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금의 빛나는 황홀을
배한봉
붉은 능금 향긋하여 나는 먹을 수 없네.
이 단내는 꽃의 냄새.
나는 꽃향기를 깎을 수 없네.
나보다 먼저, 나보다 더 오래, 능금 꽃 앞에서 울던 벌이여.
이 한 알의 보석에 박힌 수백 개 태양을 나는 깎을 수 없네.
달에 옥토끼가 살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오래 전에 알아버렸을지라도,
이 붉은 능금의 빛나는 황홀을
나는 어찌할 수 없네.
가슴의 두근거림을,
능금빛 사랑의 믿음을
나는 차마 깎을 수 없네.
—『시와 사상』(2011년, 겨울)
짧지만 드넓은 상상을 부려놓은 이 시편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배시인의 더 좋은 시들도 있지만 이즈음 읽은 시 중 으뜸으로 읽힙니다.
죽음이란 물리적인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내 의식이 닿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모두 죽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겠고, 사랑이라는 관념 또한 그 뜨거웠던 시절을 잊었었다면 그건 죽은 것으로 봐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존재의 상호간에 의식이 차단된 상태가 진정한 죽음의 형태일 테니까요. 그러나 이러할 수 있음은 과학적인 진리에 의한 것이 아닌 예술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감성과 상상력에 수용된 대상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억지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시대를 끌어가고 있는 문명과 문화의 차이에서 문화가 해온 업적을 무시하는 일이 될 겁니다. 다 아시는 것처럼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시는 문학의 꽃이며 문학은 역시 문화의 핵심이라는 교과서적 이론대로겠죠. 이쯤 시의 상상력에 받침이 될 만한 잊었던 사랑이라는 중심생각을 정리해놓고 보면 시인은 그 사랑 그 때를 어떤 계기로 불러냈을 텐데요. 그것은 오래된 사랑, 이미 과학적으로 밝혀진 달과 옥토끼의 전설 같이 허망한 것이 아닐까?, 사는 것이 전쟁인데 그깟 사랑은 뭣도 아니다. 라고 푸념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중심생각을 받침할 보조생각이겠지요.
어느 때에 시인의 오래전 연인 또는 아내와의 뜨겁던 시절에 나누었던 어떤 물건을 어떤 이유로 발견하고 그를 망설이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요즘처럼 나빠진 경제상황에선 결혼반지 등을 팔려고 내놓는 사람들도 많으니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해낼 수 있는 일들 입니다. 그리고 골똘히 그 물건이거나 , 혹은 그 시절이 이윽고 그 뜨거웠던 때를 기억나게 하고 다시 사랑으로 환치하고 능금으로 비유함으로써 시를 정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보다는 배한봉 시인이 직접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으니 능금도 또한 재배하고 있던지 아니면 이웃 농장에서 손을 거들다 발견했거나, 집에서 같이 먹기 위해 과일 전에서 사과를 사다가 상상해냈을 거라는 추측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의식이 닿은 그것만이 나를 봐줄 수 있는 상태. 김춘수의 '이름을 불러줬을 때 그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이제 어렵지 않은 의미론인, 즉 시인이 어떤 계기로든지 그간 잊었던 뜨거웠던 사랑 그 시절로 의식의 눈빛을 보냈을 때 그 시절 또한 시인을 향해 그때의 단내를 다시 맛보게 해주고 그 황홀한 사과 꽃을 보여줌으로써 화답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습작을 하는 많은 예비시인이나 미숙한 시인들이 잘 빠지는 부분이 다음 설명과 같을텐데요. 대개 과거의 어떤 기억을 어떤 시점의 변화도 없이 그저 그리움 정도로 담아놓는 것으로 작품을 완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배한봉 시인은 그러했음을 현재의 시점으로 그리고 다시 미래를 열어가는 에너지로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그 황홀했던 꽃잎과 그 앞에 잉잉대던 벌의 뜨거운 정서와 단내 나는 그리움과 어쩌면 격정적으로 사랑했던 모습만을 기억해낸 것으로 만족한다면 굳이 능금이라는 완성된 개체를 비유했을 이유가 없을 테니까요. 능금으로 비유가 아주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경우도 결국은 오브제의 일종으로 쓰이고 말았겠지요. 그런 식이었다면 제목조차 예컨데 '빛나는 사랑 그때' 등의 관념적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1행에서 ‘붉은 능금 향긋하여 나는 먹을 수 없네.’ 으로 시작 하면서 이미 확장된 세계관으로의 결과를 암시해놓은 것이죠. 어찌되었든 그런 화려하고 뜨거운 사랑으로 현재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고 그것은 단단하고 향기로워졌다는 걸 시인은 새삼 깨달으며 잊고 살았던 사랑의 의미를 불러내고 되살려내게 된 겁니다. 이제 이 되살려 낸 소중함은 앞으로도 견뎌나갈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소중한 것은 먹기는커녕 그 향기조차 흩날리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시인은 이 이유를 수백개의 태양이 박혔기 때문이며,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먼저 꽃앞에 잉잉거렸던 벌때문이라고 했지요. 더 커다란 의미 앞에선 현재의 작은 의미인 먹는 것은 치울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즘 흔하게 쓰지 않는 능금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선정한 이유입니다. 무엇보다 사과보다는 능금이 좀 더 미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과는 본래 능금을 개량해서 우리가 요즘 맛보게 된 것이지요. 곧 옛것, 본래의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현재 우리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며 사랑의 본질을 일깨워주고 싶은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지요.
현재 발표되는 여러 시집들과 문학잡지들, 그리고 우리 시하늘에도 종종 보이는 진부한 사적사변, 암호처럼 어렵게 의미를 숨겨놓고 퍼즐놀이처럼 지적 유희를 즐기고, 그리고 즉흥적인 감흥을 적음으로써 모자란 사유를 채우기 위해 남들이 알지 못하는 멋 부림으로 길어지기만 해서 읽다가 지쳐버리게 하고, 간혹은 이미 지나버린 데카당스적 퇴폐도 적혀지고 있는 것에 비교해 배한봉 시인의 이 시는 짧으면서도 할 말 다 해버린, 진솔하고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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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잘 쓰지도 잘 알지도 못합니다.
좋은 시편을 만나고 보니 비록 저만의 읽기와 생각이겠지만
요즘 제가 습작을 하고 읽으며 생각했던 것과 함께 어설피 부려놓고 같이 공부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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