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장하빈] 능성동 종점

문근영 2013. 8. 26. 11:01

능성동 종점

 

장하빈

 

 

 번개와 천둥 잦아드는 고갯마루, ‘팔공1’ 막차 기다리는 사이 ‘하양1’ 버스가 괴나리봇짐 진 노인네 몇몇 내려놓고 뭉그적뭉그적 돌아나간다.

 

 십구공탄처럼 활활 타오르던 문청文靑 시절, 시내버스 뒷자리 앉아 온종일 덜컹대다가 변두리 종점에 가닿았던가? 찬바람 새어 드는 아리랑여인숙 외딴방, 그 머리맡에 놓여 있던 우그러진 주전자와 포개진 신짝이여! 낡은 바람벽에 눈보라 몰아치고, 싸륵 싸르륵 문살 갉아먹는 소리 들으며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긴 밤 하얗게 밝히던 어지러운 낙서여!

 

 종점! 나직이 중얼거려 보는 이 유폐된 시간 풍경 앞에 는개 몰려 오고 가로등 젖은 불빛 파닥이며 날아오르는, 그 아련한 추억의 귀소歸巢.

 

 

 

-출처 : 시집『까치 낙관』(시학,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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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귀소의 시학

-장하빈의 시 「능성동 종점」을 읽고

 

 이 시편은 “소나무 성城으로 에워싸인 고개티마을”(「능성동能城洞」)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종점’이라는 상징을 통해 궁극적 생의 지점을 상상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기억의 형식이 공간화한 상관물로 나타난 ‘종점’은 국외자局外者 이미지를 더욱 강화해 주는 장소로 표상된다. 번개와 천둥 잦아드는 고갯마루에서 막차를 기다리다가, 시인은 활활 타오르던 문청 시절이 오버랩 되는 것을 느낀다.

 

 그 시절 그는 시내버스 뒷자리에 앉아 온종일 덜컹대다가 변두리 종점에 가닿았을 것이다. 찬바람 드는 아리랑여인숙 외딴방 머리맡에 놓여 있던 주전자와 신짝이 그때 그 누추했던 젊음에 확연한 물질성을 부여한다. 백석 시편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蜂房)」에서처럼,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눈보라가 문살 갉아먹는 소리를 들으면서 젊은 청년은 ‘사랑한다’라는 낙서를 밤새도록 반복적으로 적어 갔을 것이다.

 

 이때 ‘종점’은 바로 이렇게 유폐된 시간 풍경의 은유로 다가온다. 시인은 그 아련한 추억의 귀소를 아름답고도 남루한 영상으로 복원한 것이다. “능성마을회관 부서진 문짝으로, 저 혼자 타들어가는 석양볕”(「굴뚝은 수도승」) 역시 그러한 영상의 등가적 상관물로 시집 안에 홀연히 담겨 있다. 결국 “세찬 바람 소리/ 천장이 울고/ 짐승의 애잔한 울음”(「얼어붙은 입」) 소리가 들리는 곳, “혼자 집 지키는 날은/ 목조 벽 내지르는 외마디에 가슴 덜컹 내려앉다가/ 지붕 위 쫑쫑대는 까치 발소리에 귀 쑥쑥(「천장 높은 집」) 자라는 곳, 바로 그곳이 시인 장하빈이 깃들여야 할 궁극의 거소居所였던 셈이다.

 

 이때 귀소歸巢는 존재의 근원으로 회귀하려는 형이상학적 열망을 수반하면서, 시인 자신의 존재론적 기원을 상상적으로 탈환하는 방향을 취하게 된다.

 

-문학평론가 유성호 님이 쓰고 詩하늘이 엮음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박창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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