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긴 꽃병/ 선안영
1.
골목 끝 외딴 집, 눈이 예쁜 벙어리 여자
제 사내 발자국 소리 귀신 같이 알고 듣고
외등이
환하게 부풀 때
굳은 시간 피가 돈다.
2
다 시들은 생명을 용케도 내뱉듯이
붉은 꽃잎 떨구는 달거리의 현기증
차오른 달과 해 지워져
텅 비워진 둥근 방
두 눈 떠, 뼈로 서는 심장이나 날개였을
유정란을 휘젓는 일, 손이 자꾸 주춤거린다.
닿고픈 먼 이역처럼
또 불 켜질 여자의 몸
- 시집「목이 긴 꽃병」(작가, 2012)
.. ....... ., ..,... .......... .
'목이 긴 꽃병'은 불길하다
한 시를 만나
슬프고 아려서 힘든데도
넘어갈 수 없는 시가 있다
한번씩 듣곤 했던 “당돌한 나”의 이미지 이면에 “웅크린 나”도 있듯!
어린 시절 몹시 좋아했던 막다른 골목이지만
사회 돌아가는 것을 알수록
'골목 끝 외딴집'의 심상 또한 청명하지 않다
대조적인 '예쁜' '눈'의 맑은 심상
이 시를 한 번, 두 번, 세 번 읽을 때마다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외로움과 애처로움, 희망이 교차한다
또 벙어리'와 '여자'에 연상되는,
묘한 느낌을 어떻게 포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감상이 나올 수 있다
'발자국 소리를 귀신 같이 알아' 들음은
말 못하는 이의 생존 비법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이의 말에 섬세하게 반응한다는 의미일 수도.
말소리도 아닌
'발자국 소리' 듣고
내 존재가 반짝이고
'피가' 도는 바보같은 그 여인이
'1'의 시편에서는 부럽다
반면 '2'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부화해 줄 체온이 없는 '유정란'처럼,
날개 잃은 천사처럼 외롭다
고통을 넘어서기 전에
'현기증'과
' 텅' 빔과
'주춤'함을 거치고
간신히 '켜진' 벙어리' 여인의 '불'!
깜박이는 나의 '불'!
오늘 잘 버티고 넘어 서서
성당 2층의 성가소리처럼 울리기를.
침묵의 무능함 때문에
차라리 긴 기다림의 '목'을 길게 높이 빼고
새하얗게 빛나기를
낫기 위한 명현처럼
아프면서 피는 꽃처럼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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