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情景-아주 천천히/ 김선화
햇살도 술렁대는 교도소 안마당에
가족과 함께하는 운동회가 열렸다
손꼽아 기다리던 날 발그레한 얼굴들
청백군 편을 나눠 달리기, 줄다리기
어릴 적 운동회로 돌아가 맘껏 뛰며
모처럼 푸른 함성이 울타리를 넘는다
이제는 부모님을 등에 업고 달릴 차례
온 힘을 쏟아 부을 오늘의 하이라이트
아무도
달리지 않고 걷는다
주르륵, 봄비 내린다.
-『시조시학』(2012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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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종종 던지기도 하고
영화 속
대사로 쓰이기도 하는
물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진실이 나를 통과했을 때" 라는 신비적인 답변 - 하나
"큰 눈 내리고, 눈사람을 만들던 때" 라는 구체적 답변 - 둘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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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인 나는
못난이 인형 풍의 산고 머리를 하고
티 하나 입고
콧물 덩이 묻어 있는 줄도 모르고
쌓인 눈에 나를 던졌다
사진 찍을 때야 언 손이 느껴졌는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양 손을 바지 앞자락에 넣고 찰칵!
이성을 굴리지 않은
날 것이었다는 증거다
10살 즈음부터
멋이라는 걸 부리기 시작했다
훗날 보면, 오히려 촌스런
'내 인생' 이라는 제목의
1시간 45분 분량의 영화에
넣고 싶은 필름만 편집해 본다
"래디--! 액!션!!"
[1] 태어난 후부터
9살, 날 것일 때까지
거의 모두-이겠지만
태어난 날
처음 뒤집은 날
긴 날
선 날
걸은 날
수두 걸린 날 아버지가 사오신 장난감
호수에 빠져 난감할 때 따뜻하게 말려 준 햇살
등등
강렬한 기억들만 넣어야겠지
.
.
[2] 국민학교 3학년.
분교하는 과도기에 교회 건물을 빌려 쓴다.
화장실을 대신한 양동이
찰랑이던 오줌을 더럽다는 생각조차 없이
태연하게 비움.
컷!
[3] 4학년
청소하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싶어 두리번 한다.
친구들 다 토끼고("도망가다" 의 속어) 혼자 쓰레기통을 씻고 있다.
컷!
[4] 호우 내리는 고속도로 갓길
차 안
몸과 마음도
함께 폭우가 된다(scene 1 컷!)
잘난 척 하는 동안
마음 바뀐 애인에게
구질하게 애원한다(scene 2컷!)
가슴이 찢어지다 못해
감각이 없는 채 기차를 탄다 - 유난히 사람이 많이 탄 기차를(scene 3 컷!)
[5] 티벳의 하늘과 호수(풍경 scene)
컷!
[6] 진리가 나를 통과한 수십차례의 - 신비한 컷
[7] 찍을 컷
'교도소' 분들보다 내가 못하다.
진짜배기 마음으로 함께하는 컷
(이런 마음에서 조차 벗어나야 진짜라기에
내 희망의 컷은 아직 진짜배기가 아닌 상태)
가까운 찍을 컷.
월요일 출근
"이건 뭐야?"
고통스러운 '정경情景'이 예상되지만
나의
완전한 감독을 믿고
영화판 안으로
힘차게 들어갈 테다.
대구에서 성적이 5등해 본 이력은
scene으로 넣을 자리가 절대 없는 것이 스스로 신기하다
공부와 입시가 인생의 목표인 학생들에게
감히 교과서적인 말 한 마디 하고 싶다.
"지나고 나면 삶에서 손해 본 순간이 남더라.
신기하더라!"
최근에 본 영화의 대사를 인용하며
마무리 되지 않는 컷을 대신한다.
"고령화 가족에서 들은 대사야. 교과서적이라서 거부감이 들려고 하다가 이내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어. 너무 맞는 말이거든- 모든 생명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좋거나 나쁜 삶이란 없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찌질하면 찌질한 대로 자기에게 허용된 삶을 살면 그 뿐이다. 아무도 기억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개인에게 주어진 삶이고, 역사다."
동이 터 온다.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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