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시

코 무덤, 갈대 - 문근영

문근영 2012. 10. 27. 11:50

 

코 무덤, 갈대 - 문근영

 

 

족쇄 같은 어둠을 차고앉은

갈대의 마른 얼굴에는 코가 없다

 

낯선 하늘 아래 흔들리는 갈꽃에 닿은 노을은

누군가 이장해 간 둠벙의 자리에도

무명실처럼 날리며

발밑으로 노래를 숨기느라 분주하다

 

코는 저쪽 귀는 이쪽

묘비도 없이 따로 묻혀있다해서

무덤 안 될 이유야 없겠지만,

회귀하는 연어처럼 바다를 건너온 코들은

초저녁 코 고는 소리로 그득하다

 

나는 요즘 묘지에 서로 모여 울고 있는

갈대의 이마를 쓰다듬는 꿈을 꾸다

서걱이는 날갯짓 소리에 언뜻언뜻 잠에서 깬다

 

내가 아직도 도시 한복판에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공의 젖무덤에 현기증 느끼는 것은

하나뿐인 코가 베어져 나간 그때

그 결핍 때문일 것이다

 

소금에 절인 한숨이 나무상자에 담겨

퉁퉁 떠다니다 바다에서 부어오른다

'나의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사기에 얼굴을 비추다 - 문근영  (0) 2012.11.14
자반고등어 - 문근영  (0) 2012.11.13
초우(初虞) - 문근영  (0) 2012.10.07
독도 - 문근영  (0) 2012.09.19
저울 - 문근영  (0) 2012.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