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기에 얼굴을 비추다 - 문근영
낡은 빈방에 갇혀 있던 여자가
눈을 깜박거리며 걸어나온다
선명하지 않은 실수가 고스란히
재생되는 그녀의 복사기에는
축 처진 겨드랑이를 햇살이 부축하고 있다
원본과 사본은 구분된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그녀에게 실수란
여기저기 지문을 남겨 놓은 것
너에게로 무작정 달려가던 기억은
과연 어떤 표정이었을까
잘못 눌린 버튼에서 흐릿한 여자는
해독 불가능한 수만 개 반복적 리듬에 갇혀
생生의 지문을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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