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힘
김충규
갓 태어나 바닥에서 자란 사람, 갓 죽을 때 바닥에 눕는다 사람의 일생이란 무어냐, 한 문장으로
줄이면 바닥에서 시작하여 바닥으로 끝나는 것이다 바닥을 딛고 일어난 힘으로 걸었고 뛰었고 지
치면 쉬었고 하고 싶으면 바닥에서 정사를 나눴고 병들면 바닥에 누웠다 지하역의 노숙자도 청화
대의 대통령도 바닥에 눕고 바닥을 딛고 살아간다 제 아무리 떵떵거리며 살던 사람도 추락하기
시작하면 바닥에 닿는다 바닥은 추락의 마지막 지점, 바닥을 피해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해도 그
곳에도 바닥이 있다 죽어 무덤에 대한 애착을 갖는 것도 바닥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바닥에 등
을 댄다는 것, 그것은 바닥의 힘에 순응하는 것, 바닥이 등을 밀어 올려준 힘으로 오늘 내가 호흡
을 이어간다 바닥이 등을 밀어 올려주지 않으면 영영 바닥에서 등을 뗄 수가 없다 호흡 정지, 죽
음이다 생과 사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건 바로 바닥이다. 바닥이 神이다.
-시집 『 아무 망설임 없이』 (문학의전당, 2010).
▶김충규=1965년 경남 진주 출생. 1998년 '문학동네' 등단. 시집으로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아무 망설임 없이'가 있다. 수주문학상 우수상, 미네르바 작품상. 김춘수문학상 수상.
**이 시를 빌려 사람의 일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직위가 높거나 낮거나 노약자나 대통령도 죽을 때는 바닥으로 돌아가 눕는다고 합니다. 평등하게 바닥에서 출발했지만 늘 바닥이었던 사람과 바닥을 쳐본 사람과 바닥을 모르고 사는 사람의 바닥은 다르겠지요. 높이와 넓이와 깊이를 '바닥의 힘'으로 가늠해 봅니다. 生과 死, 모든 것을 관장하는 '바닥'을 神으로 섬기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늘 신의 손바닥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다해 벗어나려 하지만 바닥에 닿고 마는 生! 우리 모두는 바닥의 자식들, 바닥에 입을 맞추던 교황님의 모습도 그로부터 비롯되었군요. 아멘! 전다형·시인
-[국제신문] 아침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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