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 바다
구광렬
1
반송 우편처럼 돌아온 해변, 편지봉투 위의 스탬프 자국 같은 발자국들을 세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아니 한 사람이 수없이 지나갔다 발자국들이 자살을 위해 벗어놓은 신발들처럼 가지런하다
2
사구(砂丘)엔 선명했던 눈물 자국들이 빛나고 늑골이 허옇게 파헤쳐진 수평선의 선분 조각들, 태생적으로 얕고 가벼운 죽음을 사랑했는지 손가락만 한 굵기와 깊이 속에서 삶의 증거들을 뿜어낸다
3
페달을 밟는다 새끼의 주검을 안고 암벽을 오르는 어미 원숭이처럼 온몸을 굴려보지만 꿈속에서처럼 발이 묶인다 바큇살이 살점 떨어져나가는 소리를 낸다 무한동심원을 그리던 실루엣, 해변의 문양으로만 남는다
쨍그랑, 금이 간다 나의 바다, 유리의 바다
ㅡ출처 : 시집 『불맛』(실천문학사, 2012. 1판 2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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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자신의 시에 대해 총괄적으로 성격 규정한 시
-구광렬의 시「유리의 바다」를 읽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 한 사람이 수없이 지나’간 저 해변에는 ‘자살을 위해 벗어놓은 신발들처럼 가지런’한, ‘스탬프 자국 같은 발자국들’이 수없이 찍혀 있다. ‘나’에게 저 바다 앞의 해변은 알지 못할 번뇌에 휩싸이는 공간이면서 자살을 꿈꾸고 실행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저 해변이 실제로 시인의 자살 충동을 불러일으켰던 공간일 수도 있겠지만, 같은 시집에 나오는 시「간(間) 14」의 독해와 연결시켜본다면, 저 해변은 시인이 시를 쓰기 위한 공간을 의미한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저 해변에서 시인은 실제로 자살할 것인가의 문제로 고민한 것이라기보다는, 반복해서 죽음을 경험해야 하는 시 쓰기에 대한 고뇌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고뇌로 인해 뿌려진 ‘눈물 자국들이’ 선명하게 빛나는 사구에서는, 시인이 사랑했던 ‘얕고 가벼운 죽음’인 시 쓰기에 의해 ‘허옇게 파헤쳐진 수평선의 선분조각들 ’이 ‘삶의 증거들을 뿜어’대고 있다.
그런데 3연을 보면 시적 화자는‘새끼의 주검을 안고 암벽을 오르는 어미 원숭이처럼 온몸을 굴’리며 그 해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페달을 밟는다’. 하지만 ‘꿈속에서처럼 발이 묶이고’, ‘바큇살이 살점 떨어져나가는 소리를’ 낼 뿐, 그 바퀴 자국만 ‘해변의 문양으로만 남’게 된다. 이 부분 역시 위에서 행한 해석과 연결시켜 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시를 하나의 주검이라고 할 수 있다면, 시인은 그 주검이 된 시를 안고 시작(詩作)의 공간, 꿈꾸기의 공간으로부터 나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나갈 수 없다. 반대로 그 시작의 공간으로부터 나가고자 하는 몸부림의 흔적이 또 달리 쓰여질 시에 문양을 새기게 될 뿐이다. 그리고 그 문양은 ‘나의 바다, 유리의 바다’에 금이 가게 만든다. 이 구절에 대해 시와 현실 사이의 갈등과 시작 행위에 투입되는 죽음의 반복이 ‘유리의 바다’라는 시의 세계에 금이 가게 만드는 것이라고 해석해본다. 그렇다면 구광렬의 시에는 시작 행위 과정에서 생기는 시와 현실 사이의 갈등과 죽음의 고통이 ‘문양’으로서 표현되고 있으며, 그래서 금이 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유리의 바다」는 구광렬 시인이 자신의 시에 대하여 총괄적으로 성격 규정을 하는 시로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물론 다르게 독해할 수도 있다. 저 해변을 시인의 정신적 고투가 벌인 드라마를 상징하기 위한 환상적 공간으로, 아니면 시인이 실제로 죽음과 마주하면서 고뇌에 빠졌던 실재 공간으로도 독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쪽으로 독해한다고 해도, 이 시가 시인이 죽음에 대해 예민한 의식을 가졌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음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저 해변이 시인의 정신세계이거나 시의 세계, 또는 실재 세계이건 간에 그곳에는 죽음에 대한 고뇌와 무관하지 않을 ‘늑골이 허옇게 파헤쳐진’ ‘선분 조각들’이 상처처럼 ‘삶의 증거들을 뿜어’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보았듯이 시인에게 죽음은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시인의 생각에 따르면, 삶과 삶을 이어주는 것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선대의 죽음을 통해 후대 세대는 삶을 이어나갈 것이고 또 죽게 될 것이다. 생선의 살을 발라 먹으면서 시인이 얻은 깨달음이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아래의 시에서는 그러한 사유가 좀 더 구체적으로 표명되고 있다.
-문학평론가 이성혁 님이 쓰고 詩하늘에서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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