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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90) - 낯선 광맥의 시

문근영 2013. 12. 29. 16:27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90) - 낯선 광맥의 시

 

 

 

목격자
 
서효인
 
 
   우아하게 휘어지는 도로, 달아난 차는 뒤가 없고 사내는 김샌 음료처럼 흘렀다 마지막 탄산이 터지고 곧 증발할 사내의 소금기가 마지막 찐득한 주문을 외자 그의 곳곳에서 새로운 다리가 생겨났다
 
   오늘은 일하기가 싫다
 
   깨진 머리는 소소한 기억이 뭉쳐 되게 짰다 마지막 장면을 망망히 담던 눈도 전에 없이 튀어나왔다 오징어회가 입천장에 붙듯 염치없이 도로가 편안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흡반이 늘어났다
 
   생 처음, 게으르게 그는 누워 있고 차들은 한 대 두 대 그를 비켜 갔고 바다는 느긋하게 고래를 담고 곰치를 담고 청새치를 담고 오징어를 담고 불이 밝았다 불빛을 쫓는 사내의 다리가 질척일 때, 연골과 두골에 쌩, 바큇자국이 나고 오징어 몸통처럼 쌔앵, 가늘게 찢어지는 그의 생
 
   빛을 따르는 오징어가 그물에 잡히듯 묵호에서 도시로 밀려와 낙엽과 꽁초와 환경을 담던, 아스팔트에 구워져 동해 바다의 불빛처럼 줄지어 달려드는 어선에 찢기고 구워져 일차선 마요네즈에 찍힌
 
   새벽의 미화원을 본
   사람을 찾습니다

 
# 서효인은 얄팍한 언어와 감각적 수사에 집착하지 않고 우리 시가 치고 나가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예민한 촉수로 감지하고 있는 시인이다. 앞으로 그가 어디로 향할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목격자」는 낯익지만 낯선 시다. 이 시에는 익숙한 삶의 구체적 현장이 새로운 감각의 언어를 만나 빛을 발하고 있다. 전통과 전위, 현실과 판타지를 주로 상충의 개념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서효인은 두 개념의 양극을 통섭하고 아우를 줄 아는 큰 눈을 가진 시인이다. 특정한 세계와 감각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치고 빠지는 능란한 수사의 능력과 정치한 사유의 힘 또한 탁월하다.

  이 시는 환경미화원의 사고사를 다루고 있다. 흔한 소재이고 뻔한 내용을 짐작케 하는 소재이다. 그러나 시를 읽다 보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삶의 외진 구석에 불려나와 아픈 삶의 실체와 조우하게 된다. 뺑소니차에 치여 숨진 미화원은 ‘김샌 음료’이고, 화자는 피가 흐르는 현장을 ‘그의 곳곳에서 새로운 다리가 생겨났다’고 말한다. 어디론가 가고 싶어 하는 ‘다리’ 그러나 끝내 갈 수 없는 다리가 되고 만 참상이 비극적 정황을 고조시키고 독자를 압도한다. 

 2연에서 난데없이 ‘오늘은 일하기가 싫다’ 는 죽은 자의 고백이 등장한다. 일하기 싫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하는 것이 환경미화원의 처지다. 힘겨운 나날의 노동을 감수하다가 ‘깨진 머리’ ‘튀어나온 눈’의 상황을 맞게 된다. 그리고 ‘오징어회가 입천장에 붙듯 염치없이 도로가 편안했다’고 화자는 씻김굿 하는 무당처럼 죽은 자의 위치에서 말한다. 3연에서 미화원은 더욱 더 참담하게 ‘오징어회’가 되어 도로에 버려진다. ‘가늘게 찢어지는 그의 생’은 난생처음 ‘게으르게’ 누워 있는 호사를 누린다. 이러한 역설이 독자의 가슴을 뜨겁게 고양시킨다.

 결국 도시로 밀려와 미화원이 된 사내는 오징어처럼  ‘찢기고 구워져’ 아스팔트 위에서 최후를 맞게 된다. 그의 죽음을 목격한 것은 오직 새벽의 어둠뿐이었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새벽의 미화원을 본 / 사람을 찾습니다’라고 객관적 어조로 말한다. 어조의 변화가 시의 가열된 온도를 냉각시킨다. 이것이 눈앞의 상황에서 몇 걸음 물러나 시의 균형을 바로 잡는 형상화의 능력이다. 고조된 정조에 함몰되지 않는, 치고 빠질 줄 아는 사유의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현실에 대한 밀착도가 높은 시들이 제어하지 못한 감정을 흉물스럽게 노출하는 경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러한 특장이 서효인의 시를 신뢰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문화저널21'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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