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탕 속의 나무들
나희덕
저 나무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늙은 왕버들 한 그루가 반쯤 물에 잠겨 있다
더운 김이 오르는 욕탕,
마을 어귀 아름드리 그늘을 드리우던 그녀가
오늘은 물을 들여다보고 있다
울퉁불퉁한 나무껍질이 더 검게 보인다
그 많던 잎사귀들은 다 어디다 두고
빈 가지만 남은 것일까
왕버들 곁으로 조금 덜 늙은 왕버들이 다가와
그녀의 등과 어깨를 천천히 밀어준다
축 늘어진 배와 가슴도, 주름들도
주름들 사이에 낀 어둠까지도 환해진다
나무낍질 벗기는 냄새에
나도 모르게 두 왕버들 곁으로 걸어간다
냉탕에서 놀던 어린 버들이 뛰어오고
왕버들 4대,
나란히 푸른 물속에 들어가 앉는다
큰 굽쇠를 향해 점점 작아지는 굽쇠들처럼
나는 당신에게서 나왔다고 말하는 몸들,
물이 찰랑찰랑 흘러넘친다
오래전 왕버들의 새순이었던 것을 기억해 낸다
- 나희덕 시집, 『야생사과』, 창비,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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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주산지에 가본 적이 있다.
한 20여년전 사우회 회원들과 사진 촬영을 위해서다.
그 때만 해도 주산지는 널리 알려진 저수지가 아니었다.
일요일인데 청송군청 당직하는 직원에게 물어도 모른다하여
여러 곳을 헤매다 겨우 찾아 갔었다.
녹음이 눈부신 오월의 어느 날,
한적하고 아늑한 산자락 아래 왕버들과
저수지가 한 폭의 그림같은 멋진 광경을
그 날 슬라이드 필름으로 기쁘게 담아 온 적이 있다.
반쯤 물에 잠겨 긴 세월의 연륜을 말해주며
잔잔한 저수지에 반쯤 몸통을 담근 왕버들이
이 시를 읽으며 생각났다.
화자는 어느 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여탕에서
왕버들을 발견한다.
긴 세월동안 빈 가지만 남은 늙은 왕버들,
그 왕버들의 등과 어깨를 밀어주는
조금 덜 늙은 왕버들,
냉탕에서 놀던 어린 왕버들과
화자가 합쳐져 왕버들 4대가 된다.
욕탕에 허리를 담그고 나란히 앉아
언젠가 마을 어귀에서
왕버들 아름드리 그늘을 드리우던,
오래전 푸르른 봄날,
새순이었던 그 때를 기억해낸다.
우리도 한 때 새순이었고
우리는 모두 어머니에게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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