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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별빛 바람 하늘소리/이성선

문근영 2013. 8. 6. 12:47

별빛 바람 하늘소리/이성선

 

하늘 아래 첫 마을

별빛 바람소리 하늘소리가

내려와 나를 키운 곳

자라면서 사람들은 거길 떠나

도회로 가라 했습니다.

무섭고 겁나는 나에게

낮고 넓은 곳으로 가라 했습니다.

아래로 조금씩 발을 옮기며

산골놈이란 말이 죽어도 싫어

내 몸 곳곳의 별빛과 바람소리를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당당해졌습니다.

촌놈을 쉽게 비웃으며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양

작은 도시 골목을

빈 깡통으로 굴러다녔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나는

밤에 돌아와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워졌습니다.

마음 비면 빌수록 그리워졌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와 제일 먼저

나를 키우던 별빛 바람소리

지키어 빛나던 하늘의 음성

밤마다 꿈이면 그들은 웁니다.

골목을 굴러다니다 쭈그려 잠든

어두운 꿈속으로나 찾아와

슬픈 눈빛으로 나를 들여다봅니다.

 

-『이성선 전집』(서정시학, 2011)

 

하늘 아래 첫 마을은 어디일까? 어느 깊은 산골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곳엔 별빛 바람소리와 하늘소리가 ‘자신’을 키워주던 곳이다. 하지만 자라면서 사람들은 그에게 도회로 나가라고 종용했고, 그는 산골놈이란 소리가 듣기 싫어 자신 안에 있는 별빛과 바람소리를 다 몰아내고, 작은 도시로 내려와 한 세월을 빈 깡통처럼 굴러다녔다.

 

그렇게 속이 비고 나서야 그는 울면서, ‘하늘에서 내려와 제일 먼저 자신을 키워주었던 별빛 바람소리’를 그리워한다. 그것은 하늘의 음성이요, 골목을 굴러다니다 쭈그려 잠든 어두운 꿈속까지 찾아와 나를 쳐다봐주는 고마운 벗과 같다.

어느 시인은 이르길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거니와, 하늘 아래 첫 마을에서 별빛 바람소리로 영혼을 키웠던 그는 자신 속에 있던 그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깨우친다.

 

별빛 바람소리는 시각과 청각이 빚어낸 공감각적 표현으로 그것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빈 가슴에 호젓한 무늬처럼 담는 ‘하늘의 맑은 음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가 잃어버린 것은 사람의 영혼을 키우던 자연의 음성, 하늘의 음성인 것이다. 하늘 아래 첫 마을에 살았던 까닭에 그런 하늘의 음성을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던 행운을 그는 스스로 저버린 셈이다.

 

그런데 왜 그 별빛 바람소리가 사람의 영혼을 키우는 것일까?

 

바람소리로 몸을 닦습니다.

하늘을 스쳐온 바람소리

별을 스쳐온 바람소리

 

바람소리로 몸을 닦습니다.

마음 가난할 때만 오는 소리

영혼이 아플 때만 오는 소리 (...)

 

하늘과 땅 사이 이 몸은 한 자루 피리

아름다운 영혼을 기다리며 우는 한 자루 피리

 

바람소리로 이 몸을 닦습니다.

별의 말씀으로 이 몸을 닦습니다.

하늘의 말씀으로 이 몸을 닦습니다.

-<바람소리>

 

그러니까, 하늘 아래 첫 마을에서 그가 듣는 별빛 바람소리는 하늘을 스쳐온 소리요 별빛을 스쳐온 소리 즉 하늘의 전령 같은 소리이다. 그리고 그 소리는 마음이 가난할 때 영혼이 아플 때 더 잘 들리는 소리이다. 이는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때 들리는 소리라는 얘기요, 또 육신이 안락에 빠졌을 때나 마음이 탐욕에 물들어 있을 때는 잘 들을 수 없는 소리라는 뜻이다.

 

그러한 별빛 바람소리를 들을 때면 자신의 몸은 천지와 연결된 한 자루 피리가 되어, ‘아름다운 영혼’을 기리며 정화의 불꽃처럼 끝 간 데 없는 바람과 함께 운다. 바람소리 속에 들어 있는 별의 말씀과 하늘의 말씀으로 자신 몸과 마음을 씻어, 별빛 바람소리처럼 더없이 맑고 정결한 영혼이 되기를 꿈꾸는 것이다.

 

내면을 ‘별빛 바람소리’로 가득 채운 사람의 영혼은 어떠할까. 그가 간간히 별빛 바람소리를 내는 시를 쓸 수 있었던 것도, 아마 하늘 아래 첫 마을에서 별빛 바람소리를 들으며 자란 까닭일 것이다.(시인이란 어쩜 별빛 바람 하늘소리를 불러오는 천지의 피리일지도……)

 

별빛 바람소리는 하늘이 우리를 위해 보내오는 우리 영혼의 원음(原音)일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 모두 그 별빛 바람소리의 음성을 긴 세월 동안 다 잃어버리고 빈 깡통처럼 살아 왔거니, 우리는 어디서 다시 그 소리를 깊이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취루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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