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
고두현
아침 출근길에
붐비는 지하철
막히는 도로에서 짜증날 때
20분만 먼저 나섰어도…….
날마다 후회하지만
하루에 20분 앞당기는 일이
어디 그리 쉽던가요
가장 더운 여름날 저녁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과
사람에 쫓기는 자동차들이
노랗게 달궈놓은 길 옆에 앉아
꽃 피는 모습 들여다보면
어스름 달빛에 찾아올
박각시나방 기다리며
봉오리 벙그는 데17분
꽃잎 활짝 피는 데 3분
날마다 허비한 20분이
달맞이꽃에게는 한 생이었구나.
―시집『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랜덤하우스중앙, 2005)
▶고두현
1963년 경남 남해 출생. 1993년 〈중앙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현재 한국경제 문화부장.
**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온 것들이 갖는 무거움을 문득 느끼는 때가 있다. 내가 늘 어정거리며 지나친 20분이 또 다른 한 생명에게는 한 생애다. 내가 낮잠으로 보낸 한나절이 하루살이에게는 일생이겠다. 내가 읽다 밀쳐둔 책 한 권, 어쩌면 그 지은이에게는 평생의 단 한 줄이었겠다. 우리는 얼마나 무심하냐?
성선경 (시인)
-[국제신문] 아침의 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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