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시

여름을 울다 - 문근영

문근영 2012. 7. 10. 08:15

 

여름을 울다 - 문근영

 

 

목판본이 옮겨 놓은 활자들이

가슴가슴 탑으로 쌓이다 허물어져

담장이 되기도 하는 미루나무 절간에선

바람이 향을 피운다

 

온몸으로 여름을 토해내느라

사무칠 대로 사무친 미루나무

수천의 귀를 열고서야 한낮이 되는 중이다

 

자식들 불러 앉혀 놓고

49재, 제상 앞에 잠시와 앉은 아버지

몸 바꿔 환생할 또 다른 생을 궁리하는지

미루나무 잎들은 나이테를 둥글게 말아쥐고

이리저리 활자를 꿰맞추며 삼매경에 빠져있다

 

졸음에 취한 우듬지 끝

잠시 내려앉은 미루나무 그림자가 

서쪽 하늘에 귀를 대는 허공의 절간

 

허물 벗어 던지고

화엄의 법문 따라 이승을 떠난 아버지

아름다운 윤회, 짧은 꿈 풀고

연향으로 피어나는 하늘 법당은 성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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