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나희덕] 욕탕 속의 나무들

문근영 2013. 9. 6. 12:15

욕탕 속의 나무들

 

나희덕

 

저 나무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늙은 왕버들 한 그루가 반쯤 물에 잠겨 있다

더운 김이 오르는 욕탕,

마을 어귀 아름드리 그늘을 드리우던 그녀가

오늘은 물을 들여다보고 있다

울퉁불퉁한 나무껍질이 더 검게 보인다

그 많던 잎사귀들은 다 어디다 두고

빈 가지만 남은 것일까

왕버들 곁으로 조금 덜 늙은 왕버들이 다가와

그녀의 등과 어깨를 천천히 밀어준다

축 늘어진 배와 가슴도, 주름들도

주름들 사이에 낀 어둠까지도 환해진다

나무낍질 벗기는 냄새에

나도 모르게 두 왕버들 곁으로 걸어간다

냉탕에서 놀던 어린 버들이 뛰어오고

왕버들 4대,

나란히 푸른 물속에 들어가 앉는다

큰 굽쇠를 향해 점점 작아지는 굽쇠들처럼

나는 당신에게서 나왔다고 말하는 몸들,

물이 찰랑찰랑 흘러넘친다

오래전 왕버들의 새순이었던 것을 기억해 낸다

 

        - 나희덕 시집, 『야생사과』, 창비,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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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주산지에 가본 적이 있다.

한 20여년전 사우회 회원들과 사진 촬영을 위해서다.

그 때만 해도 주산지는 널리  알려진 저수지가 아니었다.

일요일인데 청송군청 당직하는 직원에게 물어도 모른다하여

여러 곳을 헤매다 겨우 찾아 갔었다.

녹음이 눈부신 오월의 어느 날,

한적하고 아늑한 산자락 아래 왕버들과

저수지가 한 폭의 그림같은 멋진 광경을

그 날 슬라이드 필름으로 기쁘게 담아 온 적이 있다.

반쯤 물에 잠겨 긴 세월의 연륜을 말해주며

잔잔한 저수지에 반쯤 몸통을 담근 왕버들이

이 시를 읽으며 생각났다.

화자는 어느 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여탕에서

왕버들을  발견한다.

긴 세월동안 빈 가지만 남은 늙은 왕버들,

그 왕버들의 등과 어깨를 밀어주는

조금 덜 늙은 왕버들,

냉탕에서 놀던 어린 왕버들과

화자가 합쳐져 왕버들 4대가 된다.

욕탕에 허리를 담그고 나란히 앉아 

언젠가 마을 어귀에서

왕버들 아름드리 그늘을 드리우던,

오래전 푸르른 봄날,

새순이었던 그 때를  기억해낸다.

우리도 한 때 새순이었고

우리는 모두 어머니에게서 나왔다.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김경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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