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길상호] 알약

문근영 2013. 8. 26. 11:01

알약

 

길상호

 

 

병실에서는 TV까지도 환자다

500원 알약 하나를 받아먹고 나서야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네 얼굴

할머니들은 아픈 TV를 끼고 앉아

손자손녀 재롱잔치라도 보는 듯

식은 눈동자를 초롱초롱 되살린다

하지만 알약의 약발은 겨우 삼십 분

기다렸던 드라마 시작과 함께

TV는 미지근해진 심장을 끄고

다음 순번의 할머니가

뒤적뒤적 숨겨둔 지갑을 꺼낸다

빨리 되살리라고, 숨넘어가겠다고

재촉해대는 한숨 사이에서

바쁘게 알약을 찾아 TV에게 먹인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밝아진 화면

잠시 또 어둠이 걷히는 병실

겨우 연장시킨 시간도 순식간이다

내일을 기약하며 드라마가 끝나면

기약 없는 내일이 침대에 드러눕는다

돈은 좀 들었지만 시간 잘 죽였다며

할머니들 아쉬운 잠을 청한다

 

 

-『신생』(2011.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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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먹으려는 자들이 하는 방법으로 이런 것이 이용된다

돈이 되는 것에는 어떤 방법으로든 돈 안 넣으면 못 먹게, 못 보게, 못 쓰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 좋지

밖에서 하는 이야기 중에 돈 이야기가 대세다

돈은 필요하다

넘치지지도 말고 모자라지도 말고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인데

돈에 목을 매는 사람이 많다

아주 나쁜 습관이다

죽을 때 못 가져 가는 줄 뻔히 알면서 그 욕심 내려놓지 못하는 심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

 

병실에서 할머니들이 하는 유희 중에 TV에 돈 넣고 화면 보는 거, 그 중에서도 공통적으로 즐겨보는 화면이 드라마다

그거 제때에 못 볼까 봐 목숨을 건다

화자가 그 돈을 알약이라고 한다

TV가 돈을 먹는 일이나 환자가 알약을 먹는 일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서로 교대로 돈을 넣어 즐긴다는 데서 남남 끼리 모여 지내지만

따뜻한 사랑 한 움큼은 나눌 줄 아는 이들이다

참 따뜻한 시 한 편 읽어서 오늘저녁은 푸근할 것 같다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박창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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