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으로 /이성선
삶 전체가 기도이게 하소서.
기도가 떨리는 삶의 전부이게 하소서.
별빛으로 몸을 씻습니다.
바람의 말씀으로 영혼을 씻습니다.
그것만으로 이젠 가슴 찬란하여
밤이면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며
시(詩)를 쓰고 살아갑니다.
아침 연잎에 구르는 물방울 소리
황홀히 빈손으로 받고
빈 저녁 바다
그분 오시는 발소리에
문풍지처럼 가슴 떨립니다.
떨어지는 나뭇잎 두 손으로 받으며
이 큰 떨림으로
당신에게 가장 가까이 있게 하소서.
-『이성선 전집』(서정시학, 2011)
시의 가치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데 있다. 가슴이 살아있는 사람 그래서 따뜻한 감성을 지니고 삶을 건강하게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은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이다. 시인이란 빛나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과 감동을 주는 영혼을 가진 사람은 마음의 결이 다르다.
이 시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마음과 가슴이 살아있는 사람의 감성이 무엇인지, 영혼의 빛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삶 전체가 하나의 기도가 되고, 기도가 떨리는 삶의 전부인 삶! 이런 삶은 오직 경건에서 시작해서 경건에서 끝나는 삶이다. 이러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이의 마음에 무슨 삿된 것이 깃들 수 있을 것인가.
시인은 삶에 대한 자신의 이상을 하나의 기도에 담아, 그 기도의 숨결에 쉬 바래지지 않을 자연의 색과 빛과 향기를 더했다. 그것은 가장 높은 곳 밤하늘의 별빛으로 몸을 씻고 바람의 말씀으로 영혼을 씻는 기도요, 아침 연잎에 구르는 물방울 소리를 황홀히 빈 손으로 받는 기도이다. 삶 전체가 하나의 진실한 기도가 되기 위해, 자연의 가장 맑은 빛과 소리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씻어 정화(淨化)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아침 연잎에 구르는 물방울 소리’를 빈 손으로 황홀히 받는다 했으니, 두 손 아래로 모둔 경건한 마음의 표상이요, 그 맑은 이슬빛 소리를 빈 손에 담았으니 소리를 시각화 시키는 감각적 표현으로 한껏 그 정갈한 운치를 더했다. 그 소리는 워낙 가늘어 섬세한 눈과 귀가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소리이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영혼에 닿는 향긋한 소리일 것이다.
기도하는 마음은 빈 방에 홀로 타는 촛불처럼 늘 조금은 떨리는 것이다. 떨림 없는 마음은 굳어진 마음이요, 겸손을 잃은 마음이요, 그 결이 섬세하지 않은 마음이다. 그래서 그는 저녁 바다로 그분 오시는 발소리에도 문풍지처럼 가슴이 떨린다. 사랑하는 님을 맞이하는 마음은 떨림이 있기에 아름답고 또 황홀한 것이 아닌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한 잎의 낙엽도 떨어져 내리면서 우주의 가장 큰 법칙 하나를 채운다.”했거니와 떨어지는 나뭇잎을 두 손으로 받는 마음은 자연의 고귀한 섭리를 받아들이는 마음이요, 신께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순수한 마음의 하나일 것이다. ‘이 큰 떨림’이라 했으니, 나뭇잎 떨어지는 작은 자연 현상 하나에도 깊은 공명할 줄 아는 시인의 정결한 영혼을 느낄 수 있다.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삶은 기도이어라.
하늘에 자신을 비추어보고 다시 비추어보고
별에게 비추어보고 또 비추어보고
사람에게 비추어보고 사람에게 비추어보고
잎 다 떨어진 나무처럼 홀로 될 때
마지막 제 영혼에 비추어보는 기도이어라.
-<기도>
하나의 영혼에서 나온 같은 빛깔의 다른 노래라 할 것이니, 이 또한 얼마나 간명하고 아름다운 기도시인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은 기도하는 듯 사는 삶이다. 하늘에 자신의 영혼을 비추어볼 수 있는 삶. 별에 자신의 영혼을 비춰볼 수 있는 삶. 사람과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비추어볼 수 있는 삶. 그리고 잎 다 떨어진 나무처럼 홀로 될 땐 제 영혼에 스스로를 비추어볼 수 있는 삶.
천상에서 지상까지 모든 것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제 영혼을 스스로 비춰볼 수 있는 깨어있는 삶. 그것이 정녕 우리가 지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기도가 아니겠는가? 책상 앞에서 잠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삶 그 자체로 쓰는 기도, 영혼의 모든 떨림으로 신과 천지만물의 마음에 가장 가까이에 다가서는 바람보다 더 투명하고 진실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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