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시

안개를 열다 - 문근영

문근영 2012. 7. 21. 10:59

안개를 열다 - 문근영

 

 

심해지던 기침에서 가래가 떨어졌다

파놓은 구덩이에 돼지들을 밀어 넣으면

그곳에서 망초는 시간을 밀어 올렸다

하늘은 온통 먹통이고

젊음을 갉아 먹은 자리에 돋은 상처로

병실침상에 누워있는 아버지

눈동자에서 다섯 개의 별이 다투어 반짝이고 있었다

 

가슴 한복판에 한 뼘 정도의 먹줄이 튕겨지고

갈비뼈를 자르고 난 후 꺼내놓은 심장은 자욱한 안개였다

엷은 창문을 흐리게 하던 새벽녘

몸에 새긴 길은 휘청거리고

몸 하나를 지우고 몸 하나가 살아나는 순간

판막을 건넨 돼지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안개의 강을 건너갔을 것이다

아픈 기억이 빠져나간 몸은

물기 젖은 이마를 들어내기도 하지만

햇살을 기억하고서야 망초는 무지개를 닮아가기 시작했다

통증 도려낸 후 새살 돋는 자리

빈 축사에 남겨진 아버지가 남긴 눈물에서

말끔하게 닦인 밭고랑 하나가

구제역으로 생겨난 망초의 언덕을 가르고 있다

 

뜨거운 입김이 안개를 가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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