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는 전망이 아니다
허만하
높은 곳은 어둡다. 맑은 별빛이 뜨는 군청색 밤하늘을 보면 알 수 있다.
골목에서 연탄 냄새가 빠지지 않는 변두리가 있다. 이따금 어두운 얼굴들이 왕래하는 언제나 그늘이 먼저 고이는 마을이다. 평지에 자리하면서도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 흙을 담은 스티로폼 폐품상자에 꼬챙이를 꽂고 나팔꽃 꽃씨를 심는 아름다운 마음씨가 힘처럼 빛나는 곳이다.
아침노을을 가장 먼저 느끼는 눈부신 정신의 높이를 어둡다고만 할 수 없다.
-출처 : 시집『물은 목마른 쪽으로 흐른다』(솔,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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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교에서 한 교수에게 피아노를 사사받은 학생들이 모두 독같이 연주한다면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
이 시가 지향하고 있는 메시지가 달라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교수라면 학생마다 학생의 성장배경, 교육 정도, 좋아하는 그림, 음악, 성격 등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인데
그렇다면 그 학생의 그것에 맞추어 지도하는 것이 바른 방법이라는 것이다
각기 다른 그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곡의 해석을 하고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빛깔로 연주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 교수의 임무다.
학생이 같은 악보를 보더라도 각기 다르게 몰입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에 알바트로스라는 새가 나오는데,
이 새는 날개 근육이 발달되지 않아 날개 짓을 하는 게 아니라,
날개를 펴고 오직 기류를 타고 활공한다고 한다
보들레르는 외부세계와 인간, 혹은 정신세계와 자연 사이의 상응 관계를 파악하려한 시인이다
대상 뒤에 감춰진 본질적 의미를 알아내려 하였을 뿐 아니라,
본질의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였고
자신의 슬픈 운명을 ‘알바트로스’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였다
시인은 감옥과 같은 육지에서 벗어나 무한한 바다에서 자유인이 되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단지 무능한 존재일 뿐이었다
허만하 시인의 이 시는 그늘과 어둠을 가장 많이 농축한 달동네의 볼품없는 스티로폼 상자 속에서
피어나는 나팔꽃의 지향점을 통해 정신의 높이를 가늠하였다고 볼 수 있다
시인이 탐구하는 본질은 집단의 상식적 이해 수준에서 재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꼬챙이는 수직이며 나팔꽃은 넝쿨 식물로서 상승의지의 표현을 담고 있다
여기서 시인이 발견한 것은 넝쿨의 높이가 아니라 저 씨앗을 심은 가장 낮은 이의 손이다
언제나 그늘이 먼저 고이는 마을 간난의 세월을 꼭꼭 화분에 눌러담고
꼬챙이를 꽂아준 그 마음이 뭉클하여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라고 중얼거린다
그런데 시인이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고 한 말이 진정 세상의 가난과 아픔을 간파한 외침일까?
높이는 깊이이고 깊이는 삶 자체이다
맹목적으로 바락바락 높이 오르려 다투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거칠어지고 지치기 마련이다
잃어버린 지상의 낙원을 꿈꾸어 보지만 이상의 날개는 지상에서 자주 조롱거리가 된다
도리 없이 더 고독해지고 더 높이 날 수 밖에 없다
지상과 교신할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 마음껏 긴 날개를 편다
다만 그 높이를 어둡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침햇살을 가장 먼저 느끼는 눈부신 정신의 높이를 깨닫는 것, 시의 감상도 그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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