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암
민병도
숨길 수 없는 죄를
한 짐 가득 지고 와서
내려놓지 못한 채
빈 마당을 에돌자니
빙그레
연꽃 한 송이
지다 말고
빙
그
레
ㅡ시집『내 안의 빈 집』(목언예원,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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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도 시인의 11시집『내 안의 빈 집』을 읽는다. 그는 중견의 한국화 화가이자 시조시인이다. 이름도 풍광도 아름다운 청도 금천(錦川)에 있는 그의 창작실 목언예원은 찾아가 봤지만 ‘내 안의 빈 집’은 어떻게 찾아가는가? 그곳은 시인이 언어로 지은 마음 속 집일 테니 그의 시를 펼쳐볼 일이다. 극락암은 양산의 영취산 통도사에 딸린 작은 암자인데 우리 시대의 고승(高僧) 경봉선사가 주석(駐錫)한 곳으로 유명하다. 숨길 수 없는 죄 한 짐 가득 진 시적 화자가 극락암을 찾아 빈 마당을 에돌다가 지는 연꽃 한 송이를 보면서 얻는 순간의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다. 간결하고도 시각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이 단형 시조는 마치 불교 간화선(看話禪)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화가로서의 이력에서 기인한 듯한데 민병도의 시조에는 시각적 이미지가 한껏 살아있다.「고독」「번개」「가을날」등의 시편이 특히 그러한데, 위 시도 마찬가지다. 3연인 종장 부분에 연필로 동그라미를 한 번 그려보시라. 순간의 깨달음을 얻어 빙그레 미소 짓는 착한 사람의 얼굴이 둥싯 떠오를 테니. 빙그레 미소짓는 연꽃 한 송이의 모습이다. 그의 또 다른 시조 “깊고 푸른 도마 위에/은갈치떼 풀어놓고//일부러 놓쳐서는/다시 쫓는 어부들의//승자도/패자도 없는/오, 눈부신/칼부림”(「파도」전문)은 우주적 율동을 언어와 물감으로 그려놓은 듯하다. 지금쯤 극락암 삼소굴 앞마당에 매화는 피었을라나?
ㅡ이종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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