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스무 살로 내린다 / 복효근
이렇게 춥고 눈이 쌓이는 날엔
신부야 가난한 우리가 더 깊은 산골로 가서
산골로 가서 눈에 묻혀
한 스무 살 쯤으로 살면 좋겠다
지하수 펌프가 얼어서
내가 장작을 패고 있는 사이
계곡물을 길러 가는 신부야
네 귀가 추위에 빨갛게 얼었구나
나는 패던 장작을 내려놓고
털 부숭한 산토끼나 한 마리 잡아서 그 놈의 가죽으로
신부 귀를 감쌀 귀덮개를 만들어주어야겠다고
가만가만 토끼 발자국을 찾아 나서겠지
토끼 발자국 따라가면
눈 속에 먹을 것을 찾아
아, 거기 눈처럼 하얀 토끼가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애처로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데
그 놈의 귀가 내 사랑하는 신부의 귀처럼 빨갛구나
나는 토끼와 토끼의 신부와 그 어린 자식들이 안쓰러이 떠올라서
마른 풀이라도 뜯어 먹으렴 하면서
언덕에 쌓인 눈을 파헤쳐 주곤 모른 척
돌아서 내려오겠지
자꾸만 내 신부의 빨간 두 귓불이 생각나서
나는 내 겨드랑이 아래 두 손을 묻고
아직은 더운 체온으로 내 손을 데워서
가만 물 긷고 있는 신부의 두 귀를 감싸주겠지
그러면 내 손을 타고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먼 우레 소리처럼 건너갈까
네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피의 온도가
내 손을 타고 건너오겠지
소주병이 비어갈수록
눈은 스무 살 적 그 빛깔로 내리고
내려 쌓이고 오늘은
군불을 조금만 넣어도 밤이 더울 것만 같고
- 블로그 [복효근의 시와 사는 이야기] 12월18일 저녁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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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조 귀여운 거!’
취업한 선배가 19살 20살 무렵의 나에게 반복했던 말이 떠오른다.
박우현 시인의 시편처럼
‘그때는 그때의’ 이유를 몰랐다
스무살만의 향긋함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함
아집없는 수용성
스무살에는 추위가 두렵지 않았다.
피가 뜨거웠던 게다.
가난 속 사랑에 대한 두려움 자체가 없다.
누가 좋으면 이유없이 좋은 거고 , 볼품없는 뒷꽁무니조차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귀덮개를 구하는,
눈 덮인, 온 산이 따뜻하다.
토끼도 희고
토끼를 따뜻이 한, 사내의 마음도 하얗다.
히말라야 자락에 사시는 분이
고산에서 표류 후 난방이 없을 때 생존법으로
남녀가 안고 있으면
얼어 죽지 않는다고 했었다.
이 말을 떠올리는 나에게는 서른의 눈이 내린다.
마음부터 데워지고 온 몸이 뜨거워져야 스무살의 눈이라 할 수 있다.
이 밤! 시인의 ‘스무살 눈’이 펑펑 아궁이에서 계속 타 오른다.
겨울을 잊게 하고
송년을 더 훈훈히 밝힌다.
서른을 넘고 넘어서
편안한 거 좋아하는 나에게 묻는다.
너!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토끼털 구하러 가는 남자를 기다려 줄 수 있냐고?
나! 계곡에 물 길러 간다.
한 번이 아니라, 자주 간다.
눈에 묻혀도 따뜻할 수 있는,
스무 살의 무엇을 갖추기 위해,
토끼에게조차 귀마개를 씌우는,
따뜻한 남자를 알아보기 위해!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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