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시

복사기에 얼굴을 비추다 - 문근영

문근영 2012. 11. 14. 07:20

복사기에 얼굴을 비추다 - 문근영

 

 

낡은 빈방에 갇혀 있던 여자가

눈을 깜박거리며 걸어나온다

 

선명하지 않은 실수가 고스란히

재생되는 그녀의 복사기에는

축 처진 겨드랑이를 햇살이 부축하고 있다

 

원본과 사본은 구분된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그녀에게 실수란

여기저기 지문을 남겨 놓은 것

 

너에게로 무작정 달려가던 기억은

과연 어떤 표정이었을까

 

잘못 눌린 버튼에서 흐릿한 여자는

해독 불가능한 수만 개 반복적 리듬에 갇혀

생生의 지문을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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