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이성부] 봄

문근영 2013. 9. 9. 18:13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 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출처 : 시집『우리들의 양식』(민음사,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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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이라면 세상의 봄이 아직은 요원할 때다

세상이 요동치고 있을 때

이 시는 시대의 암울함을 예견하며

세상의 봄은 오고야 만다는 노래를

너무나 곱게 조용히 내뱉었다

그러던 그도 봄에 세상과 하직했지만

무던히도 애창하던 시가 아니던가?

이 시도 현실과 관련시켜보면

자유롭고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굳은 믿음을 보여 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너는 화자가 기다리는 대상이고

다급한 사연은 화자가 처해 있는 고달픈 상황과 현실이다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지만

너는 아직 오지 않은 상태인데

화자는 너가 올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너는 반드시 올 것이라는 걸 확신하고 있다

조금 더디게 올지라도

다급한 사연을 듣게 되면

언젠가는 기필코 오리라는 것이 그 믿음이다

여기서 ‘너’는 ‘봄’과 같은 긍정적인 모습일 수도 있겠고

사랑하는 임, 민족의 독립, 유토피아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너라는 봄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지만

오는 속도와 그 내용이 다 다르다

바로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시인이 노래한 것이 아닐까

우두커니 기다리기만 하는 바보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박창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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