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엄원태] 9월

문근영 2013. 9. 21. 08:56

9월

 

엄원태

 

 

포도밭의 철 이른 황폐가

들판의 가을을 성큼 끌어당긴다

연잎들도 어느새 녹슬거나 뒤집혀 말랐는데

허리 꺾인 대궁들은 영락없이 학살 현장 같다

은행나무도 마지막을 예감한 듯

잎보다 많은 열매들을 노랗게 달았는데,

벌써 여기저기 떨어져 밟히며 냄새를 피운다

마을은 빈집으로 가득 차가고,

생활의 누추(陋醜)란 9월 다 가도록 변함없어서

푸른 달개비 대신,

자욱한 며느리밑씻개나 고마리꽃 쪽으로 자꾸만 눈길간다

초로의 사내가 속죄하듯, 묵묵한 손으로 벌초해놓은 무덤가엔

새로 돋은 잔디가 저 혼자 파릇한데

새벽안개는 툭하면 산길을 지운다

지렁이들 무모하게 길 복판에 나와 말라가고,

접시거미 빈 둥지엔 독 품은 수은 몇 방울

발파작업 진동에 바르르, 떨고 있다

까마귀 날며 우짖는 빈 하늘이

홀로 적적한 듯 파랗게 멀어진다

 

 

 

ㅡ출처 : 시집『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창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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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무덥던 여름이었는데

9월이 오기 며칠 전 비가 조금 내렸는데

9월 들자 나뭇잎들이 시의 표현처럼

떨어져 뒤집혀 말라서는 거리에 뒹군다

아침 기온이 30도 이상을 유지하던 그 여름이 어느새

30도 아래로 떨어져 피부를 놀라게 한다

지금쯤 포도밭에는 끝물포도가 시장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포도밭의 무성하던 잎들의 잔치는 끝난 것이다

들판의 가을은 성큼 다가오고 있는데

가을의 모습은 갈수록 완연해지는데

초로의 화자가 보고 느끼는 것이 바로

시간의 변화다

자연에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 피고 지는 게 다르다

이를 테면 꽃나무를 좋아하는 이들이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나무의 꽃을 찾아

산으로 들로 나가는 것을 보면 그렇다

그 시기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자연의 신비한 모습에 매료된 이들이

오늘도 즐겨 산과 들로 나가는 것이다

9월은 세월의 나락이 시작되는 시발점이다

이 시점에 깊은 사색을 하도록

9월이 여러분을 초대하고 있다

 

 

*이 시집에는 [9월]이라는 제목의 두 편의 시가 있다.

하나는 짧고, 다른 하나는 길다. 이 시는 긴 시다.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박창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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