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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29) - 생명의 극치 / 극치- 고영민

문근영 2013. 11. 10. 10:27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29) - 생명의 극치

 

 

극치
 
고영민
 
개미가 흙을 물어와
하루 종일 둑방을 쌓는 것
금낭화가 핀 마당가에 비스듬히 서보는 것
소가 제 자리의 띠풀을 모두 먹어
길게 몇 번을 우는 것
작은 다락방에 쥐가 끓는 것
늙은 소나무 밑에
마른 솔잎이 층층 녹슨 머리핀처럼
노랗게 쌓여 있는 것
마당에 한 무리 잠자리 떼가 몰려와
어디에 앉지도 않고 빙빙 바지랑대 주위를 도는 것
저녁 논물에 산이 들어와 앉는 것
늙은 어머니가 묵정밭에서 돌을 골라내는 것
어스름녘,
고개 마루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우체부가 밭둑을 질러
우리 집 쪽으로
걸어오는 것 
 
# 우주의 지극한 경지다. 천연의 시가 보여주는 만물의 조화이며 공생의 따듯한 광장이다. 여기에 덧보태는 말은 사족이요 췌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시에는 아홉 개의 풍경이 나열되어 있다. 시의 주체는 시종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모습을 드러냈다면 시의 울림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눈앞의 정경을 제시하고 뒤로 물러서 있는 화자는 얼핏 작품에 개입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정경을 하나의 고리에 꿰어 시를 장악하고 또렷한 시의 혈점을 완성한다.

이 시에는 식물, 동물, 인간이 경계 없이 어우러져 전일적 삶의 구경을 보여주고 있다. 우주 공동체의 삶의 진경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구분도 없고 경계도 없다. 하나의 덩어리로 숨 쉬고 하나의 유기체로 운동하고 있다. 개미, 소, 쥐, 사람이 각각의 생존 방식에 따라 움직이고 있지만 거기에 대한 시비나 호불호의 시선은 보이지 않는다. 고유의 정체성이 조용히 빛을 발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분열된 시선이 아닌 일체화 된 신의 따듯한 시선이 빚어낸 지상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낫고 못함도 없고, 미추도 없고, 선악도 없다. 오직 하나의 생명이 각자의 위치에서 존재의 향기와 광채를 내뿜고 있다. 개별화된 고유성이 소중한 가치로 자리하고 있는 시다. 생명의 다름을 배격하고, 단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핍박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 그 자체의 소중함을 시의 공간에서 각성케 하는 따뜻한 작품이 바로 「극치」다.

 이어지는 솔잎, 잠자리 떼, 산, 늙은 어머니, 우체부 역시 이 시를 빛나게 하는 주인공들이다. 조연도 없고 엑스트라도 없다. 곳곳에서 삶의 극치를 이루는 존재의 형상들이다. 삶의 풍경 하나하나가 모두 극치요 지존이다. 말 그대로 하나의 존재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서 살아 율동하는 거룩한 생명들이다. 이들에 대한 화자의 시선은 공평하고 구별이 없다.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대지의 모성으로 감싸 안는 크고 넉넉한 품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이 시의 전체를 관류하는 시의 온기이며 부드러움의 힘이다. 일체의 목숨을 아우르는 크고 온화한 손이 「극치」의 안에 있다. 생명과 환경을 시의 전면에 내세우는 시들의 거친 목소리가 이 작품에는 없다. 이러한 점이 고영민 시의 미덕이며 품격이다.

문명의 이기를 저만치 내려놓고 사람의 집으로 걸어오는 누군가가 있다. 사람이 온전히 사람으로만 만나는 거룩한 장소에는 지금 눈 내리고, 참새 몇 마리 빈 나뭇가지에 앉아 말곳말곳 지상의 목숨들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 '문화저널21'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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