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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획특집 ] 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 선비 집안의 가업(家業) / 김종길

문근영 2013. 11. 12. 07:30

 

 

선비 집안의 가업(家業) / 김종길
[기획특집 ] 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57호] 2013년 01월 03일 (목) 김종길 시인

 

예술원 시인 8인에게 듣는 나의 시론

시란 무엇인가, 시인은 왜 밤을 새워 시를 쓰는가. 모든 시인 앞에 던져진 이 질문은 애초부터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어쩌면 시인들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시를 쓰는지도 모른다. 문득 시 앞에서 막막해지면 원로들은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을까 궁금해진다. 평생 시와 함께 살아온 예술원 회원 시인들에게 그 궁금증을 설문으로 물어보았다. 당신은 왜 시를 쓰느냐고, 언제 시를 쓰느냐고, 그렇게 쓴 시들 중에 가장 아끼는 작품은 어떤 것이냐고. 원로 시인들은 이런 대답을 보내왔다.

 

시는 왜 쓰는가

 

나는 최근 다른 곳에서 시가 내게는 운명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으나 여기서는 가업(家業)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운명이나 가업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것은 가업이 집안 대대로 계승되어 온 것이어서 그것을 이어받는 일은 한 집안의 자손에게 운명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여기서도 거기서처럼 나의 집안과 나의 어릴 적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경북 안동의 선비 집안 출신이다. 나는 평소에 ‘선비’의 조건으로서 학식과 지조와 풍류의 세 가치를 꼽는데 이 경우 풍류의 주된 항목이 시이다. 한자문화권에 속한 우리나라의 옛 선비들은 한학을 공부하고 한시를 지었는데 우리 집안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나는 어릴 적을 증조부 옆에서 보내면서 일찍부터 한시에 눈을 뜨게 되었다.

 

정식으로 천자문(千字文)을 배우기 전인 너덧 살 무렵부터 나는 알고 있는 한자를 꿰어맞춰 한시 짓는 흉내를 내곤 했다. 나의 증조부께서는 아드님을 한 분 두셨으나 요절(夭折)하시어 나의 선친(先親)을 양손(養孫)으로 들이셨기 때문에 거기서 보신 첫 증손인 데다가 일찍 실모(失母)를 한 나를 여간 애지중지하신 것이 아니다. 게다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재주가 있어 보여 나에 대한 그 어른의 사랑과 정성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어른이 돌아가신 뒤 그분의 조카이신 나의 생가(生家) 할아버지가 지으신 그 어른의 행장(行狀)에는 “증손종길이 급입신학에 탄왈 ‘이일이면 아가일종 문맥이 전시우거러니 금좌의라’(曾孫宗吉急入新學嘆曰異日俄家一種文脈專恃于渠今左矣)”는 구절이 들어 있다.

 

이 한문 구절을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증손인 종길이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탄식하며 말씀하시기를 ‘옛날 같으면 우리 집 한 가닥 글의 맥이 오로지 그에게 달렸더니 이제 글러 버렸구나.” 이 경우 ‘글의 맥’이란 말할 것도 없이 ‘한문의 맥’으로 그 어른에게는 ‘글’이란 곧 한문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 행장을 지으신 나의 생가 할아버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해 여름방학에 시골에 갔을 때 할아버지가 “너는 대학에서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 물으시기에 영문학을 공부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영문학이라는 것도 있느냐”고 되물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아버님은 그분들과 마찬가지로 한학을 공부하시고 신교육은 받지 않으셨지만 그분들처럼 고루하지는 않으셨다. 안동문화권에서 마지막 한학자의 한 분으로 손꼽히시고 한시를 잘하셨지만 신문화에도 무관심하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1965년 나의 첫 번째 저서인 《시론》이 나왔을 때 아버님은 “옛 어른들은 돌아가신 뒤라야 문집이 간행되는데 요즘에는 젊은 아이들도 책은 낸단 말이야.” 하고 책을 펴보시면서 “사람들이 환영하지 않는 책을 내서는 안 돼.” 하고 훈계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시를 좋아했고 대학 시절에도 주로 영시를 공부하면서 시작을 병행한 것은 글을 잘하는 선비 집안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평생을 대학에서 주로 영시를 가르치며, 비록 과작이기는 했지만 시작을 중단하지도 않았다. 1992년 2월 말 정년퇴임 후 노년에 접어들면서 증가하는 청탁에 응하면서 다작을 하고 있으나 마음에 드는 작품은 좀처럼 나오질 않는다. 사람들이 환영하지 않는 것을 써서는 안 된다는 선친의 훈계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칠 않으나 내가 시를 통해 가업을 이어온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내가 아끼는 나의 시 10편

 

● 〈성탄제〉
● 〈춘니(春泥)〉
● 〈여울〉
● 〈고고(孤高)〉
● 〈하회(河回)에서〉
● 〈생량(生凉)〉
● 〈북어(北魚)〉
● 〈솔개〉
● 〈낙조(落照)〉
● 〈부부(夫婦)〉

 

 


- 나의 대표시

 

고고(孤高)


북한산(北漢山)이 
다시 그 높이를 회복하려면
다음 겨울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밤 사이 눈이 내린,
그것도 백운대(白雲臺)나 인수봉(仁壽峰) 같은
높은 봉우리만이 옅은 화장(化粧)을 하듯
가볍게 눈을 쓰고

 

왼 산은 차가운 수묵(水墨)으로 젖어 있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신록(新綠)이나 단풍(丹楓),
골짜기를 피어오르는 안개로는,
눈이래도 왼 산을 뒤덮는 적설(積雪)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지어는 장밋(薔薇)빛 햇살이 와 닿기만 해도 변질(變質)하는,
그 고고(孤高)한 높이를 회복하려면

 

백운대(白雲臺)와 인수봉(仁壽峰)만이 가볍게 눈을 쓰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http://www.yousim.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08 에서

 

김종길
/ 1926년 경북 안동 출생.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성탄제》 《해거름 이삭줍기》 등과시론집으로 《시론》 외 번역시집(영-한, 한-영) 다수가 있다. 목월문학상, 인촌문학상, 육사시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만해대상(문학 부문) 등 수상.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예술원 회원.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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