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이재무] 길 위의 식사

문근영 2013. 8. 31. 15:20

길 위의 식사

 

이재무

 

 

사발에 담긴 둥글고 따뜻한 밥 아니라

 

비닐 속에 든 각진 찬밥이다

 

둘러앉아 도란도란 함께 먹는 밥 아니라

 

가축이 사료를 삼키듯

 

선 채로 혼자서 허겁지겁 먹는 밥이다

 

고수레도 아닌데 길 위에 밥알 흘리기도 하며 먹는 밥이다

 

반찬 없이 국물 없이 목메게 먹는 밥이다

 

울컥, 몸 안쪽에서 비릿한 설움 치밀어 올라오는 밥이다

 

피가 도는 밥이 아니라 으스스, 몸에 한기가 드는 밥이다

 

 

 

-출처 : 제27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작/『시안』(2011. 겨울)

-------------------------------------------------------------

 

밥에 대한 경외를 모르면 살아도 헛사는 것이다

-이재무의 시「길 위의 식사」를 읽고

 

 이재무 시인은 일찍이 『위대한 식사』(세계사, 2002)를 통해 과거적이며, 농경적이며, 훼손 이전의 공동체적 풍경을 아름답게 완성한 바 있다.

 

 표제 시편에서 보여준 자연 사물을 배경으로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는 풍경은, 시인의 시학적 정수를 강렬한 기억으로 붙잡아주었다.

 

 “마당가 매캐한 모깃불 피어오르는/ 다 늦은 저녁 멍석 위 둥근 밥상”에서 먹었던 “그날의 위대했던 반찬들”은 시인이 지탱해온 동일성을 은유적 등가로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노래한 「길 위의 식사」는 전혀 그 온도가 다르다

 

 평상에서 먹던 “사발에 담긴 둥글고 따뜻한 밥”이 아니라 “비닐 속에 든 각진 찬밥”이 말하자면 길 위의 음식이다. 역시 ‘사발/비닐’, ‘둥긂/각’, ‘따뜻함/차가움’의 대위가 느런히 펼쳐진다. 그리고 평상에서의 기억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함께 먹는 밥이었다면, 길 위의 식사는 선 채로 혼자서 허겁지겁 먹는 밥이다. ‘둘러앉아/선 채로’, ‘함께/혼자서’, ‘도란도란/허겁지겁’이 차차 ‘인간/짐승’, ‘밥/사료’의 대위로 확장되어간다

 

 길 위에 서서 밥알 흘리며 반찬도 국물도 없이 먹는 메마르고 가파른 밥, 그것은 비릿한 설움과 한기를 동시에 준다. 몸에 피가 돌게 하는 밥이 아니라 오히려 으슬으슬한 한기만 주는 설움과 남루의 밥일 뿐이다.

 

 시인이 한 산문(「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화남, 2010))에서 깨달아 알게 된 “밥은 하늘이다”라는 전언에 비추어보면, 이 「길 위의 식사」는 사람들이 치루는 위대한 식사가 아니라 삶을 피동적으로 이어가는 건조한 식사일 뿐이다.

 

 이처럼 밥 이미지로 삶을 형상화한 것은 “때 묻지 않은 밥을 먹기 위해서 비록 승복을 입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나날의 수행에 게으르지 않아야 할 것이다. 밥상을 대할 때 잠시잠깐만이라도 내 앞에 놓인 밥이 어떤 경로를 걸어온 밥인가를 떠올리고 나서 밥숟갈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지”(「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라면서 밥을 중시했던 그로서는 가장 알맞은 은유적 채택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는 그렇게 “깨끗한 가난이 글썽이던 젊은 날”(「매미 울음소리」)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하면서 평상에서 바라본 “아궁이의 깨끗한 식욕”(「숫겨울」)을 기억해낸다. 그러다가 길 위로 내몰리며 동일성은 균열한다. 결국 ‘평상’은 존재론적 평지요, ‘길 위’는 가파른 타자성의 장소였던 셈이다.

 

-문학평론가이며 한양대교수이신 유성호 님이 쓰고 詩하늘에서 엮음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박창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