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배창환] 냉이꽃 봄

문근영 2013. 9. 2. 11:45

 

냉이꽃 봄

 

         배창환

 

우는구나 그대

아무데나 퍼질러 앉아

착한 꽃등 하나 달고

돌아앉아 우는구나

 

이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동안

너의 넋은 갈 곳을 잃고

밤마다 돌아오는 빛이 되어

 

처참하게 박힌

이땅의 꽃이여

쓰디쓴 진액 같은 나날을

질겅질겅 삼켜

 

아직은 봄이 아닌 땅

총검과 철망이 어둡게 빛나는 곳이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여

엉엉 울다 가는구나, 그대

 

- 배창환 시집, 『다시 사랑하는 제자에게』, 실천문학사, 1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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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감자 심을 밭을 정리하기 위해

지난 겨울을 견딘 배추밭에 나갔었다.

혹독한 땅의 겨울을 온몸으로 이겨낸 배추잎들은

얇은 종이처럼 검은 비닐위에 말라 붙어 있었다.

삼월 중순이지만 아직 불어오는 바람은 차고, 매웠으나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저 지난 겨울의 배추밭 흙을 비집고

흙인듯, 작은 돌멩이인듯 그 동토를 비집고

냉이들이 하나, 둘 군데군데 얼굴을 힘차게 내밀고 있었다.

아, 봄이구나,

아직 잔설이 희끗한 응달이 남아있지만

진정 봄은 우리 곁에 이렇게 가까이 와 있음을 느꼈다.

 

냉이꽃은 이제 곧 지천으로

삼천리 강산에 하얗게 피어날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누구의 관심도 연연하지 않고

그야말로 아무데나 밭이나 논두렁이나 나지막하게 피어나

봄바람에 흔들릴 것이다.

그러나 그 냉이의 새싹을 피워 올리기 위해

냉이 순은 그 수직의 뿌리를 언 땅에 깊이 박고

쓰디쓴 진액같은, 혹한을 견디며 살아 남아

아직은 봄이 아닌 땅 같지만

금새 꽃을 피워 올릴 것이다.

그저 작고, 낮고, 하얗게,

그 화사한 봄꽃들의 소란스러움에 묻혀서

아무도 모르게 피었다가는 질 것이다.

서러운 우리네 반도에서 피었다 지는

백성들의 삶처럼.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김경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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