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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획특집] 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 도깨비 방망이를 찾아서 / 이근배

문근영 2013. 11. 10. 10:26

 

 

도깨비 방망이를 찾아서 / 이근배
[기획특집]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57호] 2013년 01월 03일 (목) 이근배 시인

예술원 시인 8인에게 듣는 나의 시론

시란 무엇인가, 시인은 왜 밤을 새워 시를 쓰는가. 모든 시인 앞에 던져진 이 질문은 애초부터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어쩌면 시인들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시를 쓰는지도 모른다. 문득 시 앞에서 막막해지면 원로들은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을까 궁금해진다. 평생 시와 함께 살아온 예술원 회원 시인들에게 그 궁금증을 설문으로 물어보았다. 당신은 왜 시를 쓰느냐고, 언제 시를 쓰느냐고, 그렇게 쓴 시들 중에 가장 아끼는 작품은 어떤 것이냐고. 원로 시인들은 이런 대답을 보내왔다.

 

시는 왜 쓰는가

 

내가 모르는 덫

도대체 우주 밖 어느 별의 자장이, 이 지구라는 작은 땅덩이의 어느 산 어느 물의 아지랑이가, 그리고 내게 살과 뼈가 오기까지 우리 집 족보와 외가 쪽의 맨 꼭대기에서부터 어떤 DNA들이 섞이고 뒤바뀌고 새로 만들어지면서 ‘나’라는 몸뚱이를 만들어낸 것인가. 이 수수께끼를 풀지 않고는 어디서, 어떻게, 왜, 내가 입에 풀칠하는 수단으로 시인 간판을 내걸고 짝퉁 시를 팔아먹고 있는지를 알 길이 없다.

 

한두 해도 아니고 50년 넘게 좌판을 벌여왔고, 한두 살도 아니고 일흔을 훌쩍 뛰어넘어선 나이에도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왜 하는지를 모른다면 이건 부끄러워도 한참 부끄러운 일이다. 좀 더 솔직하자면 나는 시를 알지 못한다. 시가 무엇인지 어떻게 쓰는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내가 시를 쓰는 까닭을 알 수 있겠는가. 뒤집어서 말한다면 시라는 도깨비를 나는 본 일도 없고 씨름해 본 일도 없기에 그 방망이를 찾기 위해 어둡고 깊은 골짜기를 헤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뿐이겠는가. 모든 창조의 세계는 내가 태어나기 오래전부터 내게 씌워진 불가항력의 덫에 걸려 매뉴얼도 없고 로드맵도 없고 완성도 없는 것, 지금 쥐고 있는 붓이 도깨비방망이라고 착각하고 나는 뻔뻔스럽게 흔들고 있는 것이다.

 

 

시를 언제 쓰는가
 
꿈속의 중얼거림

붓방아를 찧는다고 했다. 대동강 가의 연관정(鍊光亭)에서 고려 시인 김황원(金黃元)이 머리와 가슴에서는 끓어오르는 시적 감동이 튀어나오지 않아 통곡을 하고 떠났다던가, 오죽했으면 폴 발레리가 “시의 첫 줄은 신이 주는 것”이라고 했을까? 신이든 악마이든 까닭 없이 내 손에 시의 첫 줄을 주지는 않을 것. 그렇다면 바람 같기도 하고 뜬구름 같기도 한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그 영감靈感이라는 놈을 어떻게 낚아챈다? 어쩌다 나는 벼루라는 귀신에 붙들려 끌려 다니고 있는데 어느 한 밤도 거르지 않는 사나운 꿈자리에서 세상에는 없는 벼루를 만지기도 하고 그런 시의 귀신도 붙어 다녀서 생각의 첫줄하나 잡기에 밤낮없이 시름 거린다. 마땅한 글감을 만나기 위해 우리의 것 남의 것 옛날 것 오늘 것 가리지 않고 신의 솜씨가 만들어낸 물건들 천재들의 글씨, 그림, 대문장들의 시문을 쫓아다니지만 정작 시로 빚어내는 일은 게으르고 서투르기 짝이 없다.

 

마음이 약한 탓일까? 신문, 잡지에서 시 청탁이 오면 냉큼 받아놓았다가, 쫓기고 쫓기다 겨우 붓을 잡을 때도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그러니까 글감 찾기에서 말의 옷을 입히는 일은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에서 해내고 있어 그러면 나는 꿈자리에서도 시를 쓴다?  

 


내가 아끼는 나의 시 10편

 

● 〈겨울자연〉
● 〈만천명월 주인이 내게 와서〉
● 〈냉이꽃〉
● 〈문〉
● 〈절필〉
● 〈자화상〉
● 〈금강산은 길을 묻지 않는다〉
● 〈살다가 보면〉
● 〈겨울행〉
● 〈노래여 노래여〉

 


 

대표시

 

겨울 자연(自然)

 

나의 자정(子正)에도 너는
깨어서 운다
산은 이제 들처럼 낮아지고
들은 끝없는 눈발 속을 헤맨다.
나의 풀과 나무는 어디 갔느냐.
해체(解體)되지 않는 영원
떠다니는 꿈은 어디에 살아서
나의 자정을 부르느냐.
따순 피가 돌던 사랑 하나가
광막(廣漠)한 자연이 되기까지는
자연이 되어 나를 부르기까지는
너는 무광(無光)의 죽음,
구름이거나 그 이전의 쓸쓸한 유폐(幽閉).
허나 세상을 깨우고 있는
꿈속에서도 들리는 저 소리는
산이 산이 아닌, 들이 들이 아닌
모두가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쁨 같은 울음이 달려드는 것이다.

 

 

이근배 
lkb4000@hanmail.net / 충남 당진 출생. 1961~1964년 〈경향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에 시·시조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노래여 노래여》 등 다수와 시조집으로 《적일(寂日)》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유심작품상, 현대불교문학상, 만해대상(문학부문) 등 수상. 예술원 회원. 

 

- http://www.yousim.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15 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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