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양정자] 가을 배추

문근영 2013. 9. 13. 10:28

가을 배추

 

양정자

 

 

노란 장미 한 송이보다

더욱 눈물겹게 예뻐라

이파리 차곡차곡 꽃처럼 포개어진

안으로 충만함이 스스로 넘쳐흘러

어둡고 추운 우리들 속마음

환히 불 밝혀주는

노란 배추 속

 

사향 냄새 짙은 장미가 아닌

실팍한 배추 같은

생활에 충실한 실용의 여자가 되고 싶다.

 

 

 

ㅡ양정자 시집『아내일기』(정민,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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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정자 시인의 첫 시집『아내일기』가 발간된 지 14년만인 2004년 도서출판 화남에서 재출간되었다. “나의 詩에는/세 살 다섯 살 된 내 딸, 아들의 떼쓰는 울음소리/ 눈물 나도록 어여쁜 재롱/내 악쓰는 소리가 섞여 있다”로 시작하는 양정자의『아내일기』만큼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온 시인의 첫 시집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 시집은 빨래, 산후(産後), 설거지 구정물, 연탄재 등 일상의 구체적인 주부의 삶을 담고 있는 건강한 시집이다. 십오여 년 전, 나는 이 시집을 읽고 나서, 시집 속의 시편들이 너무 좋아 주변의 여성들에게 많이도 권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시인 양정자는 제주도 출신의 중견작가 현기영 선생의 아내다. 반체제 저항 작가와 아이들의 뒷바라지와 집안일, 그리고 중학교 교사 노릇 등 삼중고의 고된 생활 속에서 나온『아내일기』속의 시편들은 그의 삶 그 자체이자 신산한 삶을 이겨내는 삶의 버팀목이기도 했을 것이다. “사향 냄새 짙은 장미가 아닌/실팍한 배추”를 지향하는 그의 삶은 이 땅의 건강한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 그 자체다. 나는 여기에다 페미니즘이라는 비평 용어를 들먹이고 싶지 않다.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시를 조용히 그러나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양정자의 첫 시집은 내가 소장한 아주 귀중한 시집으로 남아있다.

-이종암(시인)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박창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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