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시

[스크랩] 깨진 거울 / 문근영

문근영 2012. 7. 30. 22:17

 

 

깨진 거울 / 문근영

 

 

거울에 금이 가듯 마음도 길을 잃으면

무너진 믿음의 지붕을 걷고 서까래를 뽑는다

슬픔의 손사래로 던지는 사금파리

가슴이 베여 마음은 핏물로 굴절되었다

거울의 낭패처럼 무지개를 뭉개고

비늘 뜯긴 마음이 벼락을 치며 아파온다

사랑에 잠식당했던 기막힌 사연들은

땅 마른 불길이 되어 어쩌자는 것인가

눅눅한 꿈속의 앞뒤 없이 덤비는 금 간 아픔에서

들불 같은 매캐한 냄새가 난다

이 악물고 참았던 슬픔이 접고 접혔다가

금 간 길들의 뜨거운 상처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랑이란 잿불을 건드리는 바람, 필경

시야를 지운 사금파리에 불과했음을 저도 알 때까지

 

- 시집『그대 강가에 설 때』(창조문학신문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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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실 세면대 앞의 거울과 마주서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그 앞에서 부스스한 얼굴을 가다듬고 눈곱을 뗀다. 공들여 화장을 하는 것도, 옷매무새를 살피는 것도 거울 앞이다. 사람들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울에 비추어 본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한다는 뜻도 있다. 거울은 단순한 물리적 반사만이 아니다. 겉뿐 아니라 반듯하게 자신을 가다듬으려는 심적 활동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쁜 사람일수록 거울보기를 더 즐겨하는 건 사실이지만 누구나 그 앞에서는 흡족한 자신을 발견하고 싶고, 좀 더 단정하고 싶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가 분출된다.

 

 ‘쨍그랑’ 소리도 요란하다. 산산조각 난 거울이 바닥에 어지럽다. ‘파경’은 흔히 불길한 운명을 상징한다. 백년해로를 약속했던 부부의 이별을 뜻하는 말이 파경이다. 그래서인지 어쩌다 실수로 그릇이 깨져도 그날은 매사에 신경이 쓰이고 조심하게 된다. 두어 달 전 나도 거울을 깨트린 적이 있다. 거울조각을 쓸어 담으면서 보니 겹쳐진 조각에 눈과 코가 비뚤어지고 겹쳐져 마치 피카소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파편마다 내가 들어있다. 하지만 어느 것이 정말 나인가. 실체가 없다. 깨어지는 것은 처참하다. 거울뿐 아니라 환상이나 기대, 사람에 대한 믿음 따위가 깨질 때는 더욱 참혹하다.

 

 ‘거울에 금이 가듯 마음도 길을 잃으면’ ‘무너진 믿음의 지붕을 걷고 서까래를 뽑는다’ ‘가슴이 베여 마음은 핏물로 굴절’된다. 그것들은 깨어지기 전에는 왜곡을 잘 발견하지 못한다. 깨어지고 부서진 뒤에야 비로소 실체가 드러난다. 깨진 거울을 통해 너의 뒷모습을 들여다보듯 나의 왜곡을 들여다본다. ‘비늘 뜯긴 마음이 벼락을 치며 아파온다’ 하지만 깨진 거울 속의 무수히 가늘게 갈라진 길들이 정렬하여 일제히 내지르는 함성을 나는 듣지 못했던 것이다. 은빛 파편들이 서로를 잡아당긴다. ‘이 악물고 참았던 슬픔이 접고 접혔다가’ ‘금 간 길들의 뜨거운 상처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권순진

 

출처 : 대구문학신문 - 시야 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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