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 박남준
흰 부추꽃으로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들 더 활활 타오르며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그건 상처다 상처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꺽인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긴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
# R. Linton은 사회 속에서 개인에게 부여하는 가치, 태도, 행동양식을 “역할(role)”이라고 하였다. “역할기대(role expect)”란 그 사회가 부여한 지위에 대해 그에 어울리는 행동양식을 요구하거나 예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은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가질 수는 있지만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행동양식인 역할기대는 그 사회가 내재화(internalization)시킨 규범을 요구한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다양한 조직을 포함한 사회 속에 살아가면서 조직이 요구하는 여러 역할이 조합된 역할군의 역할기대를 모두 충족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 채 “하루해가 저”물어 가던 날들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때론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꺽인” “상처받은 나무”가 되어 스스로 상처를 감싸 안고 “옹이”를 만들기도 하는 것이 현대인의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들 더 활활 타오르며/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그렇다. 인간은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기대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자아의 모습으로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 의지의 자유(freedom of will)를 가진 존재인 것이다.
은종소리가 나는 아기별들이 잠깐 지상으로 내려온 듯한 “흰 부추꽃”, 몸도 마음도 따스하게 해주는 약초가 피워 올린 “흰 부추꽃”. “무섭게 타오르”고 남은 “흰 재, 저 흰 재”가 “흰 부추꽃”이 되고픈 마음을 지닐 수 있다면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기대(role expect)에 조금 “서툴면” 어떠랴.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 교수dsseo @shingu.ac.kr)
-'문화저널2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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