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장옥관] 춤

문근영 2013. 9. 5. 10:24

 

장옥관

 

 

흰 비닐봉지 하나

담벼락에 달라붙어 춤추고 있다

죽었는가 하면 살아나고

떠올랐는가 싶으면 가라앉는다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온 그림자가 따로

춤추는 것 같다

제 그림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그것이

지금 춤추고 있다 죽도록 얻어맞고

엎어져 있다가 히히 고개 드는 바보

허공에 힘껏 내지르는 발길질 같다

저 혼자서는 저를 드러낼 수 없는

공기가 춤을 추는 것이다

소리가 있어야 드러나는 한숨처럼

돌이 있어야 물살 만드는 시냇물처럼

몸 없는 것들이 서로 기대어

춤추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나를 할퀴는

사랑이여 불안이여

오, 내 머릿속

헛것의 춤

 

 

 

-출처 : 『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문학동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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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불안”을 “헛것의 춤”으로 무섭도록 생생하게 그려낸 시편

-장옥관의 시「춤」을 읽고

 

 시인은 “사랑”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나를 할퀴는”이라는 말로 그려내고 “불안”을 나란히 병치함으로써, 그것이 품은 불가항력적인 운명의 폭력성을 밀도 높은 단 하나의 장면으로 농축시킨다.

 

 “사랑”이라는 미친 벡터, 그 전율 어린 삶의 불가사의한 들뢰즈가 말했던 ‘명석 판명한 온대 지방이 아니라 숨겨진 어두운 지대’(『프루스트와 기호들』, 서동육 옮김. 민음사, 2004)에 이미 주름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예측이 불가능할뿐더러 미리 운산(運算)할 수조차 없는 장면에서 휘날려오는 것이기에, “죽었는가 하면 살아나고/ 떠올랐는가 싶으면 가라앉는다”라는 편린으로 새겨지는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또한 “사랑”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혹은 숨거나 사그라지는, 그 저릿저릿한 운명선의 굴곡은 마치 몸에 돋아나는 소름처럼 진득하게 배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 날엔가 문득 마주친 “담벼락에 달라붙어 춤추고 있”는 “흰 비닐봉지”는 시인의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었을 “사랑”이라는 “불안”, 그 “헛것의 춤”을 일깨우는 우발성의 화살로 날아와 박혔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죽도록 얻어맞고/ 엎어져 있다가 히히 고개 드는 바보” “소리가 있어야 드러나는 한숨처럼/ 몸 없는 것들이 서로 기대어/ 춤추는 것이다”라는 무서운 리듬감의 언어들은 솟아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시편의 표제가 “춤”일 수밖에 없는 까닭 역시 이 자리에서 나온다. “춤”이야말로 몸의 자연스런 순결과 움직임, 그 윤곽선 전체를 통째로 거머쥘 수 있는 탁월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이찬 님이 쓰고 詩하늘에서 엮음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박창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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