된다

 

의자가 의자에 앉아 본분을 잊는 시간

우리는 재앙을 점치지만

사랑은 익어 열매처럼 떨어진다

입을 약간 벌린 채로

 

 

—《현대시》2012년 3월호

출처 : 대구 문학 - 시야 시야
글쓴이 : 문근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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