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최춘희] 입양

문근영 2013. 9. 12. 15:58

입양

 

최춘희

 

 

태어나기도 전에 너는 버려졌지

공화장실 변기 속이 너의 고향이지

눈도 코도 입도 지워진 채 오직 배설의 형태로

오물덩어리로 무뇌아로 존재하는

도시의 치부

 

세상의 호적에 너는 없다

태어나기도 전에 깜깜한 밤하늘에게

입도선매되었으므로

 

사산된 배를 끌어안고 어미는 오늘도

어둠의 시궁창 헤매 다니지

티끌만큼도 죄책감이나 후회는 없지

 

지하철 역 사물함에서 여행 가방에

쑤셔 박힌 채 담겨진 너를 발견한대도

결코 놀라지 않지

티브이에서 요란을 떨며 카메라를 비춰도

그건 일회성 쇼! 쇼! 쇼!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으로부터

너는 버려졌지 아무도 네게 관심 따위 없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지

 

세상의 호적에 이름 올리지 못한 대신

저 흰 구름에게, 자유로운 바람에게, 여름비에게

이제 막 꽃잎을 여는 나팔꽃에게

나를 데려가줘

 

 

 

-출처 : 『시에티카』(2011. 하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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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처음 입양되는 아이에게 대하는 대접이 참 부끄럽다

사산아

무책임한 사람들이 저지른 1급 살인

저걸 보고도 피상적인 동정에는 동의하나

내면적으로는 갈등하는 도시인들의 저급한 의식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뒀는지도 모른다.

유럽 선진국처럼 미혼자가 아이 낳으면 자신의 수입에서 일정한 금액을

양육비로 지불해야 한다는 법적인 장치를 한다면

방종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은 저지르지 않을 게 아닌가

우리 교육(가정, 학교, 사회, 국가)이 총체적으로 너무 관용해 왔던 같다

 

며칠 전 인터넷에서

빗나간 청소년들의 노인 학대 이야기가 나온 걸 본 것 같다

학교에서 근신하라고 재교육 받으러 보냈는데

거기서 녀석들이 한 짓 치고는 너무 졸렬하고

이 나라에는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구나

라는 자괴감에 빠져들게 한다

관용은 책임을 지는 사람에게 필요하지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경제적, 정신적, 도덕적)에게는 조치가 필요하다

청소년이라고 너무 관용한 나머지

이제는 집이든, 학교든, 사회든 어디서건 막무가내다

이건 아니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강제해야 한다

자유, 그거 엄청 좋은 거다

책임을 진다는 전제조건이면 가능하다

할 수 있는 나이에 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한 일에 대해 책임지라는 것이다

무책임한 짓으로 방종으로 흘러 세상을 혼탁하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버릴 거면 아예 만들지 마라는 것이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건 비겁한 소리다

무책임한 소리다

질타를 받아 마땅하다

 

사산아, 버려진 아이

부끄럽지만, 명복을 빌어줘야지

세상의 호적에 이름도 못 올린 그 아이들

죽어서라도 저 흰 구름처럼, 자유로운 바람처럼, 여름비처럼

이제 막 꽃잎을 여는 나팔꽃처럼

생기 있고 자유롭기를 바라는 것이다

불쌍하고 자유로운 영혼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박창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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