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누구시더라 8
이향아
어머니가 나를 모르겠다고 한다
‘누구시더라?’ 애저녁에 딱 잡아뗀다
아흔세 살의 어른이 점잖지 못하게 오리발을 내민다
출석부를 읽듯이 내 동무들의 이름을 부르던
친척들 생일이며 제삿날까지 줄줄이 꿰던 총기
어머니가 나를 소 닭 보듯이 한다
혼돈의 태초처럼 아득한
캄캄한 기억의 꺾이는 회랑에서 가물가물 꺼지는 숨결
장질부사 앓으며 내 가쁜 숨이 산턱을 넘을 때,
뜨거운 이마에 손을 얹어 당신 숨이 먼저 멎고
그 염통 속까지 열꽃으로 삭아 내렸다던 어머니가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을 떼어주었다더니
이제 와서 다 저녁에 모르겠다면
세상 어느 누가 나를 안다 하겠으며 알려고 하겠는가
‘누구시더라, 어디서 뵌 듯한데 누구시더라’
갈수록 캄캄해지는 거리, 낯선 세상
내가 정말 누구더라 알 수가 없다
ㅡ출처 : 『시문학』(20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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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기억장애, 언어장애, 혼돈 증상을 나타내면
대체로 치매라고 보는데 확실한 원인은 모른다
엄마가 딸 보고 ‘누구시더라?’하는데
아니 놀랄 딸이 있겠는가?
청천벽력 같은 일이지 않는가?
젊어서 뇌 작용을 많이 시켰거나
마음과 머리를 아프게 한 일이 잦았다면
대개는 치매를 앓는다고 한다
나는 오늘 억지 이야기 한 마디 하려 한다
갑작스레 기억을 못한다거나 건망증이 심해지는 일이 있을 수 있겠으나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저쪽으로 건너갈 날이 가까워졌으니
하나씩 잊거나 놓아버리는 일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건망증이 전보다 심해져서 내가 그런 자위를 더러 한다
그래서 자주 책을 읽고 컴에 자주 들락거리며 자료를 읽는다
잊는다 해도 자꾸 그러면 회복력이 있지 않겠나 싶어 노력하는 중이다
어머니 증세가 이 지경이면
여기까지가 어머니의 세상이니
더 나빠지지 않게 식이요법으로 보살펴드리는 일밖에 없다
이런 어머니를 낯선 사람 취급하여 요양병원에 보내시겠는가?
그러면 마음이 편하시겠는가?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도 살다 보면 이런 때를 맞을 수 있을 게다
내가 도무지 누구인지 인지할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사람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을 창조한 이밖에 사람을 제대로 아는 존재는 없다
사람은 창조 이래 사람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연구해왔지만
아직도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영원히 모를 수도 있을지 모른다
이것을 명백히 아는 날, 신의 경지를 넘어서는 일이라
이 세상에는 크나큰 혼돈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신은 더 이상 인간에게 추월을 멎게 하고
한계 밖에 머물도록 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빅뱅이론으로 창조된 창조물이라
신의 경지를 넘보는 일은 허용되지 않은 것 같다
살아서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배려한다면
치명적인 정신의 결함을 가져오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구시더라?’라는 소리 듣지 않도록
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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