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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선화] 정경情景-아주 천천히

문근영 2013. 9. 12. 15:55

정경情景-아주 천천히/ 김선화

 

 

 

햇살도 술렁대는 교도소 안마당에

가족과 함께하는 운동회가 열렸다

손꼽아 기다리던 날 발그레한 얼굴들

 

청백군 편을 나눠 달리기, 줄다리기

어릴 적 운동회로 돌아가 맘껏 뛰며

모처럼 푸른 함성이 울타리를 넘는다

 

이제는 부모님을 등에 업고 달릴 차례

온 힘을 쏟아 부을 오늘의 하이라이트

아무도

달리지 않고 걷는다

주르륵, 봄비 내린다.

 

 

 

-『시조시학』(2012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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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종종 던지기도 하고

영화 속

대사로 쓰이기도 하는

물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진실이 나를 통과했을 때" 라는 신비적인 답변 - 하나

 

"큰 눈 내리고, 눈사람을 만들던 때" 라는 구체적 답변 - 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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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인 나는

못난이 인형 풍의 산고 머리를 하고

티 하나 입고

콧물 덩이 묻어 있는 줄도 모르고

쌓인 눈에 나를 던졌다

사진 찍을 때야 언 손이 느껴졌는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양 손을 바지 앞자락에 넣고 찰칵!

이성을 굴리지 않은

날 것이었다는 증거다

 

10살 즈음부터

멋이라는 걸 부리기 시작했다

훗날 보면, 오히려 촌스런

 

 

 

'내 인생' 이라는 제목의  

1시간 45분 분량의 영화에

넣고 싶은 필름만 편집해 본다

 

"래디--! 액!션!!"

 

 

[1] 태어난 후부터 

9살, 날 것일 때까지

거의 모두-이겠지만

태어난 날

처음 뒤집은 날

긴 날

선 날

걸은 날

수두 걸린 날 아버지가 사오신 장난감

호수에 빠져 난감할 때 따뜻하게 말려 준 햇살

등등

강렬한 기억들만 넣어야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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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민학교 3학년.

분교하는 과도기에 교회 건물을 빌려 쓴다.

화장실을 대신한 양동이

찰랑이던 오줌을 더럽다는 생각조차 없이

태연하게 비움.

컷!

 

 

[3] 4학년 

청소하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싶어 두리번 한다.

친구들 다 토끼고("도망가다" 의 속어) 혼자 쓰레기통을 씻고 있다.

컷!

 

 

[4] 호우 내리는 고속도로 갓길

차 안

몸과 마음도

함께 폭우가 된다(scene 1 컷!)

 

잘난 척 하는 동안

마음 바뀐 애인에게

구질하게 애원한다(scene 2컷!)

가슴이 찢어지다 못해

감각이 없는 채 기차를 탄다 - 유난히 사람이 많이 탄 기차를(scene 3 컷!) 

 

 

[5] 티벳의 하늘과 호수(풍경 scene)

컷!

 

 

[6] 진리가 나를 통과한 수십차례의 - 신비한 컷

 

 

[7] 찍을 컷

'교도소'  분들보다 내가 못하다.

진짜배기 마음으로 함께하는 컷

(이런 마음에서 조차 벗어나야 진짜라기에

내 희망의 컷은 아직 진짜배기가 아닌 상태)

 

가까운 찍을 컷.

월요일 출근

"이건 뭐야?"

고통스러운 '정경情景'이 예상되지만

나의

완전한 감독을 믿고

영화판 안으로

힘차게 들어갈 테다.  

 

 

대구에서 성적이 5등해 본 이력은 

scene으로 넣을 자리가 절대 없는 것이 스스로 신기하다

공부와 입시가 인생의 목표인 학생들에게

감히 교과서적인 말 한 마디 하고 싶다.

"지나고 나면 삶에서 손해 본 순간이 남더라.

신기하더라!"

 

최근에 본 영화의 대사를 인용하며

마무리 되지 않는 컷을 대신한다.

 

"고령화 가족에서 들은 대사야. 교과서적이라서 거부감이 들려고 하다가 이내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어. 너무 맞는 말이거든- 모든 생명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좋거나 나쁜 삶이란 없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찌질하면 찌질한 대로 자기에게 허용된 삶을 살면 그 뿐이다. 아무도 기억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개인에게 주어진 삶이고, 역사다."

 

 

동이 터 온다. - 김선아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비매/김선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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