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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획특집]우주의·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 우주의 중심이고 싶다 / 오세영

문근영 2013. 11. 10. 10:28

 

우주의 중심이고 싶다 / 오세영
[기획특집]우주의·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57호] 2013년 01월 03일 (목) 오세영 시인

예술원 시인 8인에게 듣는 나의 시론

 

시란 무엇인가, 시인은 왜 밤을 새워 시를 쓰는가. 모든 시인 앞에 던져진 이 질문은 애초부터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어쩌면 시인들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시를 쓰는지도 모른다. 문득 시 앞에서 막막해지면 원로들은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을까 궁금해진다. 평생 시와 함께 살아온 예술원 회원 시인들에게 그 궁금증을 설문으로 물어보았다. 당신은 왜 시를 쓰느냐고, 언제 시를 쓰느냐고, 그렇게 쓴 시들 중에 가장 아끼는 작품은 어떤 것이냐고. 원로 시인들은 이런 대답을 보내왔다.

 

 

시는 왜 쓰는가

 

저는 항상 중심에 서고 싶었습니다. 주변부에서 어물쩍거리기가 싫었습니다. 제게 사회성이 부족한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내 삶 자체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는 물론 아니 될 뿐만 아니라, 그리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고요.

 

그러나 시를 쓸 때만큼은 저 자신이 우주의 중심입니다. 저에 의해서 이 세계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고 저로 인해서 세계는 그 관계가 재정립되기 때문입니다. 시 쓰는 동안 저는 의미의 생산자, 즉 이 세상의 주인인 것이지요. 그런 연유로 저는 저 자신을 홀로 골방에 가두어 놓고 시 쓰는 일에 몰두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쉬지 않고 시를 쓸 것입니다. 

 

시 쓰는 일은 한편 제게 있어 영원을 지향하는 일이기도 입니다. 영원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이 허무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비록 제가 바라는 그 영원에 도달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 영원에 도달하려는 노력 없이 이 세상을 살 자신이 없으므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즉 시 쓰기를 또한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를 언제 쓰는가


 
계절적으로는 겨울이며 하루로 보면 밤입니다. 왜 그러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추측건대 아마도 명상에 가장 적합 시간이 그때가 아닐지요? 제 생각에 한마디로 시는 명상의 산물입니다. 명상을 통해 이 세계나 사물들을 의미적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이지요. 따라서 그것은 고독하면서도 의식을 극도로 집중시키는 정신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신 집중의 고독한 작업에 가장 적합한 시간이 제게 있어서는 겨울밤인 것입니다.

 

봄은 매우 아름다워서 감히 새로운 세계를 꿈꾸기가 어렵습니다. 여름은 너무 관능적이어서 내면을 성찰하기 어렵습니다. 가을은 너무 안타까워서 집착을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포기한 겨울의 삭막함은 차라리 정신을 맑게 해줍니다. 정신을 자유스럽게 해 줍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제가 쓴 시들은 대부분 겨울에 쓰인 것들입니다.

 

저는 겨울밤에 시 쓰기를 선호합니다. 시 쓰려는 대상은 신위(神位)이며, 연필은 향촉(香燭)이며, 원고지는 축문(祝文)이며, 커피는 제주(祭酒)입니다. 이렇듯 나는 겨울밤마다 외로운 공간에 홀로 앉아 공손히 무릎을 꿇고 이 세계의 사물들에게 경건한 제사를 지내지요. 물론 제사가 끝난 뒤 지방(紙榜)을 태우듯 파지(破紙)를 촛불로 태우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내가 아끼는 나의 시 10편

 

● 〈그릇〉
● 〈열매〉
● 〈원시〉
● 〈겨울 노래〉
● 〈설화(雪花)〉
● 〈봄은 전쟁처럼〉
● 〈천문대〉
● 〈음악〉
● 〈은산철벽〉
● 〈보석〉

 

 

대표시

 

그릇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오세영 
poetoh@naver.com /1942년 전남 영광 출생.196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반란하는 빛》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바람의 그림자》 등 17권과 평론집 산문집 시론집 다수. 한국시인협회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 만해대상, 현대불교문학상 등 수상.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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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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