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시

윤달 - 문근영

문근영 2012. 6. 20. 19:01

 

윤달  - 문근영

 

 

어머니, 오래 사시라고

마련해둔 옷자락마다

어룽지는 그 무엇이 있다

 

향기 없이 내린 서리꽃이거나

욱신대는 검버섯

좀이 슬어 구멍이 나버릴

옷들의 마지막 종착역을 바라본다

 

나란히 널어 놓은 흰 옷가지들

해 종일 늘였다, 줄였다 키를 재다가

바람에 느슨해질 만큼 느슨해진 뒤에야

자신이 누른 빨랫줄이

마당 한 귀퉁이에 닿아 있음을 안다

 

열 입 곱 처녀 가슴처럼 탱탱하게 당겨질 때에야

비로소 빨랫줄의 정성을 이해하는 수의,

이승과 저승의 끈을 이어주며

환한 빛을 발하고 있다

'나의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개를 열다 - 문근영  (0) 2012.07.21
여름을 울다 - 문근영  (0) 2012.07.10
헛꽃 - 문근영  (0) 2012.06.12
[스크랩] 김밥 천국 - 문근영  (0) 2012.06.09
[스크랩] 물의 뼈 / 문근영  (0) 2012.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